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스타트업] 플라잎, "산학협력, 학교와 학생이 원하는 걸 제시해야"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12월 8일 17시 04분


[성남산업진흥원] 플라잎(2)

성남시가 2001년에 설립한 성남산업진흥원은 지난 20년간 성남의 중소·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 개발, 네트워크, 입주 공간 등을 지원하는 기업 지원 전문 기관입니다. 성남시가 약 6만 6천여 개의 기업과 46만여 명의 근로자, 창업한 벤처 기업 수가 1631개에 이르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엔 성남산업진흥원의 다양한 지원이 있습니다.

이러한 성남산업진흥원이 2003년부터 진행 중인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은 우수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창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주요 행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금까지 누계로 218개의 기업이 성남창업경연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이에 IT동아는 성남산업진흥원과 함께 올해 성남창업경연대회 최종 평가에서 우수팀으로 선정된 6개 기업을 소개하고, 그들이 고민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플라잎의 인재 고민, 산학협력으로 풀려면?

디지털 전환이 기업들의 시대적 과제가 되면서 개발자들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수요는 폭발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인재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이렇듯 개발 인력 부족 문제는 IT 분야와 비 IT 분야를 막론하고 우리 산업계 전반의 문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인력난이 특히 심각한 분야로 꼽히는 게 AI(인공지능) 분야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2020 인공지능 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933곳 중 ‘AI 인력 부족’이 사업 운영상 애로사항이냐는 질문에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고 답한 기업은 48.8%로, 다른 문항과 비교해 가장 높았다.

전문성도 실무 경험도 모두 갖춘 AI 개발자라면 일자리를 입맛대로 골라 갈 수 있지만, 기업들은 온갖 혜택을 제시하며 ‘인재 모시기’에 나서야 하는 현실이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이나 인지도가 부족한 스타트업이라면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왼쪽부터 고려대 최병호 교수와 플라잎 정태영 대표 (출처=IT동아)
왼쪽부터 고려대 최병호 교수와 플라잎 정태영 대표 (출처=IT동아)

올해 성남창업경연대회(도전! S-스타트업)에서 대상을 받은 인공지능 전문 스타트업 플라잎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다. 플라잎은 산업용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AI로 제조 현장의 자동화 효율을 높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플라잎 정태영 대표는 현재 상용화된 AI가 대부분 ‘스크린 속 AI’라면 플라잎의 AI는 ‘리얼 월드의 AI’라고 설명한다. 그 말대로 우리가 접하는 AI들은 대부분 음성 비서처럼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화면으로 접할 수 있는 앱이나 서비스 형태가 대부분이다. 반면 플라잎의 AI는 로봇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적용해 구현하는 AI다.

흔치 않은 분야를 다루다 보니 인재 마련도 쉽지 않다. 단순히 AI 전문성만 갖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에 대한 이해, 제조 현장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AI 전문가만 해도 구하기 힘든 실정인데, 그중에서도 아주 극소수인 특화 인력을 찾아야 하는 셈이다. 회사 성장에 맞춰 인력 확충을 계획하고 있지만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인난을 겪는 기업들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산학협력이다. 협업으로 학교와 기업 사이에 인적 네트워크를 자연스레 형성한다. 학생들은 실무 경험을 미리 쌓을 수 있고, 기업은 자신들에게 맞는 인재를 미리 발굴할 수 있다. 산학협력을 통한 인재 확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플라잎 정태영 대표와 고려대 휴먼 인스파이어드(Human-Inspired) AI 연구소 지능형 산업혁신단 단장을 맡고 있는 최병호 교수가 만나 얘기를 나눴다.

플라잎 정태영 대표 (출처=IT동아)
플라잎 정태영 대표 (출처=IT동아)

먼저 플라잎 정태영 대표는 AI에 대한 전문성, 로봇과 제조 현장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갖춘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고충을 토로했다. 매우 희소할 수밖에 없는 인력이다. 찾는 것도 문제지만, 설령 발견하더라도 대기업을 비롯한 다른 기업들과 구인 경쟁을 펼쳐야 한다. 스타트업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곳이다. 연봉, 복지 등 처우나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면 구직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태영 대표는 조금이라도 구직자에게 매력적인 직장을 만들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먼저 일할 때는 집중해서 일하고 쉴 때는 푹 쉬는 근로 문화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플라잎 팀원들의 노동시간은 경우에 따라 주 40시간도 넘지 않을 때도 있다.

