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7>박영근 서울성모병원 안과 교수
당뇨망막병증, 출혈전엔 진단 못해
안구혈관 촬영기 도입해 조기발견
안구에 전이된 림프종 진단법 개발
《지난달 초 89세의 A 할아버지가 서울성모병원을 찾았다. A 할아버지는 황반변성으로 인해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황반변성은 망막의 황반이란 부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병이다. A 할아버지는 나머지 한쪽 눈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도 시력이 0.1에 불과했다. 그나마 사물을 분간하던 눈마저 갑자기 깜깜해졌다. A 할아버지는 이제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며 낙담했다.》
박영근 서울성모병원 안과 교수(40)가 A 할아버지를 살펴봤다. 눈 안쪽을 보니 황반 부위에서 출혈이 발견됐다. 신속한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박 교수는 망막 안에 있는 유리체를 제거해 출혈을 막았다. 수술 결과 시력을 더 좋게 할 수는 없었지만 나머지 한쪽 눈의 실명을 막을 수 있었다. A 할아버지는 자식과 손자들 얼굴을 계속 볼 수 있게 돼 감사하다며 펑펑 울었단다. 박 교수도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 황반변성, 완치 어려워 악화 막는 치료에 중점
황반변성은 당뇨망막병증(당뇨병 합병증에 의한 망막질환), 녹내장과 함께 3대 실명 질환이다. 녹내장을 뺀 두 질병은 모두 망막 질환으로 분류된다. 박 교수는 바로 이 망막 질환 분야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 교수가 진료하는 환자의 80% 이상이 황반변성과 당뇨망막병증 환자다. 황반변성은 완치가 어렵다. 치료법은 대부분의 병원이 동일할 만큼 표준화돼 있다. 증세 악화를 막는 치료가 원칙이다. 보통은 매달 혹은 2개월마다 주사를 맞는다. 그나마 약물이 개선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박 교수는 “최근 3개월 혹은 4개월마다 투입하는 주사까지 개발됐다”며 “약이 다양해져 환자들로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다만 가격이 비싸 환자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1, 2개월마다 맞는 주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10만∼20만 원 정도다. 하지만 3, 4개월마다 맞는 주사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1회 주사를 맞는 데 90만 원 이상 든다.
당뇨망막병증 또한 치료법이 표준화돼 있다. 따라서 빨리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예전에는 눈 안쪽에서 출혈이 생기기 전에는 이 병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출혈이 보이지 않으면 추적 관찰할 뿐이었다. 몇 년 전 안구 혈관을 촬영하는 첨단 기기가 도입되면서 이 문제가 해결됐다. 이 기기를 통해 혈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된 것. 실제로 박 교수는 이 기기를 이용해 112명의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안구 혈관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당뇨망막병증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초기 당뇨 환자 중에도 혈관 심층부에서는 이미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당뇨망막병증이 나타난 90명을 대상으로 치료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 위한 후속 연구도 진행했다. 연구 결과를 담은 두 편의 논문은 모두 올해 국제 의학저널에 게재됐다.
○ 눈에 전이된 림프종 진단법 국제저널 게재
드물긴 하지만 안구에 림프종이 전이되는 사례가 있다. 일단 안구로 전이된 림프종은 다시 뇌로 전이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환자들이 눈에 염증이 생긴 것으로 잘못 알고 방치한다. 박 교수는 이런 환자를 대상으로 안구 내 림프종을 진단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안구를 마취한 뒤 내부에서 ‘방수’라는 눈물을 채취한다. 이어 방수에 들어 있는 8종류의 사이토카인을 분석한다. 림프종에 걸렸거나 암이 재발한 경우 사이토카인 수치가 올라간다. 박 교수는 2018년부터 환자 14명을 대상으로 이 연구를 진행했으며 관련 논문은 국제 의학저널에 게재했다. 실제 환자 진료에도 이 기법을 도입해 안구 내 림프종의 조기 발견과 치료에 쓰고 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 기법은 서울성모병원에서만 유일하게 진료에 활용하고 있다.
