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나라’ 끌어내린 中 게임 ‘원신’…RPG 명가 자존심을 건들다[신무경의 Let IT Go]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23시 00분


중국 게임 구글플레이 매출 톱20 중 6개
멀티플랫폼 기술력, 현지 운영 능력 돋보여
IP 재활용한 국내 게임사, 신기술 도입 둔감
PC 온라인 유산 버려야 더 큰 성공 가능해

중국 게임회사 미호요가 내놓은 신작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원신’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지난달 28일 중국 게임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50여 개 국에 동시 출시됐는데요. 국내에서는 9일 만에 구글플레이 매출 기준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넥슨이 7월 내놓은 올해 최대 히트작 ‘바람의나라: 연’을 제쳤습니다. 바람의나라: 연은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장수 MMORPG인 바람의나라를 모바일로 만든 게임인데요. 한 때 ‘리니지2M’을 제치고 매출 2위를 기록하며 엔씨소프트가 장기간 1, 2위를 지키고 있던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지각변동을 이끌어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바람의나라: 연이 국내 시장에서, 더 나아가 RPG 장르에서 중국에 ‘동메달’을 내줬으니 RPG 명가의 자존심이 구겨진 셈입니다.

원신은 글로벌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원신 효과에 130달러를 쓰고 말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하는 등 외신들의 반응도 뜨거운데요. 원신은 출시 나흘 만에 글로벌에서 1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기술력, 현지화, 운영 노하우 등 삼박자
“언제 어디서나 유저들이 편하게 게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 멀티 플랫폼 전략, 국내에서 특히나 치열한 RPG 장르에서 카툰렌더링(3차원·3D 그래픽을 이용해 만화 같은 느낌을 주는 화면을 만드는 것)을 활용한 고퀄리티의 일러스트가 유저들의 마음에 닿은 것 같다.”

7일 미호요 관계자는 원신 성공요인을 묻는 질문에 이 같은 답변을 줬습니다.

원신은 모바일, PC, 콘솔(플레이스테이션4)에서 어떤 플랫폼에서든 동일한 캐릭터를 끊김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멀티 플랫폼’을 취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시도를 한 게임사는 전무합니다. 엔씨소프트가 앞서 모바일로 내놓은 리니지2M을 지난해 11월 PC에서도 즐길 수 있도록 ‘퍼플’을 서비스하기 시작했고 넥슨은 선(先) 모바일 출시했던 ‘V4’에 대해서 지난해 12월부터 PC로도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한 정도였죠.

아울러 카툰렌더링은 업계에서 새로운 기술은 아니지만 해당 기술이 구현돼 이용자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는 기존 중국 게임들이 갖고 있던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일본 게임풍을 띈다는 반응입니다. 일본 닌텐도의 ‘젤다의 전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한글 자막, 한국어 더빙도 자연스러워 이질감을 줄였다는 평가입니다.

이는 중국 게임사의 기술력이 이미 상향 표준화 됐음을 보여줍니다. 실제 미호요는 원신을 개발하는데 개발 인력만 500명을 투입했다고 합니다. 게임 제작에 3년 반이나 소요됐고요. 원신 개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운영 측면에서도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미호요는 지난해 6월 원신을 중국에서 최초 공개했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11월 국내 최대 게임행사인 지스타에 참여해 게임을 알렸습니다. 미호요는 지스타 참여 시점에 맞춰 한국에서 원신 온라인 커뮤니티(네이버 공식 카페)를 만들기도 했는데요. 현재 이 카페의 가입자는 1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게임 출시 1년 여 전부터 공을 들이기 시작한 겁니다. 해당 카페는 미호요 본사 운영팀이자 한국인 직원이 직접 운영한다고 하네요. 카페를 통해 게임 출시 이후 발생하는 건의사항과 버그, 문의 등을 취합하고 접속 오류,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제재 등 조치들을 공개하면서 이용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국지사인 미호요 코리아도 지난달 설립돼 인력 채용중이고요.

