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사제간 신뢰 바탕 간호사 자격시험 19년째 전원 합격”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0일 03시 00분


인터뷰
코로나 사태 터져 동시 실습 큰 난관
학생들 지침 잘 따라줘 유종의 미… K방역 위세 떨쳐 자부심 느꼈을 것
학생들이 실천할 수 있게 지도… 간호사도 자신 돌보는 법 알아야
내년 의정부캠퍼스로 이전… 을지대병원 한 공간서 실습역량 높여

촛불을 손에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는 을지대 간호대학 학생들. 을지대 제공
촛불을 손에 들고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있는 을지대 간호대학 학생들. 을지대 제공
“그림 중에 소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게 있습니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모습이죠. 매일매일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20일 을지대 대전캠퍼스에서 만난 임숙빈 간호대학장(64)은 학생들의 병원 실습이 시작됐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월 중순 이후 대구와 경북 일부 지방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올해 1학기 개학은 4주가량 연기됐다. 대구 신천지교회, 서울 구로 콜센터 등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면서 코로나19 위기가 고조됐기 때문이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이론 강의를 비 대면으로 먼저 진행한 뒤 5월 초부터 대전 을지대병원 등에서 본격적인 실습이 이뤄졌다. “주사 놓는 법을 알아야 하고 인큐베이션(기도 삽관) 하는 것 등 여러 가지를 배우려면 실습은 대면 방식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았죠.”

보통 때 같으면 4학년이 먼저 실습을 나가면 이 기간에 3학년이 이론을 배우고, 4학년이 이론 공부할 때 3학년이 실습을 나간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가 다소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3, 4학년이 이론을 먼저 공부한 뒤 동시에 실습을 나갔다. 간호학과 학생들도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는 상황에 두려움을 가졌겠지만 병원 측도 많은 학생들이 병실을 오가는 것에 부담을 가졌다고 한다. 다행히 7월 초까지 진행된 병원 실습은 무사히 끝났다.

의정부 을지대병원 조감도. 을지대 제공
의정부 을지대병원 조감도. 을지대 제공

임 학장은 “실습을 나가기 전 학생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당부했고 감사하게도 학생들이 잘 따라줬다”며 “특히 몸이 좋지 않거나 열이 나면 병원에 나가지 말고 전화로 학교에 연락한 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했는데 학생들이 이 지침을 철저하게 지켰다”고 했다. 이어 “실습 나간 학생들 중 누구 하나라도 감염되면 같은 팀뿐만 아니라 병원 환자들까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며 “학생들이 자취방과 기숙사에 머물면서 밥 사먹는 정도였지 클럽에 간다든지 하는 위험한 행동들을 굉장히 자제해줬다”고 덧붙였다.

임 학장은 “K방역이 위세를 떨치면서 학생들이 내가 택한 전공이 매우 유용하고 가치있는 전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며 코로나19 관련 일화를 털어놨다. “대구 상황이 악화돼 개학이 4주쯤 연기됐던 때였습니다. 3학년 학생 6, 7명이 찾아와 대구로 의료봉사를 가고 싶다고 했죠. 학생들의 이타적 자발성은 기특했지만 요청을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격려하고픈 마음도 들었지만 임 학장의 판단은 달랐다. 그는 “(정식) 간호사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아직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려되는 바를 얘기했다”며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는 선배 간호사들을 보면서 간호학 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병원 실습을 나갔을 때 마음을 졸였다. K방역에 대한 호평으로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임희조 heejolim@donga.com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병원 실습을 나갔을 때 마음을 졸였다. K방역에 대한 호평으로 간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자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임희조 heejolim@donga.com
―을지대 간호대학이 간호사 국가시험에서 19년째 전원 합격 신화를 써 가고 있다.

“올해 간호사 국가시험에 146명(대전캠퍼스 76명, 성남캠퍼스 70명)이 응시해 모두 합격했다. 전국에 간호대학이 200개가 넘는데 을지대 간호대학이 세운 19년 연속 전원 합격은 매우 드문 기록이다. 을지대 간호대학은 대전캠퍼스(정원 70명)와 성남캠퍼스(정원 80명)를 합쳐 한 해 졸업자가 150∼170명에 이른다. 2002년부터 올해까지 전원이 합격했다. 합격한 누적 인원이 2047명이다.

19년 연속 한 번도 실패 없이 왔다는 것은 대학이 학생들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을 다한 것이라 생각한다. 학생들의 학업 상황에 대해 교수들이 일일이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면 전원 합격이 어려웠을 것이다. 100점 만점에 평균 60점 이상이고 과락(40점 이하)이 있어선 안 된다. 국가시험에서 150∼170명이 한 사람의 탈락자도 없이 모두 합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9년째 전원 합격을 해오고 있어 자랑스럽다. 내년 초에 시험을 치르는 4학년들은 벌써부터 ‘우리가 앞자리 숫자(19→20)를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다.”(1990년 개설된 서울보건대학 간호과와 1998년에 신설된 을지의과대학 간호학과가 2008년 을지대 간호대학으로 통합됐다.)

―비결은 무엇인가.


“크게 보면 3가지다. 첫째, 지도교수를 학년마다 바꾸지 않는다. 만약 제가 1학년 때 A 학생을 맡았으면 그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지도교수인 셈이다. 한 교수가 한 학생을 계속 지도하니 학생에 대해 잘 알게 되고 학생도 교수를 믿게 된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 친숙한 관계가 형성된다.

둘째, 매년 면담이나 상담을 상시로 하지만, 특히 3학년때는 진로 문제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해 의논하고 학생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다. 공부할 때 뭐가 어려웠는지를 구체적으로 물어본다. 4학년 때 자기의 공부 방법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간호사 국가시험 때까지 시간이 부족해 불안만 커진다. 3학년 때쯤 문제점을 깨달으면 변화를 시도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자기 특성에 맞는 학습법을 적용할 수 있다.

