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신은미 씨(28)는 새해 첫 일요일인 3일 북한산을 달렸다. 우이령탐방로에서 시작해 도봉산역까지 26km. 가파른 능선을 오르내리고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바위, 개울을 지나 달리다 보면 4~5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산야를 달리는 트레일러닝(Trail-running)으로 몸에 있는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면 밤에 꿀맛 같은 잠에 빠져들고 다음날부터 일주일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신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를 트레일러닝으로 날리며 즐겁고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트레일러닝을 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트레일러닝이 없었다면 무슨 재미로 살지 막막했을 것 같아요.”
그는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안전한 운동이 트레일러닝이라고 했다.
“산은 완전히 열려 있어요. 사람들 마주칠 때만 조심하면 코로나19와는 전혀 상관없어요. 또 사실 산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아프면 못 와요.”
코로나19로 재택 근무중인 신 씨는 사람들이 왜 ‘코로나 블루(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우울증)’라고 말하는지를 몸소 느꼈다. 그는 “하루 종일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다보면 하루 1000보도 걷지 못해요. 그러다보면 몸이 찌뿌드드하고 결국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죠. 달리니까 좋아 지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컨디션이 안 좋을수록 몸을 움직여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삶도 활기차고 회사일도 활력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신 씨는 주로 새벽에 달리는데 요즘은 날씨가 추워 점심 저녁 짬을 내서 달린다.
“원래 새벽에 일어나 달려야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늘 같은 패턴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일찍 잠에서 깨면 달리고, 아니면 점심, 저녁에 달려요. 그래도 달리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없어요.”
그는 거의 매일 달린다. 집 주변이나 공원에서 3, 4일 달리고 주 2회는 산으로 간다. 일요일에는 무조건 20~30km 장거리 트레일러닝을 한다. 주로 서울둘레길, 북한산둘레길, 한양도성길 등을 달린다. 대회 출전을 앞둘 땐 주당 70km 이상을 달린다. 코로나19로 대부분 대회가 취소돼 요즘은 건강도 챙기고 기쁨을 찾기 위해 주당 40~50km를 달리고 있다.
신 씨는 어려서부터 몸 쓰는 재미를 알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 엄마 따라 다니며 요가를 배웠어요. 그 때 제 몸에 대해 깨닫게 됐죠. 호흡법과 근육 움직임에 따라 몸이 활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죠. 대학에 입할 때까지 했으니 한 5년 넘게 했을 거예요.”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운동을 등한시 했다. 술도 자주 마시고 친구들과 파티하며 밤새도록 놀기도 했다. 밤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등 생활 패턴이 깨지다보니 살도 쪘다. 호르몬에 이상도 생겨 다시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때 크로스핏(Cross-Fit)이 찾아왔다.
“크로스핏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스포츠브랜드 회사에서 데이터분석 업무를 맡아 일하고 있는데 직원들에게 크로스핏을 무료로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8년 말 2019년 초 무렵이었다. 오랫동안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크로스핏은 신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크로스핏은 여러 종목의 운동을 섞어서 훈련한다는 뜻의 크로스 트레이닝(Cross-training)과 신체 단련을 뜻하는 피트니스(Fitness)를 합친 운동. 크로스핏의 핵심은 ‘크로스 오버(CrossOver)’다. 파워리프팅의 최대근력, 역도의 파워, 육상의 스피드, 기계 체조의 협응력…. 서로 다른 영역을 한 데 모아 종합적으로 하는 운동이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힘을 써야 한다.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의 운동 능력을 고루 발달시킨다. 웬만한 사람들은 따라하기 힘들다.
“시간은 짧지만 여러 명이 함께 시간을 정해서 누가 더 많이, 더 빨리 하는지 경쟁을 하는 게 좋았어요. 경쟁하다보니 혼자 할 때는 안 나오는 파워도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순간적인 파워를 내는 재미가 쏠쏠 했어요.”
한 6개월 정도 했을까. 눈이 좋지 않아 라식 수술을 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안압이 올라가면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의사가 당분간 무게 드는 운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수영도 못했다. 크로스핏에 막 흥미를 붙일 때 쯤 그만두게 된 것이다. 그 때 찾아온 게 달리기였다.
“의사 선생님이 달리기를 권유했어요. 원래 활동적인 성격에 운동을 좋아한다고 하니 달리라고 하셨어요. 구기운동도 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어요.”
달리면 숨이 차고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반전 매력이라고 할까. 한껏 달리고 나면 상쾌했다. 그는 “숨이 차지만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난 뒤엔 뿌듯한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달리기를 하다보니 살이 너무 빠지는 느낌이 왔다. 유산소운동이라 당연한 결과지만 근육까지 빠지는 것 같아 새로운 운동을 찾았는데 주변에서 “트레일러닝을 하면 하체 웨이트트레이닝을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시작했다.
“등산은 취미로 하고 있었지만 산을 달린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해보니 제게 딱 맞은 운동이었습니다. 트레일러닝은 저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트레일러닝의 매력은 ‘정글 탈출’과 같은 극한과의 싸움이다.
“산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물과 간식만 가지고 20~30km를 달려야 합니다. 쉽지는 않아요. 가다가 길을 잃어도 어떡하든 완주를 해야 합니다. 도전의 연속이죠. 그게 저를 산으로 이끌고 있어요. 도시에서만 살다 자연 속에서 다양한 장애물을 넘으며 살아남는다는 즐거움도 컸어요. 가지고 있는 에너지 다 쓰고 행복하게 잠을 잘 수 있는 즐거움도 있고요.”
뭔가에 제대로 집중하는 것도 트레일러닝의 매력이라고 했다.
“산을 달리다보면 발을 헛디디면 큰 부상을 당할 수 있어요. 도로나 공원을 달리는 것과는 또 달라요. 육체적으로도 잘 준비해야 하지만 고도로 집중해야 합니다. 산을 달릴 땐 다른 생각 없이 온전히 달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게 저를 트레일러닝에 푹 빠지게 했어요.”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산 달리기를 즐기던 신 씨는 트레일러닝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발견했다.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린 하이트레일 나인피크 울주에서 상위권에 입상한 것이다. 하이트레일 나인피크는 경남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9개 산의 9봉을 완주하는 대회다. 신 씨는 5개봉을 완주하는 44km부분 여자부에서 3위를 했다. 기록은 8시간 52분 4초.
목표도 생겼다.
“지난해엔 대회 출전 자체가 목표였는데도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올해는 메이저 대회에서 1, 2등으로 올라서고 싶어요. 작은 목표지만 이것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게 너무 즐겁고 재밌어요. 달리다보니 건강해졌고 자신감도 생겼어요.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국내 트레일러닝 메이저대회는 거제 100km, 코리아 50K, 트렌스 제주, 지리산 화대종주 등이 있다. 5년 안에 세계 최고의 트레일러닝 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UTMB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 대회로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UTMB에 가려면 각종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따야 한다.
“매일 무엇인가에 도전한다는 것에서 제가 살아 있음을 느껴요. 산을 달리는 것도 도전이고 대회 출전도 도전이죠. UTMB도 그런 도전의 하나입니다. 차근차근 도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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