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에 크로스핏(Cross Fit)을 시작한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막내아들의 권유에 시작했고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은 무려 30세 이상 젊게 살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한약재상 백설물산을 운영하는 이문규 씨(78)는 80세를 눈앞에 뒀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배경엔 ‘2030’ 젊은이들이 즐기는 크로스핏이 있었다.
크로스핏이 무엇인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훈련한다는 뜻의 크로스 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신체 단련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를 합친 운동. 크로스핏의 핵심은 ‘크로스 오버(Cross Over)’다. 파워리프팅의 최대근력, 역도의 파워, 육상의 스피드, 기계 체조의 협응력…. 서로 다른 영역을 한 데 모아 종합적으로 하는 운동이다. 기구도 다양하다. 아령과 역기 이외에도 케틀벨, 우드링, 샌드백, 타이어, 밧줄….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의 운동 능력을 고루 발달시킨다. 크로스핏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소방관이나 군인이 주로 애용할 정도로 거친 운동이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상의 특수성 때문이다. 최근에는 종합격투기 선수들의 훈련법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런 운동을 ‘노익장’ 이 씨가 즐기고 있는 것이다.
“3년 전부터 헬스클럽에 등록해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유연성을 위해 요가도 시작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크로스핏을 해보라고 권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막내 여동생 등 주위에서 ‘그러다 다친다. 절대 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틀림없이 큰 문제없을 테니 시작하라고 해서 일단 시작은 했다.”
이 씨는 평생 운동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 달리기도 못했고 운동회 때 축구는 단 한번도 못해본 ‘몸치’였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안 부러웠는데 운동 잘하는 애들은 부러웠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 들어서도 노력하니까 됐다. 이 씨는 60세를 넘기면서 운동에 관심은 갖기 시작했다. 피트니스센터 등에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아령과 덤벨 등을 갖추고 집과 사무실에도 틈틈이 운동했다. 동호회를 만들어 자전거(사이클·MTB)도 탔다. 해동검도와 합기도도 했다. 모두 건강을 위해서였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3년 전 헬스클럽에 등록한 것이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크로스핏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 1시간 정규수업을 받고 1시간 따로 운동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솔직히 처음엔 줄넘기를 30회도 못해 숨을 헐떡였다. 지금은 100회를 넘게 해도 거뜬하다. 심폐능이 좋아진 것이다. 근력도 좋아졌다. 게다가 유연성도 요가를 할 때보다 좋아졌다. 60세를 넘기며 여러 가지 운동을 해봤지만 크포스핏이 가장 좋다고 느끼고 있다.”
외관이 달라졌다. 굽었던 어깨도 펴졌고 휘었던 다리도 제 모양을 찾아가고 있다. 주위의 반응도 좋다. 함께 운동하는 ‘젊은이들’이 그가 동작 하나 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무엇보다 개인적인 만족감이 크다. 그는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감이 찾아온다. 이런 운동 더 일찍 시작했어야 한다”며 웃었다.
물론 젊은이들처럼 강도 높게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이 씨는 “젊은이들이 팔굽혀펴기 등 특정 운동을 20개 한다고 내가 그렇게 할 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2개, 3세, 5개씩 하다보면 나중엔 10개, 20개까지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크로스핏 웨일 미아점의 코치들도 이 씨에게 강조하는 게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것. 천천히 꾸준하게 하면 몸은 변화한다는 스포츠 과학적 원리에 따라 세밀하게 지도하고 있다. 특히 부상 당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이렇게 운동한 결과 이 씨는 턱걸이를 1회에 10개를 넘게 한다. 역기를 땅에서 들어올리는 데드리프트는 85kg까지 소화한다. 85kg은 웬만한 사람은 들지도 못하는 무게다. 이 씨를 지도하는 윤민식 크로스핏 웨일 미아점 코치(42)는 “어르신 같은 경우 신체 능력이 운동하지 않은 30대 체력, 운동 열심히 하는 40대 체력 수준이다. 정말 대단하다. 운동하지 않은 20대도 당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7월 11일 강원도 동해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린 2020 스파르탄 레이스 스프린트 5km를 완주하고 왔다. 스파르탄 레이스도 젊은이들이 즐기는 ‘극한 레이스’다. 스파르탄 레이스는 5km부터 10km, 21km까지 달리며 다양한 난이도의 장애물을 정복해나가는 레이스다. 달리는 장소도 도로가 아닌 모래해변이나 산길 등 쉽지 않는 곳이다. 5km는 장애물 20개, 10km는 장애물 25개, 21km는 장애물 30개를 넘는 식이다. 장애물은 넘는 것, 건너는 것(물, 밧줄), 드는 것, 던지는 것 등 다양하다. 이 씨는 망상해수욕장 해변 모래를 달리며 다양한 장애물을 넘었다. 그는 “창던지기 등 일부 종목은 내가 도저히 소화를 못했다. 하지만 즐거운 경험이었고 내년에 꼭 다시 도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9월 열리는 2020 스파이더 얼티밋챌린지에도 도전한다. 2016년부터 진행된 얼티밋챌린지는 체력을 극한까지 끌어내는 운동인 크로스핏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체력왕’을 가리는 것이다. 장애물(허들) 달리기를 하는 사이사이에 턱걸이와 팔굽혀펴기, 토스투바(Toes to bar·철봉에 매달린 채 두 발끝을 동시에 바에 닿게 하는 동작), 바터치버피(Bar touch burpee·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일어나 머리 위 바를 터치한 뒤 푸시업) 등을 일정 횟수 한 뒤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순위를 가리는 방식이다. 규정대로 동작을 하지 않으면 카운트를 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3분 마라톤’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이 씨는 특별 초청 케이스로 출전한다.
“코치들이 나가보라고 해서 출전을 결심했다. 솔직히 토스투바가 안 돼 고민을 했는데 계속 연습을 하니 지금은 잘 된다. 이렇게 얼티밋챌린지 등 대회에 출전하는 게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나가서 순위에는 못 들겠지만 나 같은 사람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씨는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크로스핏을 하라”고 권유한다. 그는 “내가 해본 최고의 운동이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친구 등 주위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다치니 그만하라’고 하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요즘 약재를 팔면서도 운동을 해야 효과가 좋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운동을 병행하는 사람들은 약효를 받아 금세 건강해졌다고.
“운동은 행복이다. 행복하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 오래 살아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의미가 있다.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나이 들수록 잘 걸어 다녀야 한다. 난 걸을 수 있는 한 운동할 것이다. 혹 내가 운동하지 않는다면 걷지도 못하는 폐인이거나 아마도 이 세상에 없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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