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등 보편 복지 정책을 지향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번엔 통신비 문제를 겨냥했다. 선거철만되면 등장하는, 표만 노린 선심성 공약이다. 최근 국회에서 관련 법안까지 발의된 가운데 통신비 부담을 실측할 수 있는 지표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2일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민 안심 데이터’ 법안을 발의했다. 기본 데이터 용량 소진 이후에도 일정 속도의 데이터를 무료로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는 앞서 이재명 후보가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을 발표한 데 따른 조치다. 지난해 11월 이 후보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시대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데이터 이용 제도 정립이 필요하다”며 전국민 안심 데이터 공약을 발표했다. 이 후보는 “안심 데이터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2022년 내에 완료하도록 하겠다”고도 밝혔다.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전기통신사업법 제29조(요금의 감면)에 새로운 조항을 추가하도록 했다. “이동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이동통신서비스 이용자의 최소한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해 이용자가 사용 중인 요금제에서 제공되는 약정 데이터양을 소진한 후에도 추가 이용요금 없이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데이터 이용 속도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최소 수준으로 규정했다.
데이터 이용이 일상화된 만큼 전국민을 대상으로 데이터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입법 취지다. 특히 모바일 기기로 뉴스·동영상을 시청해 정보를 얻거나 QR코드 방역패스 사용·KTX 예매·전자결제 등 공공 서비스 이용 시에도 데이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용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 이용 속도 기준에 중복 지원 쟁점까지…업계 “선거용 공약” 반발
전국민 안심 데이터 법안은 대선 후보 공약과 관련된 만큼 당장 국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간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박소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조항에서 말하는 최소 수준의 속도를 정하는 기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조사관은 “뉴스·동영상 시청 등이 가능할 수준의 속도라면 기존 무제한 요금제와의 차별성이 없어져 무제한 요금제 이용자가 줄어들 것 같다”며 “그렇게 되면 이용자들이 낮은 금액의 요금제를 사용할 텐데 그럴 경우 이동통신사 및 알뜰폰 사업자와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통신비 지원 정책과 중복될 수 있다는 점도 쟁점이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이동통신요금을 감면하고 있다. 생계·의료 급여 수급자, 기초연금 수급자 등은 1만1000원에서 2만6000원을 기본감면 받는다. 과기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으로 요금 감면을 받고 있는 사람은 638만명이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에서는 “선거용 공약”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비 인하는 포퓰리즘”이라며 “전국민 안심 데이터를 도입하면 데이터 이용 품질 유지 의무가 부과될 것이고 그에 따라 통신사의 장비 증설 부담이 늘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선거철이 되면 통신비 인하나 전국민 대상 요금제 등의 얘기들이 나와서 사실 새로운 정책은 아닌 것 같다”며 “정부가 기업의 상품을 설계하는 건데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슈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통신비 부담 수준 비교 불가…“측정 지표 마련해야”
통신비 부담 완화 정책을 내놓기 전, 부담 수준을 실측할 수 있는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온다. 지난 2020년 9월 정부가 통신비 2만원을 지급했을 때도 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계청의 가계 통신비 통계에는 소비자가 인식하는 통신 서비스 요금이 집계되는데 이때 이동전화 요금뿐만 아니라 인터넷 이용료, 통신장비에 심지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다 포함된다”며 “이 모두가 가계 소득 중 통신 항목으로 계산돼 과다 계상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 통계 이외에도 각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제출하는 가계 통신비 통계가 있다. 그러나 국가별로 세부 기준이 달라 국가 간의 단순 비교가 불가하다. 데이터 제공 속도나 품질 등 국가별로 데이터 이용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 모바일 데이터 이용 환경을 반영한 비교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신 교수는 “명목 요금이 아닌 요금 감면 혜택 등을 반영한 실질 요금 수준에 대한 비교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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