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콘은 플래그십(최고급) 미러리스 카메라 Z9을 2021년 선보여, 같은 해 12월 24일부터 판매 중이다. 니콘은 이 제품의 사진·영상 화질과 기계 성능이 플래그십 DSLR 카메라 D6보다 우수하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니콘 Z9을 이틀간 쓰며 자동 초점, 연속 촬영 기능을 실험하고 고감도, 사진 화질도 살펴봤다. 함께 사용한 렌즈는 니콘 Z 24~200mm F4~6.3 VR이다. 써 보니, 니콘이 이 제품을 자랑스레 소개한 이유를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니콘 Z9의 사진·영상 화질과 기계 성능을 계승한 소형, 저가형 미러리스 카메라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느 플래그십 디지털 카메라들이 그렇듯, 이 제품도 부피가 크고 무거우며 가격이 비싸서다. 이는 부피와 가격을 빼면, 단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니콘 Z9의 완성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니콘 Z9에 탑재된 FX(35mm) 4571만 화소 적층형 CMOS 이미지 센서는 피사체와 배경 모두 선명하게 묘사한다.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 저장하는 속도가 빨라,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 롤링 셔터(이미지 센서가 빛을 저장하는 속도가 느려 피사체가 이지러진 모습으로 찍히는 현상)도 거의 없었다.
이 제품은 반사 미러(거울)가 없는 미러리스 카메라다. 덕분에 고화소 DSLR 카메라의 단점인 미러 쇼크(반사 미러가 여닫히는 충격이 본체에 퍼져 사진을 흔들리게 하는 현상)가 없다. 이미지 센서 앞에 있는 것은 셔터가 아니라, 렌즈 교환 시 먼지가 들어가는 것을 막는 센서 실드다.
카메라 본체 흔들림 보정 기능과 렌즈 흔들림 보정 기능이 함께 움직여 효과를 더 높이는 점도 돋보인다. 니콘은 이 덕분에 흔들림 보정 효과가 최대 셔터 속도 6단에 달한다고 말한다. 셔터 속도 1초로 사진을 찍어도 마치 1/32초로 찍은 것처럼 사진 흔들림을 줄인다는 의미다. 영상 촬영 시 유용한 전자식 흔들림 보정 기능도 지원하지만, 이 때 렌즈 초점 거리가 1.25배 늘어난다.
감도는 ISO 64~25600 기본으로 저감도는 ISO 32, 고감도는 ISO 102400까지 확장 가능하다. 대형, 적층 이미지 센서인 덕분에 노이즈를 잘 억제하는지라, 어두운 곳이나 야간에 사진을 찍을 때 ISO 12800도 무난히 쓸 수 있다.
강력한 흔들림 보정 기능과 고감도 덕분에, 니콘 Z9는 -8.5EV에 해당하는 아주 어두운 곳에서 자동 초점을 원활히 포착한다. ISO 100 기준, 조리개 F2.8 렌즈로 촬영할 때 셔터 속도가 약 20초 이상으로 나올 정도로 어두운 곳에서도 자동 초점을 잡는다.
니콘 Z9의 장점은 빠르고 정확한 자동 초점, 고속 연속 촬영 기능이다. 자동 초점 포인트 수가 405개로 많아, 시야 안의 어떤 곳에 피사체가 있든 빠르고 정확하게 초점을 조절한다. 실시간 피사체 추적 자동 초점의 성능도 인상적이고,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찍을 때 유용한 다이나믹 자동 초점도 고성능이다.
니콘은 Z9에 3D 트래킹 자동 초점 기능을 탑재했다. 니콘 중고급 DSLR 카메라에 주로 탑재된 이 기능은 딥 러닝으로 피사체를 포착, 초점을 피사체에 고정한다. 그러면 피사체가 상하좌우 불규칙하게 움직여도, 시야 안에 복잡한 배경이 들어와도 피사체만 포착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물론, 연속 촬영 시에도 이 기능을 쓸 수 있다.
피사체 검출 자동 초점도 눈에 띈다. 일반 디지털 카메라가 사람의 얼굴 정도만 자동 검출하는 것에 비해, 니콘 Z9은 사람 얼굴뿐 아니라 새나 동물, 자전거나 자동차, 비행기 등 9종류의 피사체를 자동 검출한다.
니콘 Z9의 최고 연속 촬영 속도는 초당 20매다. 실시간 피사체 자동 추적이나 3D 트래킹 자동 초점과 함께 쓰면,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연속 촬영 매수도 1,000장 이상으로 많다. 단, 그러려면 대용량·고속 CFexpress 메모리 카드를 사용해야 한다.
