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IT(잇)다] 김희찬 제이디테크 “바나나 스마트팜으로 제주도 일자리, 고령화, 디지털 전환 해결"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10월 29일 16시 01분


바람과 여성과 돌, 세 가지가 많다고 해서 제주도를 ‘삼다도’라고도 부른다. 사실, 제주도의 명물은 이 세 가지 외에도 많다. 그 중 하나가 ‘바나나’다. 제주도 바나나는 맛과 향, 영양 모두 수입산과 대등하다. 믿을 수 있는 우리나라 땅에서 우리 농가가 건강하게 재배해, 가장 신선한 상태로 소비자에게 전달한다는 장점도 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또 자란 김희찬 대표는 서울과 외국 각지에서 사업을 벌이다, 부모님을 간병하러 제주도로 돌아왔다. 어릴 때보다 훌쩍 커진 키만큼 그의 안목과 생각과 경험은 자랐다. 그의 눈에 제주도는 고향이자 새로운 사업의 터전으로 보였다. 그와 함께 인구 노령화, 낮은 작물 생산성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부가 가치 등 제주도의 안타까운 현실도 보였다.

제주도 바나나 스마트팜을 설명하는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
제주도 바나나 스마트팜을 설명하는 김희찬 제이디테크 대표

김희찬 대표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제주도에 스타트업을 세우고 고향의 부흥을 이끌겠다고 결심했다. 제주도형 ‘바나나 공유 비즈니스·스마트팜’ 스타트업 ‘제이디테크’의 탄생 동기다.

“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또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렸을 땐 그게 못마땅했어요. 늘 손발에 흙을 묻히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돈은 많이 벌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일을 하려고 서울로 갔습니다. 대학교 졸업 후 외국계 회사에 입사해 세계를 돌며 일도 하고 창업도 몇 차례 했었어요. 그러다 부모님을 간병하려 다시 제주도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제주도, 아름다운 풍광과 튼실한 농작물은 그대로였지만, 정작 농민들은 농작물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했다. 그저 농작물을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한 탓에, 거기에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농작물을 내놔도 이득을 얻지 못했다. 농작물 유통, 보관 문제 때문에 헐값에 판매하는 일도 많았다.

김희찬 대표는 제주도로 돌아와 부모님을 간병하는 한편, 농사를 원격으로 도울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이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제주도 농촌 산업의 양상 그 자체를 바꾸자는 각오를 굳혔다. 제주도에 지속 가능한 농촌 산업 생태계와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 그러면 농민에게 소득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젊은 농민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제주도 스마트팜에서 자라는 바나나
제주도 스마트팜에서 자라는 바나나

“처음에는 원격 농장을 생각했습니다. 마침 IoT 기술을 연구 개발한 경력도 있었고요. 그러다 우연히 ‘바나나 농가’를 모집하는 글을 봤습니다. 매력적이더군요. 바나나는 단년생 풀입니다. 1월부터 바나나 나무를 기르면 다음해 1월에 수확 가능해요. 즉, 기후나 시기 영향 없이 1년 내내 일정 물량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바나나를 연구하니 풀어야 할 문제가 속속 드러났습니다. 먼저 바나나를 기를 때 난방비를 아주 많이 써야 합니다. 열대과일이니까요. 제주도 농가는 대부분 기름 보일러로 난방을 했는데, 기름과 전기를 시기에 따라 나눠 쓰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기온이 비교적 따뜻할 때에는 유지 비용이 싼 전기 보일러를 쓰고, 겨울 한두 달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때에만 열량이 높은 기름 보일러를 쓰는 방식입니다,”

하이브리드 난방은 간단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제주도에는 없었다. 김희찬 대표는 하이브리드 난방 아이디어로 바나나를 재배할 때 드는 난방 비용을 크게 줄였다. 그러다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수열 난방’이다.

제주도는 물이 부족한 섬이다. 용천수가 나오는 해안가에만 마을이 있고 산에는 마을이 없는 이유도 물 때문이다. 그런데, 바나나 나무는 물을 아주 많이 먹는다. 김희찬 대표는 처음에는 빗물 등 물을 가둘 물탱크를 만들었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수열, 물이 가진 열이다. 이 열로 전기를 만드는 수열 발전 시스템을 고안했다.

제주도 바나나 스마트팜의 원리. 출처 = 제이디테크
제주도 바나나 스마트팜의 원리. 출처 = 제이디테크

지금 제이디테크의 바나나 스마트팜이 쓰는 전기 가운데 25% 수열 발전이 만든다. 수열 발전은 친환경이자, 파리 협약에서 주요 화두가 된 탄소 중립을 만족하는 발전 시스템이다. 스마트팜 가운데 드물게 친환경 에너지 구조를 만든 김희찬 대표는 바나나 생육 비용을 50% 가까이 줄였다. 바나나 스마트팜에서 자란 바나나의 수율은 77%로 높다.

“어엿한 바나나 스마트팜을 만들었지만, 고민은 이어졌습니다. 스마트팜을 보급하려 했는데, 스마트팜을 오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스마트팜은 알려진 것처럼 만능, 만병 통치약이 절대 아닙니다. 작물 특성이나 기후, 지역에 따라 엄격하게 나눠서 취급해야 해요. 벼를 기르는 스마트팜과 바나나를 기르는 스마트팜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필요한 영양소, 물의 양, 주변 기후와 생장 시기 등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스마트팜으로 기를까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스마트팜을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장단점과 특징은 물론 한계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피처폰에 익숙한 소비자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피처폰과 스마트폰이 어떻게 다른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스마트팜을 알릴 교육 사업을 다음 아이템으로 선정했어요.”

