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주교도소 남창우 교도관(57)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달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과음을 했어도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 교도행정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오는 스트레스를 1시간에서 1시간 30분 달리면서 털어낸다. 땀을 흠뻑 낸 뒤 샤워하고 아침을 먹고 출근한다. 그는 “마라톤이 나를 지켜주는 최고의 명약”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2005년 어느 날 그냥 달리고 싶어 밖으로 나가 달렸다. 살도 쪘고 스트레스도 날릴 겸해서 무작정 달렸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놓았다.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달렸다. 산도 달리고 운동장 트랙도 달리고…. 그 땐 들개처럼 동네 들녘을 뛰어 다녔다.”
이렇게 몇 개월을 달린 뒤 그해 10월 경북 경주에서 열린 동아일보 2005경주오픈마라톤(현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를 처음 완주했다. 3시간 45분. 아쉽게도 이 기록이 개인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너무 무리를 했었나보다. 경주오픈마라톤을 마친 뒤 무릎 장경인대염으로 운동을 하지 못했다. 1년을 쉬었다. 그러니 67kg 이던 체중이 77kg으로 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두 달 열심히 치료하면 됐는데 그냥 쉬면된다고 생각하고 쉬어서 역효과가 왔다. 허송세월을 보낸 셈이 됐다. 그 때부턴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달리고 있다. 그래도 최소 주 5회 이상, 매일 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 교도관은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천천히 체계적으로 달릴 것을 권유한다.
“마라톤은 시작이 중요하다. 짧지만 달린다는 게 중요하다. 처음엔 운동장 한바퀴로 시작하지만 계속 달리면 느는 게 달리기다. 모든 행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행동은 자주 하면 실력이 늘게 돼 있다. 천천히 걷듯이 달리면 되고 그러다 보면 5km, 10km, 하프코스, 결국 풀코스도 완주할 수 있다.”
남 교도관은 키 168cm에 체중 80kg로 다소 과체중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그 몸을 하고 달려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좀 많이 먹는 편이다. 술도 좋아한다. 그래서 이렇게 매일 달리는데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달리기 때문에 몸엔 전혀 이상은 없다.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하나도 없다. 달리기가 내 몸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1989년 10월 대전교도소로 임관한 남 교도관은 2016년 8월 8일 대전교도소에서 ‘사형수 도주 미수’ 사건에 대한 문책으로 진주교도소로 옮겨오면서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됐다. 당시 ‘희대의 살인마’ 정두영이 탈옥을 시도하다 잡혔는데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었다.
“처음엔 유배 온 느낌이라 술을 많이 마셨다. 또 요즘은 교도관이 수용자 눈치를 보는 시대다. 좀만 강압적으로 하면 문제를 삼는다. 수용자들이 ‘갑질’하는 세상이다. 우리도 경찰도 그런 스트레스를 풀어 가면서 살아야 한다. 난 달리며 그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이젠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진주 들녘을 달리고 있다.”
남 교도관은 마라톤을 ‘운동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운동 복장에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든 달릴 수 있다. 특히 요즘 같이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 새벽에 달리면 아무도 없어 맘껏 달릴 수 있다. 그는 ‘새벽 형 인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그 자체로 세상 모든 것을 얻는 듯한 기분이다. 그는 “달리는 시간은 오롯이 사색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글쓰기 구상도 하며 달린다. 달리면서 글의 얼개를 짜는 것이다. 달리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잘 정리 된다”고 말한다.
남 교도관은 최근 ‘마라토너와 사형수’라는 책을 섰다. 2010년부터 10년간 각종 마라톤대회를 달리며 느낀 소회를 책으로 엮었다.
“마라톤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릎이 절단 난다고 하고 너무 많이 달리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하고. 우리 가족도 나보러 ‘제발 마라톤 하지 말고 걸어라’고 한다. 하지만 마라톤은 절대 우리 몸을 망치지 않는다. 올바른 방식으로 달리면 무릎도 더 좋아진다. 마라톤의 긍정적 효과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책을 썼다.”
그는 항간의 ‘마라톤 오해’에 대해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쓴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것들’을 인용했다.
“간혹 달리기와 관련해 흔한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다. 무릎이 상할까 봐 달리기를 못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다. 의사 입장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 사람들의 무릎은 오히려 너무 안 써서 상하는 것이다. 무릎을 보호하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그게 무릎을 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적당히 쓰고 달리는 정도의 충격을 줘야 더 튼튼해지는 게 무릎이다. 물론 너무 무리하면 무릎도 상하겠지만 천천히 달리기 정도의 운동으로 상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달려도 된다.”
책 끝 부분엔 대전교도소에서 집행된 ‘마지막 사형’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3명에 대한 사형집행을 묘사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에선 사형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이 됐으니 마지막 ‘목격자’로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풀코스 32회, 하프코스 185회, 10km 10회를 달렸다. 요즘은 풀코스는 4시간 30분 페이스로 천천히 달린다. 코로나19로 각종 대회가 열리지 않지만 혼자 달리고 있다. 그는 피트니스센터에서 근육운동도 꾸준히 한다. 상체 하체 근육이 골고루 발달해야 잘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남 교도관은 “마라톤 풀코스는 아이를 낳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풀코스를 뛸 때 30km 이후에는 철저하게 사투를 벌이면서 달리다가 골인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천하를 얻은 듯 짜릿한 희열을 맛본다. 이 맛에 중독 돼 자꾸 풀코스를 달리는 것이다. 극심한 고통이 끝나는 순간 짜릿한 희열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마라톤과 아이 낳는 것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분들이 ‘아이도 낳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참으로 무엄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풀코스를 32번 뛰었으니 난 아이를 32명 낳은 셈이다. 앞으로도 아이를 30명은 더 낳고 싶다. 지금까지 15년간 4만 km를 달렸고 앞으로 남은 인생 9만 km를 더 달리겠다. 13만km를 다 달릴 때쯤 내 인생도 끝나갈 것이다. 그때가 90세 정도 일 것이고 그 땐 마라톤에서 은퇴할 예정이다. 하지만 은퇴하고도 달리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마라톤을 하면서 ‘이런저런 운동을 해봤지만 마라톤이 최고였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사실이 그렇다. 운동도 되고, 사색도 하고, 극한의 상활을 넘기도 하고, 결국 얻는 것은 짜릿한 쾌감과 자신감, 그리고 건강…. 세상에 이런 좋은 운동이 어디 있나? 단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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