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0> 이정원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항암효과 구충제, 독성-흡수율 약점
혈액 흡수율 높이는 실험 진행중
항암치료 비중 높아 ‘좋은 약’ 절실
《동물용 구충제 ‘펜벤다졸’로 암을 치료할 수 있을까. 한때 인터넷 공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다. 실제 효과를 봤다는 증언도 나왔다. 의학자들은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의 절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정원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50)는 난소암 분야에서 명의 소리를 꽤 듣는다. 그러니 이 교수에게도 “구충제가 효과가 있냐, 없냐”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 교수는 관련 논문이 있는지를 찾아봤다. 원론적이거나 빈약한 수준의 논문 몇 편이 전부. 딱히 건질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구충제가 항암 효과가 있는지, 인체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곧바로 동물실험에 들어갔다.》
○ “구충제 항암 효과 검증 작업 중”
이 교수는 먼저 실험용 쥐에서 암 세포와 정상 세포를 분리했다. 각각에 구충제 펜벤다졸을 투여했다. 놀랍게도 암 세포가 죽었다. 하지만 환호성을 지를 수는 없었다. 독성이 너무 강해 정상 세포까지 모두 죽었기 때문. 이러면 인체에 투입할 수 없다.
흡수율도 문제였다. 구충제가 장에서 흡수되는 비율을 따져보니 5∼10% 정도였다. 독성을 없앤다 하더라도 흡수율이 낮으니 치료제로서의 기능을 못 할 수 있다. 정맥 주사로 약을 투입하는 방식을 떠올렸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구충제가 지용성 성분이어서 혈액에 흡수되지 않았다.
이 교수가 얻은 잠정 결론. “독성 제거와 흡수율 제고라는 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이 교수는 흡수율을 높이는 방법부터 찾아봤다. 나노 단위의 수용성 물질로 구충제 성분을 에워쌌다. 이렇게 하면 지용성이라도 혈액에 흡수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 실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교수 또한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환자 진료만으로도 벅찰 텐데 굳이 이런 실험을 하는 이유가 뭘까. 이 교수는 “암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도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난소암, 견디며 이겨내는 질환”
이 교수에 따르면 난소암은 무척 까다로운 암이다. 1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은 90%를 넘지만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다른 종류의 암보다 전이가 잘되며 그 속도도 빠르다. 이런 성질 때문에 환자의 80% 정도는 3기 이후에 발견된다. 재발 확률도 다른 암보다 높다. 이 때문에 난소암의 5년 평균 생존율은 50% 안팎으로 떨어진다.
수술이 가능하다면 수술로 1차 치료를 한다. 이어 항암 치료를 하는데, 보통 6회가 기본이다. 항암 치료의 비중이 높은 편. 그만큼 ‘좋은 약’이 절실하다. 다행히 표적치료제가 다양해져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찾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재발했을 때도 해법은 ‘새로운 약’에 달려 있다.
약을 찾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 3년 전 이 교수를 찾아온 60대 초반의 A 씨가 그런 사례다. A 씨는 그보다 3년 전에 난소암 수술을 받았고 30회 정도 항암 치료를 했다. 별 효과가 없었다. 이 교수는 다시 수술했고, 환자에게 적합한 약을 찾아내 투여했으며, 방사선 치료도 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A 씨의 몸에서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 A 씨는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하는 상태. 이 교수는 “난소암은 견뎌내는 병이다.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약물이 나와 치료가 가능해진다. 포기는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 “15년째 새로운 약 찾기에 도전”
결국 새로운 약을 찾아내는 게 관건. 이 교수는 구충제 동물실험만 한 게 아니다. 2005년부터 부인암 치료제 연구를 계속하고 매년 3, 4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실험용 쥐 혹은 사람의 세포를 쥐에 이식한 ‘인간유래동물모델’로 연구한다.
성과도 꽤 있다. 무좀 치료제의 특정 성분이 혈관의 생성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 원리를 암 세포에 적용하면 암 세포를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특정 위장약의 성분이 암 세포 주변의 산성도가 높아져 약이 잘 듣지 않는 항암제 내성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3년 전에는 세포 치료제 개발에 뛰어들기도 했다. 암이 퍼질 때 생겨나는 특정 단백질을 죽이는 면역 세포 치료제였다. 안타깝게도 신약 후보 물질의 독성이 강해 연구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처럼 모든 연구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이 교수는 포기하지 않는다.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고 언젠가는 약으로 만들어내겠단다. 이 교수는 요즘도 바이오 벤처와 공동으로 약물을 개발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순항 중. 동물실험을 조만간 끝내고, 5년 이내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에 돌입할 계획이다.
▼ 조기발견이 최선… 골반 초음파 등 매년 부인과 검진 바람직 ▼
이교수가 말하는 부인암 예방법
난소암,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암은 모두 여성 생식기에 걸리는 암이다. 이 셋을 합쳐 부인암이라 부른다. 난소암에 비하면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암은 비교적 수월한 암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정원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두 암 모두 자궁에 생기지만 발생 원리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자궁경부암은 자궁의 입구인 경부에 생기는 암이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이 70∼90%에 이른다. HPV 바이러스 백신을 맞으면 예방이 가능한 것이 특징. 실제로 백신 접종이 활발해지면서 자궁경부암 발병률은 많이 낮아졌다. 따라서 HPV 예방 접종이 암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9∼26세가 접종 대상이며 일반적으로 3회 접종을 하면 면역력이 생긴다.
자궁내막암은 자궁 안쪽에 생기는 것으로, 성호르몬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50대 폐경 이후 많이 발생하지만 미혼 여성과 임신 경험이 없는 여성, 비만 여성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이 교수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분비되는 황체호르몬이 자궁내막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데, 결혼 연령대가 늦어지면서 30, 40대에 발병률이 증가하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질 출혈은 자궁내막암의 위험 신호다. 하혈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두 자궁암 모두 조기에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자궁경부암 환자의 80%가 1기에 발견된다. 그 덕분에 5년 생존율도 비교적 높다. 다만 발견이 늦어지면 자궁을 적출해야 할 수도 있다.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항암 치료도 받아야 한다. 생존율도 크게 떨어진다. 이 교수는 “결국 일찍 발견하는 게 핵심이다. 매년 골반 초음파와 자궁경부세포 검사 같은 부인과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