휴가철마다 휴가도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다. 여름 휴가는 물론, 겨울 휴가도 보장해주고 있는 데다 별도의 재충전 휴가까지 부여한다. 휴일과 휴일 사이 평일, 이른바 샌드위치 데이도 가급적 쉬고 있다. 정 대표가 직원 대신 팀원이란 호칭을 고집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조직 문화도 수평적이다. 직원들을 부하가 아닌 동료로 여긴다. 물론 금전적인 보상에 있어서도 다른 스타트업과 비교해서 결코 적지 않은 수준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정 대표는 무엇보다 플라잎이 다루는 분야 자체가 희소하다보니 팀원이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강조했다. 연구실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스크린 속 AI가 아닌 현실의 로봇 행동에 적용하는 AI를 다루는 곳은 많지 않다. 정 대표는 “다른 곳보다 한두 단계는 더 나아가고 있다”라고 자부하면서 “학생들에게도 기술력을 쌓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최병호 교수 (출처=IT동아)
고려대 최병호 교수 (출처=IT동아)

최병호 교수는 “돈, 환경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직원의 성장”이라며 “플라잎이 그 포인트는 정확히 짚고 있지만 약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최 교수는 직원의 성장을 위해서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 석학이나 글로벌 선두 기업과 제휴를 맺고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같이 일을 하거나 세계적 엔지니어랑 같이 일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나머지가 안 좋아도 상관없다. 돈이나 환경은 직원이 성장하면 나중에 따라오는 거다. 성장을 못 하면 돈과 환경이 못 따라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러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건 스타트업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 대표도 “대기업 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며 난색을 보였다. 하지만 최 교수는 “그걸 해내는 게 경영 능력”이라며 “어떤 형태로든 얼라이언스는 맺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최 교수는 “직원의 성장을 위해선 결국 연구 파트너가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문제 중 하나는 내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뭉쳐 있을 때가 많다. 한 단계 도약하려고 할 때는 앞서 나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조직 내외부에 있어야 한다”면서 “설령 얼라이언스가 약하더라도, 한 달에 한 번 화상회의, 이메일로 도움을 받을 수만 있는 정도여도 충분하다”라고 조언했다.

정 대표도 이러한 조언에 공감했지만 당장 이를 실현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정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보니 경영 및 관련 문제에 관해서는 현재 엑셀러레이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플라잎이 다루는 기술은 국내에 선례가 없어 플라잎이 직접 레퍼런스를 만들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강화학습을 적용한 플라잎의 '로봇 행동 AI' (출처=플라잎)
강화학습을 적용한 플라잎의 '로봇 행동 AI' (출처=플라잎)

학생들 피부로 와닿는 현실적인 혜택도 있어야 한다. 그중 하나로 최 교수는 ‘병역특례’ 얘기를 꺼냈다. 대체복무제도 중 하나인 산업기능요원을 활용하면 기업도 최소 3년간 인재를 보유할 수 있고, 학생도 군 복무로 인한 단절 없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양쪽이 모두 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최 교수는 “사실 병역특례 얘기 하나만으로도 다른 얘기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부터 병역지정업체에 선정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여건을 갖추기 위해 특허 4건을 출원해 등록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사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스타트업이 산학협력을 통해 인재를 채용하는 건 쉽지 않다. 사례도 그리 많지 않다. 학교에는 돈이 몰려들고, 실력 있는 학생들은 원하는 곳을 골라갈 수 있다. 아쉬운 건 스타트업이지 대학교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시작부터 엇박자를 빚는 경우도 많다. 스타트업은 비전과 가능성을 말하지만, 학교와 학생들은 당장의 실익을 따지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공모전, 공동 연구, 병역 특례처럼 학교가 좋아할 만한 폼을 만들어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 학교가 기업에 매력을 느낄 수 있을 만한 가치 제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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