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불편 줄이는 법 연구하는 다둥이 아빠 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9일 03시 00분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21>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
의대 동기 아내와 다섯 자녀… 넷째까지 직접 의사로 받아내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다섯 명의 아이를 둔 다둥이 아빠 의사다. 조 교수는 임신
이전의 건강 상태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며 임신 이전부터 철저히 몸 관리를 할 것을 주문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다섯 명의 아이를 둔 다둥이 아빠 의사다. 조 교수는 임신 이전의 건강 상태가 평생 건강을 좌우한다며 임신 이전부터 철저히 몸 관리를 할 것을 주문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46)는 퇴근 후나 휴일에도 맘 편하게 쉬지 못한다. 늘 휴대전화를 곁에 둔다. 언제 병원에서 콜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조산이나 산후 출혈로 응급실로 실려 온 환자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면 휴대전화가 울리자마자 받아야 한다. 조 교수 환자의 70% 이상이 고위험 임신부다. 나이가 많거나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같은 질병이 있는 환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고위험 임신부들은 보통의 임부보다 궁금한 것도 많고 두려움도 크다. 》

조 교수는 오전 회진을 끝낸 후 따로 환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위로하고 궁금한 것에 답한다. 설명을 잘하는 데다 친절하고, 실력까지 있으니 조 교수는 환자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다.조 교수에게 진료를 받겠다며 멀리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환자들도 적잖다.

○ “출산은 큰 행복” 아이 좋아하는 다둥이 아빠
조 교수에게 왜 산부인과를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아이들을 상당히 좋아한단다. 게다가 출산 그 자체가 모두에게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 산부인과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조 교수는 5명의 자식을 둔 다둥이 아빠였다. 의대 본과 3학년 때 의대 동기였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이후 자신은 산부인과, 아내는 소아과를 택했다. 전공의를 거의 마칠 무렵인 결혼 6년 차부터 아이를 가지려 했다. 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탓일까. 임신이 되지 않았다.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했을 때도 순탄하지 않았다. 아내는 세 번이나 유산했다.

2008년, 임신을 시도한 지 4년 만에 첫 아기가 태어났다. 실로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고, 그토록 바라던 축복이었다. 2년 후 조 교수 부부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다시 2년 후 또 아이를 낳았고, 3년 후 넷째를 낳았다. 이후 미국 연수를 가서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지금 세 살이 된 다섯째 막내다. 조 교수는 첫째부터 넷째 아이를 모두 직접 받았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아빠이자 세상을 보게 해 준 의사인 셈이다.

요즘은 육아 문제로 조금 힘들다고 한다. 일단 아내에게 미안하다. 도우미를 쓰고는 있지만 다섯 아이를 챙기는 건 쉽지 않다. 결국 아내는 당분간 소아과 의사로서의 삶을 내려놓았다. 파트타임제로 잠깐 의사 일을 할 뿐 나머지 시간에는 내내 엄마로서 육아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아이들이 빨리 커서 아내가 의사로 복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임신 전 건강 상태가 평생 좌우”
조 교수는 현재까지 논문 110여 편을 썼다. 이 중 70여 편에 주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주로 임신 관련 질병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군의관 시절인 2011년부터 현재까지 9년째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임신하기 전 산모의 건강 상태가 출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의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밝혀냈다. 연구는 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건강보험공단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했다.

간 내부의 효소 수치를 ‘간수치’라고 한다. AST나 ALT가 대표적이다. 이 수치가 높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간염, 간경화나 다른 만성 질환에 걸릴 수 있다. 임신하기 전에 이 간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선다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2018년 조 교수는 임신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은 임산부 19만여 명의 임신 후 상태를 추적했다. 그 결과 임신하기 전에 이미 간수치가 정상 범위를 넘어섰다면 임신성 고혈압이 발생할 위험도가 21%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9년에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 임신하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은 임산부 16만여 명의 혈당치를 체크했다. 그 여성들을 추적한 결과 임신 전에 혈당 변동치가 큰 임산부의 임신성 당뇨병 발생 위험이 20% 정도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조 교수는 다시 임신 전에 건강 검진을 받은 12만여 명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충치 발생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임신 전에 충치가 있을 때 거대아를 출산할 위험이 15% 증가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 “임신부의 불편 줄이는 제품 개발”
조 교수는 미국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 크게 놀랐다고 한다. 산모를 위한 편의 시설이 너무 잘돼 있었다는 것. 몸에 착용하면 차가워지는 1회용 패드가 복도 곳곳에 비치돼 있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다. 국내에서는 출산을 끝낸 산모들은 염증 등을 억제하기 위해 얼음주머니를 쓴다. 조 교수는 “산모라면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알고 있던 것들이, 거기서는 참지 않아도 해결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현재 사내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 벤처기업에서 이 ‘쿨링 패드’를 도입하기로 하고 몇몇 업체에 타진했다. 하지만 주문량이 5만∼10만 개는 돼야 생산이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당장의 자금력으로는 불가능해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교수는 여건만 되면 쿨링 패드를 도입하겠다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산모를 위한 1회용 팬티도 만들 생각이다. 현재 디자인까지 나왔으며 곧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단다.

태아를 단단히 받쳐줘야 할 자궁 경부가 임신 중 힘없이 열릴 때가 있다. 이 경우 현재는 자궁 경부의 주변을 실로 묶는 수술을 하지만 염증, 출혈, 합병증의 위험이 있다. 조 교수는 부작용 없이 실리콘 밴드로 자궁 경부를 묶는 방법을 개발했다. 현재 시제품 개발 직전 단계에 있다. 이 밖에도 일찍 양막이 터질 때를 대비해 홍합 추출물을 이용한 치료제 등도 개발 중이다.

조 교수는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도 좋지만 임산부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연구를 늘려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의 임신부 건강 조언

태아 염려해 약 끊거나 고위험 임신 자책 말길
임신 前부터 몸 관리를

고위험 임신부들을 볼 때마다 조금준 고려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의외로 많은 임신부들이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

조 교수는 “자신이 너무 화를 내서 혹은 너무 관리하지 않은 게 ‘고위험’의 원인이 됐다고 자책하는 것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잘못된 정보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그런 자책감은 본인은 물론이고 태아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편안하게 마음먹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위험 임신부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임신부들이 임신한 후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전전긍긍한다. 고열이 나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약을 먹지 않는 임신부도 많다. 조 교수는 이 또한 옳지 않다고 했다. 조 교수는 “고열이 지속되면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 참는 것보다는 의사와 상의해서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현명하다”고 말했다.

특정 질병의 경우 임신 후에도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을 끊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임신중독증을 낮추려면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할 때도 있다. 조 교수는 “임신했다고 해서 모든 약을 끊기보다는 의사와 상의한 후 결정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임신 계획을 세우기 이전에 건강관리 계획부터 세울 것을 조 교수는 권했다. 임신하면 대체로 10주 이내에 태아의 기관들이 만들어진다. 이미 몸속에는 태아가 자라고 있지만 임신 사실을 모를 때도 많다. 이때부터 ‘몸 관리’를 하면 늦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소한 임신 계획을 세우기 한 달 이전에 임신에 대비한 건강관리 계획부터 세우라는 것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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