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 없고 목소리도 살리는 갑상샘암 로봇수술의 권위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6일 03시 00분


[떠오르는 베스트 닥터]<28>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는 입안으로 로봇을 집어넣어 갑상샘 수술을 하는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김 교수의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의대 교수 면허를 발급해 ‘2국적 의사’가 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는 입안으로 로봇을 집어넣어 갑상샘 수술을 하는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했다. 김 교수의 수술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에서 이례적으로 의대 교수 면허를 발급해 ‘2국적 의사’가 됐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2013년 말 50대 초반의 여성 A 씨가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47)를 찾아왔다. 갑상샘(갑상선)에 양성 종양이 있는 환자였다. 피부가 울퉁불퉁해지거나 색깔이 달라지는 ‘켈로이드’ 체질인 A 씨는 수술 후 흉터가 크게 남을까 봐 걱정이었다. 김 교수는 흉터가 생기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로봇을 입안으로 집어넣어 수술하는 방식으로 김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병원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 승인 절차가 끝난 상황이어서 때마침 수술에 응할 환자를 찾고 있었다. 》

A 씨는 기꺼이 하겠다고 했다. 수술 결과는 좋았다. 걱정했던 흉터는 생기지 않았고 피부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이 수술법은 ‘경구로봇갑상샘 수술’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 수술을 배우겠다며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김 교수를 찾는 의사들이 잇따랐다.

○ 갑상샘 로봇 수술의 신기원 열어

갑상샘암은 ‘순한 암’이라 할 만큼 다른 암보다는 덜 치명적이다. 그래도 갑상샘을 들어내는 수술은 괴롭다. 예전에는 목 아래쪽 피부를 절개해 흉터가 크게 남았다. 로봇 수술이 도입된 후로는 겨드랑이나 가슴에 구멍을 내 수술한다. 이 경우에도 가슴이나 겨드랑이에 흉터가 남아 소매 없는 옷이나 수영복을 입으면 그대로 노출된다.

김 교수가 개발한 경구로봇갑상샘 수술은 말 그대로 경구(經口), 즉 입을 통해 로봇 기구가 들어가는 방식이다. 입 안쪽에 로봇 팔이 들어갈 5mm 크기의 구멍 2개와 카메라가 들어갈 20mm 크기 구멍 1개를 뚫는다. 이 구멍들은 수술 한 달 후에는 사라진다. 물론 외부 흉터는 없다. 김 교수는 “기존 수술보다 통증이 줄어들며 후두 신경 보존에도 효과가 있어 수술 후 음성 변화가 거의 생기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환자의 80%를 이 방식으로 수술한다. 나머지 20%는 로봇 수술이 어려운 사례인데, 직접 절개하는 수술을 한다. 이를테면 암세포가 턱 밑의 림프샘(림프절)까지 전이됐을 경우 로봇 팔이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 어렵다. 게다가 주변 조직까지 암으로 악화할 수 있어 직접 절개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최초의 미국-한국 동시 의대 교수 기록

김 교수가 개발한 로봇 수술법은 해외에서도 꽤 인기가 있다. 인도, 터키,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김 교수를 초청하거나 의료진이 한국에 건너와 수술법을 배웠다.

미국에서도 김 교수를 찾는 대학이 많다. 2015년에는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에서 ‘연구 교수’로 1년간 머물기도 했다. 배우는 신분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격으로 유학한 것이다. 이후 미국에 김 교수의 수술법이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김 교수는 미국 의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미국에서 공부해 시험을 보고 의사 면허를 딴 게 아니다. 일부 주(州)에는 외국 국적이지만 뛰어난 의사들에 한해 예외적으로 면허를 주는 제도가 있다. 그중 하나가 루이지애나주인데, 그곳의 툴레인대 의대가 김 교수에게 의사 면허를 발급했다. 툴레인대 의대는 2명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2019년 10월 현지 의대 교수 계약을 체결했다. 물론 김 교수의 로봇 수술에 관심이 많아서였다. 미국 환자들을 자주 한국에 데리고 올 수 없으니 김 교수를 현지로 초청해 수술도 하고 기술도 배우자는 취지였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의대 교수로 동시에 활동한 인물은 김 교수가 처음이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미국 현지 수술의 길이 막혔다. 한 번 왕복에 최소한 한 달 이상 격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 목소리 살리는 신경 모니터링 첫 도입

요즘에는 ‘로봇 수술의 대가(大家)’로 통하지만 김 교수는 원래 ‘목소리를 살리는 의사’로 유명했다. 수술 도중 신경 손상을 방지함으로써 목소리를 보존하기 때문이었다.

