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이 24m에 체중이 75t이나 되는 참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 중 하나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됐지만 1986년 포획을 금지하는 등 국제사회의 노력을 거쳐 최근 개체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 이 거대한 몸집의 동물은 바닷속을 우아하게 헤엄치면서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음역대인 20Hz(헤르츠) 주파수로 노래를 부른다. 참고래가 노래 부르는 걸 멈추는 시간은 15분에 한 번씩 숨을 쉬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올 때뿐이다. 미국 해양학자들이 참고래의 이런 낮고 웅장한 노랫소리로 바다 밑 지질 구조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바츨라프 쿠나 미국 오리건주립대 지구해양및대기과학부 박사후연구원과 존 나벨레크 교수팀은 “해저 지진계에 담긴 참고래 소리를 분석한 결과 바닷속 지질의 두께와 종류 등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12일 발표했다.
해양학자들은 바닷속 석유를 찾거나 연구를 위해 해저 지질 구조를 파악하는 데 음파를 쏘아 반사되는 음파를 분석하는 탄성파 탐사를 쓰고 있다. 음파가 통과하는 매질에 따라 파동의 전파 속도가 바뀌는 원리를 이용해 해저 퇴적층의 두께나 지질의 종류를 파악한다. 연구자들은 선박에 설치한 에어건에서 압축된 공기를 쏘아 탄성파를 생성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소음이 커서 해양 생태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에어건이 내는 탄성파 소리는 인간을 달에 보낼 때 쓰인 미국의 새턴V 로켓이 내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이다.
연구팀은 2012, 2013년 지진 관측을 위해 미국 오리건주 인근 태평양에 설치한 해저 지진계에서 주변을 지나가던 참고래가 부른 노랫소리가 6차례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참고래는 보통 7∼40초 주기로 5Hz씩 음의 높낮이를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며 10시간 넘게 노래를 부른다. 참고래가 내는 소리는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의 세기는 전투기가 내는 소음보다 큰 189dB(데시벨)에 이른다. 자연의 동물이 내는 소리 세기 중에서도 매우 큰 편이고 그만큼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연구팀이 확인한 해저 지진계에는 고래에게서 곧바로 전파된 소리 기록 외에도 해수면에 일부 반사된 소리, 해저면에서 반사된 소리도 함께 기록됐다. 이 신호들을 분석한 결과 지진계 아래 지질층은 퇴적층과 현무암, 반려암 등 세 층으로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퇴적층의 두께는 약 500m, 그 아래 현무암 두께는 1800m인 것도 확인됐다. 참고래 노랫소리가 탄성파 역할을 한 셈이다. 참고래의 노랫소리는 세기도 크지만 장시간 지속성도 있어 본격적인 지질 측정에 활용할 수도 있다. 쿠나 연구원은 “에어건보다 정확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전 세계 바다에 참고래가 살고 있는 만큼 에어건을 쓸 수 없는 곳에서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의 음원을 활용하면 인간이 만든 수많은 소음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두아르테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과기대 교수 연구팀은 물고기와 고래, 해조류가 찰랑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야 할 바닷속이 산업화 이후 선박의 소음과 시추장비가 내는 저주파, 어군탐지기와 해군 잠수함이 내는 소나 소리로 가득 찬 것으로 나타났다고 사이언스에 5일 발표했다. 두아르테 교수는 “바닷속 생물의 소리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인공 소음의 영향을 받으면서 생물들의 행동과 생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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