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3년간 모은 2000만원으로 암호화폐에 투자한 정모씨(38)는 최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정씨는 2000만원을 가지고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했지만, 투자하기에는 부족한 액수라는 생각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결국 ‘대세’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됐다. 그는 올해 3월 이후 암호화폐 시장이 호황이었을 때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 일론머스크발(發) 하락장에선 우울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암호화폐 가치가 올해들어서 최대 폭으로 폭락하자 ‘사다리가 끊어진 시대’의 마지막 기회로 보고 투자한 2030세대가 절규하고 있다.
지난달 고점(비트코인 기준)을 찍은 이후 ‘폭락 뒤 소폭 상승’ 패턴을 이어가면서 투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특히 휴일이었던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하락세는 20일 오전까지 이어지며 올해들어서 가장 큰 폭으로 주저앉아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한때 8200만원 갔던 비트코인, 20일 5000만원 겨우 회복
20일 오후 5시 기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일대비 약 2% 오른 5137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전날 비트코인 가격이 4259만원선까지 추락했다가 소폭 회복한 가격이다. 하지만 지난달 14일 8200만원에 근접하며 최고점을 기록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투자자들의 기대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일론 머스크가 자주 언급해서 가치를 띄운 도지코인도 전날 20%넘게 빠지며 500원선이 무너졌다. 도지코인은 같은시간 업비트 기준 47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도지코인은 올초 60원선에서 최근 600원대까지 올랐던 만큼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나 암호화폐 폭락장을 피해가지 못했다.
알트코인의 대장주로 꼽히는 이더리움도 이달 초 500만원을 돌파했으나 이날 35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날 주요 암호화폐 온라인커뮤니티에는 ‘비명’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폭락장에서 큰 손실을 입어서 기다려야할지,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 청산해야할지 고민된다는 내용이 상당수다. 한 투자자는 “결혼하려고 어렵게 모은 돈을 모두 털어서 넣었는데, 막막하다”는 글을 남기겨 많은 이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폭락장은 일론 머스크 때문?…中 리스크·기준금리 인상 조짐 등 복합 작용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의 큰 변동성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암호화폐들의 폭락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시각이 많다.
일론머스크는 지난 2월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다고 밝혀 암화화폐 시장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난 13일 돌연 환경오염을 이유로 들며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차량을 구매할 수 없다고 번복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가치 폭락을 야기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후에도 비트코인 매도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암호화폐 시장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중국은행업협회와 인터넷금융협회 등 중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관기관들이 가상화폐 거래 및 투기 위험에 관한 공고를 내면서 시장은 더 크게 요동쳤다.
이들은 공고를 통해 중국 금융기관들이 암호화폐와 관련한 활동을 할 수 없도록 지침을 내리고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행위를 범죄로 보고 처버할 수 있다고 알렸다. 중국이 글로벌 암호화폐 채굴과 거래 등 전반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미쳐온 만큼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기준금리 인상론과 유동성 회수론이 불거지고 있는 점도 암호화폐 시장에서 큰 부담요소로 꼽힌다.
◇“사다리인줄 알았는데”…‘영끌’ 투자한 2030 어쩌나
이미 오를대로 오른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아져 있고, 주식시장 역시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사상 최고점에 근접한 상태여서 2030의 선택지는 어쩔 수 없이 코인으로 향한 상태였다.
지난해 기준 20대의 월평균 소득은 221만원, 30대는 335만원 수준이다. 근로 소득으로 내집 마련이 어려워진 2030세대에게 암호화폐 시장은 리스크가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입할 수밖에 없는 ‘악마의 속삭임’이 됐다.
특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액으로 이만큼 벌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인증이 확산되면서 2030세대의 암호화폐 투자 움직임은 더 거세졌다.
실제 지난 1분기 국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신규 계좌를 만든 대부분이 2030 세대로 계좌 중 20대가 81만6039명으로 34.4%를 차지했고, 30대가 76만8775명으로 32.4%를 기록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같은기간 30대의 예탁금 규모는 전체의 33.8%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코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려스러운 점은 2030세대의 투자자금 중 상당액수가 ‘빚’에 의존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개인 신용대출 잔액은 142조2278억원으로 전월 대비 4.80%(6조8401억원) 증가했다. 공모주 청약을 위한 움직임도 있었지만, 지난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가 신고가를 기록한 이후 신용대출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는 게 은행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투자하기 위해 빚을 내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있었고, 올해 들어서 눈에 띄게 늘었다”며 “자금 용도까지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암호화폐 급등시기나 공모주 청약 자금 입금 시기 등과 맞물리기 때문에 추정이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30세대에서 ‘빚 폭탄 돌리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가 암호화폐와 관련해 뒷짐을 지고 한 발 물러난 상태여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보호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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