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신약 개발 뒷짐’ 이유…비현실적 약가 의욕 꺾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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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1월 27일 13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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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바이오산업이 자동차와 IT를 잇는 미래 3대 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약가산정방식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업계에서는 저렴한 약값 형성에 초점을 둔 정부의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경제성 평가제도가 신약개발 원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다.

27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신약은 국내 건강보험 등재 가격을 기준으로 해외 수출, 판매 이익을 확보한다. 얼마만큼 많은 국민에게 건강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를 평가해 약값 상한선을 책정하고 건강보험에서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이러한 약가 산정 방식은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자체 개발한 신약이 많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에서 개발돼 수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미국, 유럽 등 세계 주요 7개 국가 대비 신약 수입은 상대적으로 뒤쳐졌으나, 국내 약가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서 책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목표로 신약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이러한 약가 산정 방식에 대한 불만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전의 ‘혁신 신약(First-in-class)’을 개발하지 않는 이상 대체 약물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신약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현재 신약 등재 제도가 보험재정 절감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은 힘들게 신약개발에 성공해도 합리적인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신약에 대해 확실한 가치 보상을 주고, 다시 혁신적인 신약개발 연구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약가 산정, 천문학적 신약 개발 비용 반영 못해

우리나라의 경우 신약의 경제성 평가시 비용효과성 지표 ‘ICER(Incremental Cost Effectiveness Ratio, 치료 비용의 차이를 효과의 차이로 나눈 값)’를 사용한다. 이 ICER 수치가 일반 신약의 경우 연 2500만원 이하, 고가 항암제의 경우 연 5000만원 이하 기준이 나와야 건강보험 급여목록에 등재가 가능한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신약 개발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된다. 최근 1개의 신약이 나오기까지 필요한 비용은 평균 약 2~3조원 수준이다. 여기에 환자 맞춤형 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하나의 신약이 갖는 시장 규모는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개발원가와 향후 판매 이익을 고려할 때 제약회사 입장에서 신약의 가격이 점차 비싸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가격 책정 방식은 여전히 낮은 비용 중심의 경제성 평가에만 매달리고 있어, 의약품 시장에서 제약기업의 투자비용 환수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동철 미국 럿커스 뉴저지주립대학교 약학대학 겸임교수(중앙대 약대 명예교수)는 “ICER 임계값을 획일적인 금액 기준을 갖고 적용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면서 “해외에서는 질병의 중증도나 환자 접근성 향상을 위해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다른 어떤 약물보다 뛰어난 독보적인 신약을 개발하면 이러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위험성이 큰 혁신 신약보다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최고 신약(Best in class)에 전략적으로 도전한다. 글로벌 빅파마들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동일 계열의 성분 또는 대체 가능한 의약품이 있는 경우에는 경제성 평가에서 낮은 약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현재의 경제성 평가는 이미 시장에서 처방되는 약이 있는데 비슷한 약을 보험에 추가로 등재해 보험재정을 낭비할 수 없다는 식이다.

◇변화 외면하다 미래 성장동력 잃어…해외 의존도만 높아져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에 초점을 둔 현재의 약가 산정 방식을 유지하는 한편, 별도로 신약개발 가치를 보전해 주는 지원제도도 없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연구개발(R&D) 비용 투자율이 높은 기업을 대상으로 혁신형 제약기업을 선정해 세제 혜택을 줄 뿐 건강보험 등재 약가 보전, 지원금 지급 등은 혜택 항목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면 매출이 작은 국내 중소형 제약회사들은 이익을 보전할 수 없는 신약 연구개발에 도전을 포기하고 복제약 제조에만 몰두하게 된다. 또 자체 기술력을 확보한 제약·바이오기업은 좋은 후보물질을 발굴해도 임상단계에서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 수출을 하는데 만족해야 한다.

자력으로 임상3상까지 상업화를 마친다고 해도 약가 우대를 받기 위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신약을 개발하고, 미국과 유럽 등에서 먼저 신약을 선보일 수 밖에 없다. 사업 지속성을 위해 다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만큼 국내 시장 진출은 후순위로 밀린다.

코로나19 대유행 시 자체 예방백신을 개발·확보하지 못해 해외 공급에만 의존했던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질 수 있다. 이에 신약과 복제약을 구분한 경제성 평가 방식 등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고 신약 연구개발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안정훈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신약의 경우 선 등재 후 평가하는 방식의 사후 경제성 평가도 고민해 볼 수 있다”며 “건강보험 지출 증가가 우려되면 일정 금액 내 조건을 달아 한도 내에서 약제비를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모든 미래와의 거래는 불확실성이 따르는 만큼 그에 걸맞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면서 “여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자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국내 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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