●한중 양 강 구도로 재편되는 중
이렇듯 중국 게임의 퀄리티가 급상승해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날 현재 4399코리아의 ‘기적의 검’, 릴리스 게임즈 ‘라이즈 오브 킹덤즈’는 구글플레이 매출 기준 각각 5위와 10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릴리스 게임즈 ‘AFK 아레나’(14위), 유주 게임즈 코리아 ‘그랑삼국’(17위), 창유 ‘일루전 커넥트’(20위)도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매출 상위 20위권만 한정 지으면 한국 게임(13개)과 중국 게임(6개)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국내 게임사들은 중국 게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요.

“중국 게임사들은 게임을 8시간 씩 3교대로 24시간 개발하고 있다. 공장처럼 게임을 찍어내고 있는 것이다. 생산력도 탁월한데다 과거보다 기술력이 뛰어나졌다. 과거에는 ‘카피캣’이라고 불러도 과언은 아니었는데 독자성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 게임 A사 관계자)

“시간을 들인 만큼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느낌을 이용자들에게 듬뿍 주고 있다. 이용자 몰입감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운 점이다.” (국내 대형 게임 B사 관계자)

“모바일 게임 부문에서는 중국 게임의 경쟁력이 한국 못지않기 때문에 국내 게임 산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은 상당 부분 지속될 것으로 본다.” (국내 대형 게임 C사 관계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 게임들의 한국 시장 공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적의 검이나 라이즈 오브 킹덤즈 같은 게임들은 이미 국내에서 서비스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매출 10위권에 안착해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팬층이 두터워지고 기반이 생기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 게임 시장이 한중 양강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 예측되는 대목입니다.

●PC 온라인 성공 유산 버려야
중국 게임사들이 한국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 게임사들이 중국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판호(유통권)을 발급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인데요. 현지에서는 일종의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죠.

최근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 넥슨인데요. 넥슨은 연 매출 1조 원을 가져다주는 지식재산권(IP) 던전앤파이터의 모바일 버전을 8월 중국서 선보이려다 출시 예정 하루 전날 연기하고 말았습니다. 출시 전날 게임 출시를 연기하는 일은 드문 경우로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중국 탓만 할 순 없습니다. 한국 게임들에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리 과감한 시도가 줄었습니다. 멀티플랫폼 구현부터 클라우드 게임, VR 게임 등 대형 게임사들로부터 새로운 시도들이 선제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넥슨은 연말을 목표로 PC와 콘솔에서 크로스플레이 할 수 있는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를 개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신의 흥행이 뼈아픈 이유입니다.

아울러 중국 게임 중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 특징을 보면 신규 IP(원신)를 활용했다는 점일 겁니다. 반면 리니지, 리니지2, 바람의나라, 카트라이더, 뮤, R2, 블레이드&소울, A3, 라그나로크 등 많은 한국 게임들은 10여 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기존 IP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들이죠. 국내 게임사들은 기존 IP의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IP 개발이 아쉽습니다.

중국 게임사들은 한국 개발사들이 잘 만들지 않는 슈퍼셀 클래시 오브 클랜 같은 유형의 장르(라이즈 오브 킹덤즈)를 공략했다는 점을 꼽을 수도 있고요. 라이즈 오브 킹덤즈는 2019년 9월 한 때 국내에서 구글플레이 매출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참신함을 원하는 이용자들은 많은데 그 수요를 중국 게임사가 채워주고 있는 형국이라고 해야 할까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는 “한국 게임사들이 PC 온라인 게임의 성공에 취해있을 때 중국 게임사들은 한국의 PC 온라인, 일본이 강점을 갖고 있던 콘솔, 그리고 그들의 IP까지 학습하면서 크로스플랫폼 게임과 중국 게임 같지 않은 일본풍 게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며 “우리 기업들이 PC 온라인 시대의 유산이던 IP를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과감한 도전을 하지 않는 다면 국내 시장의 더 큰 부분을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무경기자 y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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