제이디테크 스마트팜의 원리. 출처 = 제이디테크
제이디테크 스마트팜의 원리. 출처 = 제이디테크

김희찬 대표의 제이디테크는 제주도 시내에 ‘메이커 스페이스’를 세워 운영 중이다. 각종 정보 통신 기술을 교육하고, 제주도민들이 가진 아이디어를 각종 기술로 현실화하는 공간이다. 다른 회사가 제주도의 특성을 살린 관광 특화 메이커 스페이스를 이야기할 때, 김희찬 대표는 유일하게 ‘농업 IoT 메이커 스페이스’를 주장했다. 제주도 농촌 산업의 근본 혁신을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메이커 스페이스 운영은 제이디테크에게 맡겨졌다.

김희찬 대표는 제주도 메이커 스페이스에서 자신이 쌓은 IoT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한다. 이어 그가 강조하는 것이 ‘협업’이다. 답을 함께 찾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바꿔야 할 것, 모르는 것을 함께 배우고 탐구하고 과정과 답을 찾는 ‘경외감’이 제주도 농촌의 혁신을 이끌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메이커 스페이스 덕분에 제주도에 올바른 스마트팜과 개념을 어느 정도 이식할 수 있었어요. 문제를 풀면, 늘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스마트팜으로 좋은 바나나를 싸게 생산했더니, 이번에는 유통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유통 부문은 정보 통신 기술의 수혜를 가장 많이 입은 부문으로 알려져 있지요? 하지만, 농산물 유통은 수혜를 거의 받지 못해 낙후된 채였습니다.

더군다나 제주도는 섬이잖아요? 섬에서 바나나를 유통하려니 시간도 비용도 두 배 이상 듭니다. 그 과정에서 바나나 품질도 떨어지고요.

다음 과제는 유통, 물류 혁신입니다. 먼저 수도권까지 바나나를 직접 나르는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합니다. 물류 유통 회사와 조인트 벤처 설립을 검토 중이에요. 제이디테크 바나나 전용 물류 창고를 만들어, 제주도 농민이 애지중지 기른 바나나를 가장 신선한 상태로 전달할 것입니다. 이렇게 제주도 바나나의 인식, 친환경의 인식, 올바른 스마트팜의 인식을 전파할 것입니다.”

김희찬 대표가 구상 중인 제주도 바나나 관련 산업계. 출처 = 제이디테크
김희찬 대표가 구상 중인 제주도 바나나 관련 산업계. 출처 = 제이디테크

그는 낙과나 껍질에 상처가 난 바나나를 활용할 방안도 생각했다. 외관은 볼품 없어도 과육은 그대로다. 이런 바나나로 주스, 빵 등 특산물을 만들면 제주도 농가뿐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김희찬 대표의 아이디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주도 바나나를 직접 따는 체험 및 교육 프로그램도 2022년 개설을 목표로 차근차근 마련 중이다.

“바나나 나무를 실제로 보면 크기에 놀라는 분이 많아요. 바나나를 직접 따서 먹는 체험도 제주도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이 체험을 메타버스 게임으로 옮기는 것도 됩니다. 소비자가 가상 공간에서 바나나 나무를 기르면, 제이디테크와 제주도 농가가 바나나를 대신 기르고 수확해 소비자에게 신선한 상태로 배달하는 것이지요."

그는 제주도형 바나나 공유 농장도 기획한다. 농지를 가졌지만, 나이가 많아 바나나를 기르기 어렵고 인력도 구하기 어려워하는 농민. 일자리와 귀농 터전, 경험을 쌓기 원하는 젊은이. 이 둘을 연결하는 아이템이다. 우리나라 농촌의 심각한 문제 고령화는 지금부터 대응해도 해결하기 어렵다. 거창한 정책, 천문학적인 자금을 준비해도, 때가 늦으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주도 제이디테크 바나나 스마트팜 전경
제주도 제이디테크 바나나 스마트팜 전경

김희찬 대표는 공유 농장이 가장 현실적아고 유효한 농촌 고령화의 완화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이 방안은 제주도뿐 아니라 고령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다른 농촌 지자체에도 이식 가능하다. 물론, 이 공유 농장은 제이디테크가 지금까지 개선해온, 친환경 탄소 중립 스마트팜으로 만든다. 덕분에 제주도 농가 전체의 에너지 낭비도 줄어들 것이다.

“제주도로 돌아온 후 3년간, 매일 아침 바나나 스마트팜의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바나나 스마트팜은 제게 있어 가족이에요. 바나나와 함께 숨 쉰다는, 함께 산다는 생각으로 늘 같이 합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제주도의 특성과 바나나 산업의 미래를 확신하고 있는 덕분이기도 합니다.

바나나 산업을 일으켜 제주도에 부흥을 가져올 것입니다. 새로운 생태계, 에코 시스템을 만들 각오도 했어요. 단, 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파트너를 모시고 싶습니다. 제이디테크의 사업은 ESG 경영과도 일치합니다. 바나나 재배 효율을 높여 탄소 중립을 이루고, 농촌 부흥과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셈이니 소셜과 거버넌스 가치에도 어울립니다. 함께 제주도를, 농촌을 살리고 부흥하게 만들 파트너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

동아닷컴 IT 전문 차주경 기자 racing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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