○ 수술하면서 ‘수다’ 떠는 의사
대학병원 의사들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최소한 30분, 길면 1시간 이상 대기했다가 3분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짧은 시간에 환자들이 궁금한 것을 모두 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박 교수는 좀 다르다. 모니터 화면을 환자 쪽으로 돌려놓고 검사 결과를 설명한다. 가급적 환자의 질문에 자세하게 답한다. 현재 상태가 어떤지,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박 교수는 “외래 진료 시간이 좀 길어지더라도 이런 소통이 필요하다. 그래야 환자가 의사를 믿고, 만족도도 높아지며 그 결과 치료 효과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수술할 때에도 말을 많이 한다. 수술이 끝나면 입이 아플 정도란다. 주로 수술 진행 상황을 알려주고, 이상 여부를 묻기 위해 환자에게 말을 건다. 이를 테면 “지금부터 레이저 시술을 하는데 이 부위가 따끔할 거다”라거나 “수술 기구가 들어가면 여기가 뻐근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말해 준다. 또는 “지금 어디 불편한 데 없느냐”는 식의 질문도 한다. 보통 안과 수술을 할 때는 눈 부위만 마취하기 때문에 환자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 식의 소통이 환자의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보통 망막과 백내장 수술을 동시에 한다면 50분 정도가 걸리는데, 환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시간은 2, 3시간이다. 수술이 몇 퍼센트가 진행됐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할지만 알려줘도 안심하는 환자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수술이 끝난 후 회진할 때 물어보면 10명 중 8명 이상은 “의사가 계속 정보를 준 덕분에 불안감이 줄어들었다”며 만족한다고 한다.
수술실을 떠들썩하게 하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박 교수는 “집도하는 의사들끼리 알 수 없는 전문 용어를 써가면서 대화하면 오히려 환자들은 불안해하더라”며 가급적 같이 수술하는 의사들과는 말을 줄인다고 한다. 또 수술에 집중해야 할 때는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말을 아낀다.
▼ 박교수가 말하는 황반변성 예방법 ▼
채소-생선 많이 섭취 스마트폰 들여다볼땐 20분 보면 20초는 쉬어야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망막병증과 달리 황반변성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50대 이후에 많이 걸린다. 황반변성 환자의 90% 이상이 50대라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을 정도다.
황반변성은 잘 치료하면 병을 악화시키지 않고 시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초기에 거의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쪽 눈에만 황반변성이 생기면 실명 수준이 될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초기 증세를 면밀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도로나 횡단보도가 휘어져 보이는 게 대표적인 초기 증세다. 사람을 쳐다보는데,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얼굴 주변만 잘 보인다면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확률이 높다. 한쪽 눈만 잘 안 보일 때도 황반변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가급적 매년 안과 검진을 받는 게 좋다.
황반변성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영근 서울성모병원 안과 교수는 우선 금연할 것을 권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고혈압과 비만도 황반변성을 유발하는 위험 인자이니 관리해야 한다. 자외선 노출도 줄여야 한다. 자외선은 황반변성 외에 백내장을 유발하는 위험 인자이기도 하다. 외출할 때는 선글라스와 모자 등으로 눈을 보호해야 한다.
박 교수는 “황반변성을 예방하기 위해 눈 영양제를 먹을 필요는 없다”며 “그 대신 루테인 성분이 풍부한 채소와 생선을 많이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와 디지털 기기가 눈 건강을 해친다는 지적이 많다. 박 교수는 ‘20분+20초 원칙’을 지킬 것을 권했다. 스마트폰 화면이나 디지털 기기의 모니터를 20분 이상 연속적으로 보지 말아야 하며 20분마다 20초는 꼭 쉬라는 뜻이다. 휴식할 때는 먼 곳을 바라보는 게 좋다. 이렇게 하면 안구 근육이 이완되며 노안이 심해지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때는 눈이 건조해지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중간 중간에 의도적으로 눈을 깜빡여야 한다. 인공 눈물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화면 밝기는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글자 크기도 키워야 눈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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