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가 2001년에 설립한 성남산업진흥원은 지난 20년간 성남의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 네트워크, 입주 공간 등을 지원하는 기업 지원 전문 기관입니다. 성남시가 약 6만 6천여 개의 기업과 46만여 명의 근로자, 창업한 벤처 기업 수가 1631개에 이르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성남산업진흥원의 다양한 지원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남산업진흥원이 2003년부터 진행 중인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은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창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금까지 누계로 218개의 기업이 성남창업경연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IT동아는 성남산업진흥원과 함께 올해 성남창업경연대회 최종 평가에서 우수팀으로 선정된 6개 기업을 소개하고, 그들이 고민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전문가만 쓰던 기구에 아이디어 더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마사지기 발명
파벨 차졸린이라는 인물이 있다. 구 소련 특수부대 체력 교관이었던 그는 소련 붕괴 후 미국으로 건너가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활동한다. 차졸린은 소련 시절부터 쓰던 손잡이가 달린 쇳덩이 형태 운동 기구와 이를 활용한 독자적인 운동법, 운동 철학을 내세우며 이름을 떨쳤다. 당시 미국에선 생소했던 그 운동 기구의 이름이 바로 케틀벨이다. 케틀벨 전도사 역할을 한 차졸린의 영향으로 러시아 등 구소련 국가에서나 사용하던 케틀벨은 미국에서 점차 인기를 끌었고, 이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대중적인 운동기구가 됐다.
새로운 무언가를 이미 구도가 굳어진 시장에 소개하고 대중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차졸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효과가 검증된 도구와 그 사용법을 호소력 있는 언어로 전파하면서 열렬한 추종자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세 전류를 이용한 마사지기를 개발한 스트릭의 얘기를 듣고 난 후 자연스레 파벨 차졸린의 사례가 떠올랐다. 케틀벨이란 낯선 도구와 함께 먼 미국 땅에 도착한 파벨 차졸린처럼, 스트릭 오환경 대표도 낯선 마사지기를 들고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오환경 대표는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10년 넘게 병원에서 근무한 전문가다. 많은 환자를 돌본 만큼 물리치료 도구와 방법도 많이 접했다. 그중에서도 오 대표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IASTM(Instrument-Assisted Soft Tissue Mobilization)이었다. 우리 말로는 ‘도구를 이용한 연부 조직 가동술’ 정도로 옮길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근육통은 대부분 근육을 덮고 있는 근막이라는 얇은 막이 비틀리거나 꼬이면서 발생한다. 이렇게 근막에서 통증을 유발하는 부분을 통증 유발점(트리거 포인트)이라고 한다. IASTM은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도구를 몸에 문질러 이러한 근막의 비틀림과 꼬임을 풀어주는 방식이다. 폼롤러와 같은 원리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날이 근육 더 깊은 곳을 자극할 수 있어 좁은 부위에 집중해서 좀 더 세밀한 마사지가 가능하다.
오 대표는 “IASTM의 탁월한 효과를 느낀 후 ‘일반인들도 이걸 집에서 사용하며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법도 그리 어렵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IASTM을 위한 도구는 겉모습만 보면 그저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수요가 한정적인 전문가용 제품 특성상 가격이 수백만 원에 달했다.
오 대표는 IASTM의 이점을 그대로 갖추되, 좀 더 접근성이 높은 마시지기를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게 첫 제품인 ‘스트릭 프로’다 ‘ㄷ’자 형태 날에 손잡이를 달았다. 각 날의 세 면은 각각 형태가 달라서 적용 부위에 따라 구분해서 사용할 수 있다. 단순히 기존 IASTM 기구를 작고 저렴하게 만들기만 한 건 아니다. 근막 이완과 회복에 효과적인 50Hz의 미세 전동과 180~300mA의 미세 전류를 추가했다. 이전까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마사지기를 만들어낸 셈이다.