셋째는 모의고사를 빨리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4학년 학기말에 모의고사를 치르는데 우리 학교는 4학년에 올라오면 바로 모의고사를 본다. 본인이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되고, 교수들은 집중적으로 신경을 써줘야 할 학생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우리 학교의 국가시험 대비 준비에 대해 ‘별 게 없네’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제 간 정이 끈끈하다는 평가가 있다.

“대전캠퍼스 간호학과 초기에는 학생 수가 적고 캠퍼스도 작아 학생과 교수가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학생들이 개강파티와 종강파티를 할 때 교수들을 초대했다. 교수실 문을 열어놓고 지냈는데 학생들이 복도를 지나다 안을 들여다보며 인사하고, 문을 똑똑 두드린 뒤 들어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정도였다.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다.

1998년 스승의 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학과가 생기고 처음 맞는 스승의 날이었는데,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쳤는데 손가락 끝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전날 종이 카네이션을 접었다고 했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정성이었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졌지만 여전히 다른 학교에 비해 교수들과 학생들이 친밀하게 지내는 편이다.

병원과 학교가 긴밀하게 협업하면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대학원 공부를 하고 공부를 마친 뒤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근무시간 조정과 장학금 혜택 등의 지원 제도가 있다. 2011년부터 간호학 박사학위 졸업자가 나오기 시작했는데 불과 9년 만에 교수로 임용된 수가 48명(다른 학교 포함)에 이른다. 간호학 지도자 양성의료기관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다.”

―반환된 미군부대 자리에 건설 중인 을지대 의정부캠퍼스와 부속병원이 내년 3월 개교하면 간호대학도 이전할 예정인데….


“성남캠퍼스 간호학과는 그대로 있고 대전캠퍼스 간호학과만 옮겨간다. 그러면 수도권 남쪽(성남)과 북쪽(의정부)에 을지대 간호대학이 포진하게 된다. 대전캠퍼스 간호학과가 수도권에 가면 발전이 기대된다. 수도권은 워낙 경쟁이 심해 입학 관련 기준이 달라질 것이고 지원하는 학생들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대전캠퍼스 간호학과는 병원과 좀 떨어져 있었는데 의정부캠퍼스로 가면 병원과 여러 시설들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병원과 한 공간을 사용하며 이론과 실습을 함께 진행할 수 있어 간호실무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대전캠퍼스가 좁다는 불만도 사라질 것이다. 의정부 캠퍼스 부지는 안보를 지키던 미군 공여지에서 국민 건강을 지키는 힐링공간이자 교육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지역사회와 더불어 산관학 건강 관련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도할 계획이다. 간호대학이 그 핵심 역할을 하고 싶다.”

―남학생 비율이 높아졌다. 이유가 뭘까.


“1992년 성남캠퍼스(당시 서울보건대학)에 근무할 때 간호학과 정원이 120명이었는데 남학생이 딱 2명이었다. 남학생이 5명이 됐을 때 농구팀을 만들고 교내 체육대회에 나갔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뽑힌 게 아니었기에 첫 경기에서 바로 탈락했다. 하지만 간호학과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에서 간호학과 남학생 농구팀을 응원했다. 간호학과가 공을 넣으면 상대팀에서도 환호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은 남학생이 많이 늘었다. 올해 신입생 161명 중 남학생이 37명(23%)이나 된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남학생들이 왔으나 지금은 ‘상남자’(아주 남자다운 남자)들도 간호학과에 입학한다. 2016년에는 남학생이 간호대학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간호학은 흔히 여성들에게 더 알맞은 전공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남학생이 4년간 공부해서 수석을 했다는 것은 그런 인식의 틀을 깬 것이다. 남학생 수가 급증한 것은 취업난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간호학과 취업률은 100%다. 아울러 ‘간호사=여성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이 변하면서 남학생들이 많이 지원하고 있다.”

―남자 간호사들은 어떤 일을 하나.

“남자 간호사들은 응급실, 수술장, 중환자실, 정신과에 많이 가는데 산부인과 병동에도 배치된다. 한때 산모에게 ‘저는 간호사 ○○○입니다’라고 소개하고 한참 설명을 하면 다 듣고 난 뒤 ‘그런데 간호사는 언제 오나요’라고 묻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남자 간호사를 반기는 환자도 적지 않다. 이미 산부인과 의사들 중에는 남자가 많다. 더 이상의 성적 차별은 의미가 없다.”

―간호교육 철학은 무엇이며 어떤 간호사를 키워내고 싶은가.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 실천할 때 성취되는 것이다. 학생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학생이 배우기 쉽게, 학생이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게 가르치려 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최적의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 활동이 간호다. 간호는 순수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가장 약한 순간이 아플 때다. 약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일이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간호사에게 ‘친절해라’, ‘참아라’, ‘희생해라’ 같은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간호사가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간호하는 게 중요하고 그래야 장기적으로 환자들을 제대로 보살필 수 있다. 그래서 저는 희생보다는 헌신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헌신은 본인이 기꺼이 하는 것이고 희생은 할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움, 사람다움을 지켜줄 수 있는 간호사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으로 ‘잘해야지, 친절해야지’라고 다짐하는 것만으론 안 된다. 글로벌 간호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 인지적 역량, 윤리적 역량, 소통 역량, 상황인식 역량, 실무 역량 5가지를 향상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치열한 실무현장에서 간호 업무를 하면서도 간호사 자신을 돌보는 법을 가르치는 게 교수들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전=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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