3D 트래킹 자동 초점과 초당 20매 연속 촬영 기능은 궁합이 좋다. 수풀 속을 빠르게 나는 작은 새까지 포착할 정도다. 셔터음도, 블랙 아웃(연속 촬영 시 셔터막이나 반사 미러가 이미지 센서를 가리면서 시야가 깜박이는 현상)도 없다. 셔터 릴리즈 버튼은 아주 민감해 살짝만 눌러도 사진을 찍는다.
니콘은 Z9에 대각선 0.5인치(1.27cm) 크기에 369만 도트 전자식 뷰 파인더를 장착했다. 광학 뷰 파인더 수준으로 화질이 선명하고, 무엇보다 연속 촬영 시 파인더가 순간 까맣게 되는 블랙아웃이 전혀 없다. 전자식 뷰 파인더는 어두운 곳에서 화질이 급격히 나빠지는데, 니콘 Z9의 전자식 뷰 파인더는 비교적 화질이 양호했다.
전자식 뷰 파인더의 화질과 성능이 좋다보니, 오히려 뒷면 모니터와 라이브 뷰 촬영을 잘 하지 않게 됐다. 니콘 Z9의 뒷면 모니터는 3.2인치 크기에 210만 화소, 4축 틸트(위아래 조작)조작을 지원한다. 가로는 물론 세로 촬영 시에도 하이 / 로우 앵글 촬영이 손쉽지만, 360도 회전형 모니터보다는 쓰기 불편하다.
니콘 Z9는 플래그십 미러리스 카메라답게 크기가 크고 무겁다. 본체 크기는 149 x 149.5 x 90.5mm, 무게는 1,160g(본체만)이다. 플래그십 DSLR 카메라 니콘 D6의 부피(크기 160 x 163 x 92mm, 무게 1,270g)보다는 작고 가볍지만, 가지고 다닐 때 부담은 상당하다.
니콘 Z9은 전원으로 EN-EL18d 리튬이온 배터리를 쓴다. 충전 후 CIPA 기준 사진 촬영 매수는 뷰 파인더 촬영 시 700매~750매, 라이브 뷰 촬영 시 740~770매다. 동영상 촬영 시간은 뷰 파인더와 라이브 뷰 모두 약 170분이다. 이틀간 영하 10℃ 환경에서 약 300여 매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배터리는 네 칸 가운데 두 칸이 줄어들었다.
이전에 니콘 플래그십 DSLR 카메라 D5를 일주일 동안 쓴 다음 ‘DSLR 카메라의 정점’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화질과 고감도, 자동 초점과 연속 촬영 성능, 사용 편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라고 할 만했다. 특히 자동 초점 성능이 좋았다.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드론을 피사체 추적 자동 초점으로 약 400여 장 연속 촬영했는데, 이 가운데 초점이 빗나간 사진은 단 두 장이었다.
니콘 Z9은 불과 이틀만 써 봤지만, 그럼에도 ‘미러리스 카메라의 정점’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 제품의 자동 초점과 연속 촬영 성능은 니콘 D5를 아득히 상회한다. 4571만 고화소에 8K UHD 동영상 촬영 기능도 그렇다. 그럼에도 부피는 더 작고 가격도 저렴하다.
니콘 Z9의 전원을 켜고 피사체로 렌즈를 향한 후, 자동 초점을 잡고 사진 10여 장을 연속으로 찍기까지의 시간은 불과 1초 남짓에 불과하다. 찍은 사진을 밝은 대형 모니터로 보면 저절로 만족스러운 느낌이 든다. 내가 본 피사체를 선명하게, 정확하게 담아주는 덕분이다.
못내 아쉬운 점은 부피다. 플래그십 디지털 카메라는 첨단 기술의 총아이자, 어떤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튼튼한 제품이다. 그러다보니 부피가 늘고 무게도 무거워진다. 단점은 아니지만, 사용 시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나온 니콘 Z 시리즈 미러리스 카메라처럼, DSLR 카메라보다 작고 가벼우면서 압도적인 화질과 성능을 가진 후계 모델이 Z9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니콘 Z9는 니콘 D6보다 싼 가격에 판매된다. 따라서 가격도 단점으로 꼽기는 어렵다.
캐논과 함께 카메라 시장을 이끌어 온 니콘은 최근 몇 년간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디지털 카메라 신제품이 연이어 실패하며 판매량과 시장 점유율 모두 곤두박질쳤다. 위기에 빠졌을 때, 니콘은 항상 플래그십 디지털 카메라를 앞세워 승부에 나섰다. 그리고 늘 시장 선두 자리를 탈환했다. 혁신 그 자체로 불렸던 니콘 플래그십 DSLR 카메라 D1과 D3, D5가 증거다.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에서 실패를 거듭하던 니콘은, 이제 Z9을 내세워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공략에 나선다. 그 결과는 앞서 니콘 D 시리즈 플래그십 DSLR 카메라들이 그랬듯, 충분한 성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니콘 Z9을 다뤄보면 단번에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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