갑상샘암 수술을 하다 보면 간혹 후두신경이 손상된다. 성대 기능을 담당하는 후두신경이 손상되면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 목에서 쉰 소리가 나거나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혹은 사레가 자주 들린다. 이런 부작용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엔 목소리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목소리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

수술 도중에 신경 손상을 찾아낸다면 즉각 대처할 수 있지만 이게 쉽지 않다. 김 교수는 “한 통계에 따르면 신경 손상이 생긴 환자의 10%만이 수술실에서 문제를 파악했고 나머지 90%는 전혀 문제점을 모른 채로 수술실을 나갔다”고 말했다. 2008년 김 교수는 독일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신경 모니터링’ 시스템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수술할 때 목에 삽입하는 튜브의 겉에 근육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막을 붙인다. 이어 수술하면서 이 막에 미세한 전기를 흘린다. 신경에 이상이 없다면 ‘삐’ 하는 소리가 나온다. 화면에는 근전도 수치와 파동이 표시된다. 이를 분석해 신경 손상 여부를 바로 파악할 수 있다. 이후 이 시스템을 국내 대학병원 대부분이 도입했다. 2011년에는 대한신경모니터링학회도 창립됐다. 이 학회 또한 김 교수가 주도해 만들어졌다. 김 교수는 이 학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갑상샘암 증세와 대처요령
목에 잡히는 혹 갑자기 커지면 의심을
갑상샘암은 1기와 2기에 발견될 경우 10년 생존율이 99%에 이른다. 게다가 이 암은 멀리 있는 장기로 원격 전이되는 확률이 낮다. 이 때문에 다소 늦게 발견되더라도 생존율은 여전히 높다.

다만 주변으로 암이 번질 수는 있어 기도와 식도 일부를 제거해야 하는 등 삶에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조기 발견이 그만큼 중요하다.

김훈엽 고려대 안암병원 갑상선센터 교수(유방내분비외과)는 갑상샘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면 갑상샘 초음파를 찍을 것을 권했다. 다만 이 암은 진행 속도가 느리며 갑자기 악화되지는 않는 편이라 매년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김 교수는 4, 5년마다 검사받을 것을 권했다.

어떤 사람들이 갑상샘암 발병 위험이 높을까. 일단 방사선에 과도하게 노출된 사람들을 들 수 있다. 어렸을 때 방사선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면 일단 갑상샘암 위험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여자가 갑상샘암에 걸릴 확률은 남자보다 4∼5배 높다. 요오드가 들어있는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적게 먹었을 때도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갑상샘암을 예방하는 음식은 없다. 김 교수는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게 오히려 더 좋은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만약 갑상샘에서 혹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정밀검사를 해야 할까. 김 교수는 “이 경우 혹의 크기, 위치에 따라 대처가 달라질 것”이라며 “만약 신경이나 기도, 식도와 접해 있다면 종양이 여기로 침범할 우려가 있어 정밀 검사를 통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때 갑상샘암을 의심해야 할까. 겉으로 증세가 드러나면 암이 꽤 진행됐을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거의 증세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목 주변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다.

우선 최근에 목 주변에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면, 그리고 그게 갑자기 빨리 커졌다면 갑상샘암을 의심해야 한다.

또 과거와 달리 음식물을 삼키는 게 어려워졌을 때도 암일 확률이 있다. 호흡 곤란이 나타나기도 한다.
#갑상선센터#의사#로봇수술#갑상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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