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중 한양대 예술체육대학 무용학과 교수(61)는 지난해 3월부터 산을 집중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자 이를 피해 산으로 간 것이다.
“그 전에도 가끔 등산을 즐겼지만 이렇게 많이 산을 탄 적은 처음입니다. 몇몇 지인들과 수도권과 충청권, 강원권 등 40개 넘는 산을 올랐습니다. 한번 가면 6시간 정도 산을 탔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이 달라졌습니다.”
손 교수는 올 초부터 사실상 ‘지옥의 공연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1월 고양국제무용제를 시작으로 3월 한 달에만 3개의 각기 다른 공연 무대에 섰다. 김복희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공연(5~7일), 가림다댄스컴퍼니 40주년 기념공연(12~13일), 제35회 한국현대춤 작가 12인전(27~28일). 올 초부터 연습과 리허설 등 하루 몇 시간씩 춤을 춰야하는 힘겨운 일정이었지만 거뜬히 버텨냈다. 무엇보다 3월 3개 공연 모두 예술 감독까지 맡았고, 여자 파트너를 들어올려야 하는 장면이 많았지만 전성기 때 버금가는 활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연을 잘 마치자 주위에선 “저 나이에 어떻게 체력적으로 잘 할 수 있었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손 교수 자신도 “이렇게 집중적인 공연은 30대 때 해보고 처음이었는데 잘 마무리한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전문가들은 “60대면 회복 속도도 젊은이에 비해 훨씬 늦는데 이렇게 무리 없이 공연한 것은 체력이 뒷받침을 해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 배경엔 등산이 있었던 셈이다.
코로나19가 손 교수를 체력적으로 더 강하게 만든 셈이 됐다. 코로나19 탓에 실내 및 단체 무용 연습을 못하게 되면서 산을 찾게 됐는데 그게 체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그는 “솔직히 산을 오른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나무와 꽃, 돌, 바위, 개울 등 자연을 온 몸으로 느끼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오르다보면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선 긴장감을 못 느끼지만 산은 자칫 잘못하면 다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게 체력은 물론 집중력을 키워준 것 같습니다”고 했다. 20세 이후 40년 넘게 무용을 하면서 오른쪽 무릎 연골이 닳아 불편했는데 산을 타면서 좋아졌다고 했다. 무릎 주변 근육이 강화되면서 관절을 잘 잡아줬기 때문이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50)은 “등산이 주는 효과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등산은 자연 속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으로 불린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그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주로 엘리트 선수들의 심폐지구력을 강화할 때 쓰인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80~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을 인터벌트레이닝과 동급으로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는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 평지, 내리막이 반복 된다. 이를 휴식할 때까지 보통 1시간 이상 반복하니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1, 2시간 안에 끝내기 보다는 5~8시간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인터벌트레이닝 그 자체로 에너지 소비가 높은데 장시간 하면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1시간 동안 10km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회 하는 게 심폐지구력 향상과 에너지 소비엔 더 효과적이다고 말한다.
송 실장은 “등산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기 때문에 하체 근육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손 교수님 같은 무용수에게 딱 맞는 체력운동이다”고 말했다. 그는 “등산은 자연 속에서 하기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날릴 수 있어 좋다. 손 교수님의 경우 평소 무용으로 하체가 단련돼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없이 체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체중이 많이 나가고 등산을 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특히 내리막을 조심해야 한다. 내리막에선 체중의 최대 10배까지 부하가 올라가기 때문에 자칫 관절을 다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손 교수가 등산으로 체력을 키운 것으로 알려지자 후배 남녀 무용수들도 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손 교수는 환갑이 다가오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자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심했다. 젊었을 때부터 평생 취미였던 사진촬영을 위해 3년 전 전문 카메라를 구입해 고궁과 길거리 풍경을 찍기 시작했다.
삶의 여유를 찾고 사진 촬영으로 다양한 영감을 얻기 위한 투자였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서는 자체가 운동의 시작이었다. 궁궐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보면 3,4시간을 훌쩍 지나간다. 하루 1만~2만 보는 기본으로 걸었다.
이렇게 취미생활을 시작하고서 코로나19가 왔고 본격 산행도 병행하게 된 것이다. 평소 서울 홍제동 집 근처 인왕산과 안산, 북악산을 올랐던 그는 블랙야크 100대 명산 20여 곳에 수도권에서 가까운 명산은 거의 다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북한산 인수봉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남성적인 산으로 겨울 풍경이 아름답다고 했다. 등산은 체력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지만 정신 건강에도 큰 효과가 있었다. 그는 “좋은 경관을 즐기며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깔딱 고개 하나 넘으면 숨은 차지만 기분은 아주 좋아집니다. 무용 공연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날라가죠”라고 했다.
손 교수는 자신의 삶에 대해 ‘극과 극’을 살았다고 했다. 그는 학창시절 권투선수를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무용을 하게 됐다.
“제가 외아들이라 아버지께서 밖에서 맞고 다니지 말라며 복싱을 시켰어요. 그런데 꽤 잘했어요. 중학교 때 서울신인대회, 전국학생신인대회에 나갔어요. 고교 2년 때 김명복배대회에선 라이트급으로 8강까지 올랐죠. 그 때 한 번 더 이겨 4강까지 갔으면 전 쭉 권투선수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집안에선 그가 권투를 계속하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다. 그 무렵 지인을 따라 무용학교에 갔다 운명처럼 무용을 하게 됐다. 한국무용과 발레, 현대무용을 다 배웠다.
“전 틀에 박힌 것이 싫었습니다. 무용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열심히 춤을 췄고 대학 대신 국립발레단 발레 연습생(현 인턴)으로 들어갔습니다. 1981년 입대했는데 최전방 수색대로 가기 전 제가 한국무용을 배울 때 장구를 쳤던 게 알려지면서 국방부 군악대로 전출이 됐습니다. 그리고 제대하면서 198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원래대로 입학했으면 1979학번인데 5년 늦게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1981년 청주대학에 잠시 적을 뒀지만 한 달 뒤 군입대하면서 더 이상 인연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손 교수는 원래 발레가 주였다. 한양대도 발레로 들어갔고 1984년 발레협회콩쿠르에서 은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도 갖췄다. 하지만 1985년 현대무용으로 전향했다.
“고정화 되는 것, 틀에 박한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이젠 무용도 융복합, 콜라보(Collaboration)가 이뤄져 경계가 없습니다. 이젠 컨템퍼러리로 그 시대에 맞는 춤을 추면됩니다.”
손 교수는 1987년 현대춤협회가 시작한 한국현대춤 작가 12인전 초대전부터 무대에 섰다. 스승인 김복희 한양대 명예교수(73)의 파트너로 무대에 섰고 그를 계기로 협회 간사, 총무를 거치 16년 째 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35회째 무대에도 섰다.
“제가 처음 춤을 출 때인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에는 저를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봤어요. 남자가 춤을 춘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죠. 지금은 남자 무용수가 더 많을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코로나19로 무용계도 어려운데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다시 도약할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손 교수는 올 초에는 공연 준비로 산을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일단 예정된 공연을 다 마쳤기 때문에 다시 산을 힘차게 오를 계획이다. 그는 “산을 오르며 땀을 뻘뻘 흘리다보면 제 몸과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새 기분으로 다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산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습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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