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부터 엘리트 육상선수를 시작했다. 부산체고를 졸업하고 바로 실업팀 포항시청에 입단했다. 100m 허들과 세단뛰기를 병행했다. 173cm의 늘씬한 몸매를 과시하며 트랙과 필드를 누비다 은퇴를 했다. 주위에서 보디빌딩을 해보라는 말에 근육운동을 시작해 마흔을 넘어서도 국내 최고를 넘어 아시아 최고가 됐다. 위암까지 이겨낸 그는 이제 세계 최고를 꿈꾼다. 12월 17, 18일 경기도 수원 메쎄에서 열린 제73회 미스터& 제16회 미즈코리아 선발대회(미스터코리아)에서 미즈 코리아에 등극한 최서영 씨(41·경남 S-휘트니스) 얘기다.
“25세 쯤 은퇴를 하고 선수시절 입학한 동국대 사회체육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헬스클럽을 다녔습니다. 주위에서 보디빌딩을 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제 몸이 예쁘다고 했어요. 그런데 운동도 운동이지만 식단 조절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말에 안한다고 했어요. 육상선수 할 때도 체중 조절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었는데 또 그렇게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육상선수 시절에도 웨이트트레이닝은 많이 했다. 단거리의 파워를 키우기 위해서 무게를 최대한 높이고 순간적으로 힘을 내는 훈련을 해 와서 웨이트트레이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계속 헬스클럽을 다니며 운동을 한 이유다. 다만 본격 대회 출전을 하진 않았다.
“사이클도 많이 탔어요. 사이클을 타다보니 지방이 빠지고 몸매 라인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필 사진이나 찍어 볼까 하면서 운동을 좀 열심히 하다 얼떨결에 부산의 작은 피트니스대회에 출전했습니다.”
2014년 5월 이었다. 첫 출전에 2등을 했다. 최 씨는 “무대에 서니까. 너무 좋았다. 육상과는 다른 희열감을 느꼈다.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나를 바라봐 주는 관객을 향해서 연기를 펼치는 느낌…. 다른 세계에 온 듯했다. 그때부터 근육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경남 양산으로 이사를 하면서 당시 양산시보디빌딩협회 회장이 운영하는 피트니스센터에 등록하면서 그해 11월부터 체계적으로 운동하게 됐다.
“육상과 보디빌딩이 비슷했어요. 모두 혼자서 해야 하는 운동이죠. 보디빌딩도 혼자서 훈련한 뒤 심사위원과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아요. 다만 보디빌딩은 식단이 힘들었어요. 탄수화물을 배제해야 하고 대회에 임박해서는 수분까지 조절해야 합니다.”
2015년 7월 미스터코리아 대회 보디피트니스 여자부 +168cm에서 우승하고 청천벽력 같은 일을 당했다.
“우승해 취해 있다 한 달 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어요. 음식을 절제하다 막 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위암 3기라고.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죠. 중간에 한번 쓰러졌었는데 작은 병원에서 물을 잘못 먹었다며 소염진통제 처방으로 돌려보냈었죠. 참 나.”
혈변를 누고 피를 토했던 최 씨는 의사를 4번 찾아갔다. 절개가 아닌 복강경으로 수술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전 꼭 보디빌딩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다. 당시 35세라 한창 나이인데 배를 다 갈라놓으면 보기 흉하지 않나. 결국 의사 선생님이 ‘그럼 수술 중 절개할 상황이면 절개해도 좋다’는 각서를 쓰고 수술 했다”고 했다. 위 70%를 잘라냈다.
“1년간 8차례 항암 치료를 받는 게 지옥이었어요. TV 등을 보면 암에 걸리면 산에 들어가서 살았다는 사람들을 봐서 산으로 들어갈까도 고민했죠. 그랬더니 관장님이 ‘뭔 소리냐, 잘 먹으면서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해서 항암 2차 치료를 받은 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항암 치료에 몸무게가 57kg까지 빠졌다. 비 시즌 때 운동 안하면 72kg까지 나갔었다. 키가 커 뚱뚱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57kg이 되자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살 빠진 저 보러 그냥 날씬해졌다고 했는데 제가 볼 땐 근육이 다 빠져 너무 앙상해 보였죠. 제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해서 다시 자신감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운동하면 볼륨감이 살아날 것이라 생각했죠. 몸은 기억하니까. 그런데 항암치료 할 땐 몸이 기억 못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수술 전 10kg 아령을 들었다면 1kg부터 다시 시작했다. 암컬을 10kg으로 15개씩 3~5세트 하던 것을 1kg으로 100개씩 하는 식이다. 근육이 없어 많은 무게를 못 들었다. 스쾃도 맨몸으로 했다. 그런데 운동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하루 2시간 운동하고 오면 22시간을 잤어요. 피곤해서 다른 것은 전혀 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2시간 운동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8개월을 운동했다. 항암 치료 끝나고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가 깜짝 놀랐단다. 보통 항암치료를 받으면 골다공증이 오는데 모든 골밀도 수치에서 20대로 나온 것이다. 항암치료하면서 저항운동(웨이트트레이닝)을 계속해서 그렇다는 평가를 받았다.
“먹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계란 반쪽부터 시작해 늘려갔는데…. 단백질은 섭취해야 하는데 그만큼 소화를 시키지 못했죠. 그래서 보충제 등도 많이 먹었어요.”
2016년 말 수술한 부위 장중첩으로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운동하지 말라고 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2017년 초 아시아선수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지만 떨어졌다. 회복이 덜된 상태였다. 그해 8월 제주도에서 얼린 미스터코리아 대회에선 미즈 코리아(여자부) 대상을 차지했다.
“전 매 대회에서 복근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수술을 받다보니 그 부분 감각이 떨어져 운동을 해도 잘 근육이 잡히질 않았어요.”
2017년 맹활약한 결과 국가대표가 돼 2018년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 출전해 4등을 했다. 그리고 2019년 우여곡절 끝에 아시아선수권에서 정상에 올랐다.
“부족한 부분을 보강해 1년 체계적으로 운동했어요. 그래서 그해 4월 1, 2차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했는데 2차 다음날 다시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어요. 또 장중첩으로 수술 받았죠.”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이 한 달 남은 시점. 수술부위 실밥이 터졌다고 했다. 다시 수술했지만 아시아선수권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런 게 있죠. 1년 죽어라 연습하며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포기가 쉽지 않았어요.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대한보디빌딩협회에 얘기 안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163cm급에서 우승한 뒤 관계자들에게 얘기했더니 엄청 놀랐죠. 그 대회에서 그랑프리까지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너무 기뻐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2019년 9월 다시 장중첩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개월 뒤 세계피트니스선수권대회에 출전해 5위를 했다.
“안타까웠지만 세계무대가 어떤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바비인형에 근육만 입혀놓은 듯한 멋진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내년 10월에 한국에서 세계피트니스대회가 열리는데 꼭 상위권에 오르고 싶습니다.”
지난해와 올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탓에 세계피트니스선수권에 가지 못했다.
“올해 미즈코리아는 2017년 이후 4년 만에 우승입니다. 제가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평가가 좋았습니다. 70%는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내년엔 꼭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겠습니다.”
암수술 이후 보디빌딩은 그의 삶이자 목표가 됐다.
“위암을 겪고 나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과거 운동은 직업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했습니다. 이젠 살기 위해 운동합니다. 건강하려면 근육에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운동을 해야 하죠. 하루 이틀 안하면 금방 몸이 반응을 합니다. 또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투자하고 결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도 제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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