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에 출시되는 태블릿은 단순 콘텐츠를 소비하는 기기가 아닌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기기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성능이나 활용도 면에서 예전보다 생산성이 강화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제품에 따라 휴대성을 살려야 하는 체급에서 오는 성능 혹은 태블릿 전용 운영체제라는 한계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런 점에서 윈도를 탑재한 태블릿들은 운영체제의 한계 문제에서만큼은 다른 태블릿에 비해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탈착형 키보드를 추가하면 사실상 태블릿이 아닌 노트북이기 때문이다. 에이수스도 크리에이터를 겨냥한 ‘비보북 13 슬레이트 OLED’을 출시하며 ‘생산성을 강조한 태블릿’이라는 시장의 추세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비보북 13 슬레이트 OLED(이하 비보북 슬레이트)의 최대 강점은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디스플레이에 있다. 크리에이터를 겨냥해 출시되는 에이수스 제품이 대부분 그렇듯 비보북 슬레이트도 뛰어난 디스플레이 품질을 갖췄다. 미국 영화 업계 표준 색영역인 DCI-P3 색영역을 100% 충족하므로 영상 편집이나 감상에 최적이다. OLED답게 명암비도 1백만:1로 뛰어나다.
화면 색상과 명암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기술인 HDR도 충실히 지원한다. HDR 콘텐츠에서 최대 밝기가 550니트를 충족해 비디오 전자공학 표준위원회(VESA)의 ‘디스플레이HDR 500 트루블랙’ 인증을 받았다. 그만큼 HDR 콘텐츠에서 뛰어난 품질을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다. 해상도는 FHD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13인치라는 제품 체급이나 가격대를 고려하면 단점이라고 하긴 어렵다.
돌비의 HDR 규격인 돌비 비전을 지원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넷플릭스처럼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돌비 비전 콘텐츠를 재생하면 좀 더 풍부한 색상과 명암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사운드 또한 좌우 각각 2개씩, 총 4쌍인 쿼드 스피커가 탑재되어 있어 돌비의 입체음향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한다. 따라서 영상 콘텐츠 감상에 매우 최적화된 사양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걸맞은 경험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성 면에서는 어떨까? 태블릿 PC의 생산성을 좌우하는 건 결국 CPU, GPU, 메모리 등 기본적인 컴퓨터 성능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보북 슬레이트는 인텔의 보급형 쿼드코어 프로세서인 펜티엄 실버 N6000를 탑재하고 있다. 기본 작동 주파수 1.1GHz에 터보 작동 시에는 최대 3.3GHz까지 올라간다. 메모리는 4GB, 저장장치는 128G eMMC을 탑재하고 있다(국내 출시 모델 기준). eMMC는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에 주로 탑재되는 플래시 메모리 기반 저장장치다.
저전력에 초점을 맞춘 보급형 프로세서를 채택하고 있으며, 메모리도 4GB로 넉넉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최신 고사양 노트북과 같은 빠른 반응속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업무용 PC로서의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벤치마크인 ‘PC마크 10’을 구동해봤을 때 종합 점수는 2410점(에센셜 5273점, 생산성 3456점, 디지털 콘텐츠 제작 2105점)이었다. 사양이나 테스트 수치, 실제 체감 등을 종합해봤을 때, 비보북 슬레이트는 고해상도 영상 편집이나 무거운 작업용 프로그램을 돌리는 용도보다는 문서 작업, 비교적 가벼운 영상 편집이나 사진 편집, 그림 작업에 더 적합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
일반 노트북이 아닌 태블릿 답게 카메라도 전면, 후면에 각각 하나씩 두 개가 들어가있다. 전면은 노트북 웹캠처럼 화상회의 등에 사용할 수 있고, 후면 카메라는 간단한 사진 촬영에 활용해볼 수 있다. 추가로 전원 버튼에는 지문 인식 기능이 있어서 윈도 로그인이나 잠금 해제할 때 요긴하다. 마이크로 SD카드 슬롯도 있어 외부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나 사진을 바로 옮기기도 편하다. 이외에 3.5mm 오디오 단자가 있어 이어폰 등을 연결할 수 있다.
입출력 단자와 충전 단자를 겸하는 USB-C 단자는 두 개가 갖춰져 있다. 동봉된 65W 전용 충전기를 사용하면 39분 만에 60% 충전이 가능한 고속충전을 지원한다. 물론 전용 충전기가 아닌 USB-PD를 지원하는 다른 범용 충전기를 사용해도 된다. 배터리 용량은 50Wh이며, 제조사 설명에 따르면 최대 9.5시간 지속된다.
비보북 슬레이트의 활용도를 좀 더 끌어올리고 싶다면 10만 원을 추가해 키보드, 거치대, 전용 펜, 파우치를 추가하는 걸 추천한다. 특히 전용 펜인 에이수스는 4096단계 필압 감지에 266Hz 샘플링 레이트를 지원해 섬세하면서도 빠른 반응을 보여준다. 실제 필기를 해봤을 때 반응 속도가 상당히 빨라서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거치대는 태블릿 뒤에 자석으로 부착하는 형식이며 키보드와 함께 사용할 때 태블릿이 뒤로 넘어가지 않게 받쳐주는 ‘킥스탠드’ 역할을 한다. 키보드는 키 트래블이 1.4mm라서 이러한 태블릿의 커버를 겸하는 키보드치고는 꽤 괜찮은 입력감을 제공한다. 터치패드도 128 x 64mm로 꽤 넓어서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다. 태블릿 무게는 약 780g인데 거치대, 노트북, 펜을 모두 더하면 약 1.4kg의 일반적 노트북 무게로 늘어난다.
사실 콘텐츠 소비와 생산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콘텐츠 소비 용도로는 태블릿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기지만, 생산성 측면에서는 기존 기기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아직은 역부족인 듯한 인상이 있다. 비보북 슬레이트도 예외는 아니다. 디스플레이 품질은 ‘전문가급’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수준이지만, 전문가급 영상 편집을 하기에는 성능이 다소 아쉽다. 대신 돌비 비전과 돌비 아트모스를 모두 지원하기 때문에 콘텐츠를 감상할 때는 큰 만족감을 준다. 따라서 콘텐츠 소비가 주 용도, 제작은 부가 용도인 경우에 선택하기에 좋은 제품이다. 비보북 13 슬레이트 OLED는 기본 구성 기준 약 59만 9천 원에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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