스트릭 프로는 2019년 미국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38만 7000달러(약 4억 5816만 원)를 모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목표 모금액의 3800%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이전에 IASTM을 접한 적 있는 전문가들이 먼저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성공적으로 모금을 마친 스트릭 프로는 2020년 1월 정식으로 출시됐다.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사용되던 물건이 그 전문가의 고객을 거쳐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되는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파벨 차졸린과 케틀벨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차졸린의 영향과 지도를 받은 트레이너들은 제2의, 제3의 차졸린이 되며 케틀벨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오 대표가 스트릭 프로를 출시하며 그린 그림도 이와 유사하다. 먼저 피트니스 트레이너나 물리 치료사들에게 스트릭 프로를 전파한 뒤, 그들이 스스로 스트릭 프로 전도사 겸 판매 창구 역할을 하게 하는 계획이다. 일종의 팬덤 마케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뜻대로 풀리지만은 않았다. 스트릭 프로를 출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에게 악몽과도 같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다. 오 대표는 “헬스장이 문을 닫고, 병원은 출입을 통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걸 할 수 없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결국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을 중심으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역시 한계는 있었다. 스트릭 프로는 아무래도 일반 대중들에겐 생소할 수밖에 없는 제품이다. 설명을 들으면 분명 좋은 제품일 거라는 짐작은 할 수 있어도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아무리 온라인 홍보를 잘해도 직접 제품을 체험하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사용법도 알고 나면 정말 쉽고 간단하지만, 그걸 처음 깨우치기까지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그래서 기껏 제품을 구매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별 효과가 없다’며 실망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스트릭의 성과는 분명 성공적이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제품을 출시했고, 전문가들에게 그 우수성도 인정받았다. 프로 스포츠단은 물론 국가대표 진천선수촌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스트릭 프로는 출시 이후 현재까지 약 1만 5천 개 판매됐고, 지금도 판매량은 점점 느는 추세다. 그 덕분에 매출도 지난해 약 9억 원 수준에서 올해 2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기업 가치와 가능성을 인정받아 올해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 대표가 처음 꿈꿨던 일반 대중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에는 한 발짝 모자랐다. 전문가 시장을 넘어 일반 소비자 시장까지 다다르기에는 생각보다 간극이 컸다.
그 간극을 메우려면 결국 접근성을 좀 더 높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스트릭 오 대표는 먼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스트릭 프로 가격은 약 21만 원이다. 기존 IASTM 기구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지만 일반인이 생소한 마사지기에 흔쾌히 낼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다.
그래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 대신 도금한 플라스틱(ABS) 재질로 날을 바꾸고, 크기와 무게를 줄인 신제품 ‘스트릭 미니’를 출시했다. 원가를 절감함으로써 가격을 스트릭 프로의 절반 수준인 10만 원대 초반으로 낮췄다. 보급형 제품이지만 스트릭 프로보다 개선된 점도 있다. 스트릭 프로를 사용해 본 고객들 의견을 반영해 방수 설계와 충전 거치대를 추가했다. 지난 7월 와디즈에서 펀딩을 시작한 스트릭 미니는 목표 모금액의 2만 3853%에 달하는 약 2억 3853만 원을 모금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현재 스트릭이 준비하고 있는 건 앱 서비스다. 마사자기에도 압력 센서와 사물인터넷(IoT) 관련 기능을 추가해 앱과의 연동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압력 센서가 사용자가 통증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측정하고, 그에 맞춘 사용법을 알려주는 건 물론, 통증 예방을 위한 근력 강화 운동까지 알려주는 기능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이미 시제품을 개발해 내년 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마사자기를 구심점 삼아 종합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변모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릭에게 남은 과제는?
오환경 대표는 “사람들은 결국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통증을 안고 살아간다. 흔하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도 많다. 하지만 흔하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다. 통증을 방치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몸이 망가지는 경우도 흔하다.
오환경 대표는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마사지기를 개발해 스스로 통증을 관리할 수 있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를 위해 세상에 없던 마사지기를 개발해 시장에 안착시키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다.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 저변을 넓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스트릭이 저변을 넓힐수록 유사품 혹은 모방품도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미 질 낮은 중국 업체의 유사품이 시장에 등장한 상황이다.
오 대표는 “사실 카피캣(모방) 업체들은 그냥 제품을 만들어 팔면 그만이고, 사용법을 전달하거나 교육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희는 사람들이 저희 제품을 사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쓰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마사지기와 앱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종합 헬스케어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스트릭에게 가장 필요한 걸 물었을 때 오 대표는 망설임 없이 ‘자금’ 얘기를 꺼냈다. 모든 스타트업은 항상 자금이 궁할 수밖에 없지만, 전환이나 도약을 준비하는 시기에는 더욱 절실하다. 한 단계 도약을 앞둔 스트릭도 지금 추가 수혈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사에 이어 스트릭이 투자 전문가와 함께 자금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는 2부가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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