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상충하기에 동시에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일컬어 흔히 ‘두 마리 토끼’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고들 말한다. 어느 하나를 달성하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트북에 있어서 두 마리 토끼는 성능과 휴대성이다. ‘성능이 뛰어날수록 무겁고, 가벼울수록 성능이 아쉽다’는 건 노트북 상식에 가까웠다.
기술 발전은 종종 기존 상식을 뒤흔든다. 몇 년 새 노트북을 위한 모바일 CPU들은 저전력화, 고효율화를 거듭했다. 그 덕분에 노트북들도 경량급 체급에서 기대하기 힘들었던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제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이번에 살펴볼 레노버 요가 슬림 7 카본도 그중 하나다.
레노버 요가 슬림 7 카본을 처음 박스에서 꺼내 들고 가장 처음 느낀 인상은 ‘가볍다’는 것이다. ‘카본’이라는 이름답게 탄소 섬유와 마그네슘 합금으로 제작된 몸체 덕분에 무게가 1.1kg에 불과하다. 두께도 얇아서 14.9mm 수준이다. 가볍고 얇지만 내구성은 결코 약하지 않아서 미국 국방성 군사 규격인 밀스펙(MIL-STD 810H) 인증을 받았다. 전장처럼 거친 환경에서 사용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요가 슬림 7 카본의 가벼움과 얇기에 기여하는 또 다른 요소는 디스플레이다. OLED 디스플레이는 LCD와 달리 소자가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뒤에서 화면을 밝혀주는 부품, 즉 백라이트 유닛이 필요 없다. 따라서 그만큼 더 가볍고 얇게 만들 수 있다. 화소 단위로 빛을 제어하기 때문에 명암비도 뛰어나다. 요가 슬림 7 카본의 경우 14인치 화면에 16:10 비율 QHD+ 해상도에 화면 주사율은 최대 90Hz까지 지원한다. 부드러운 움직임을 원할 때는 90Hz로 사용하고, 배터리를 절약하고 싶다면 60Hz로 사용하면 된다. 주사율 전환은 단축키 하나로 간단하게 할 수 있다. 색 영역은 미국 영화 업계 표준 색 영역인 DCI-P3 색영역을 100% 충족하므로 영상 편집이나 감상에 적합한 사양을 갖추고 있다.
‘디스플레이HDR 500 트루블랙’ 인증도 받았다. 비디오 전자공학 표준위원회(VESA)에서 HDR 성능이 뛰어난 디스플레이에 부여하는 인증으로, ‘디스플레이HDR 500 트루블랙’은 HDR 콘텐츠를 재생할 때 최대 밝기 500니트 이상을 달성해야 한다. 요가 슬림 7 카본의 디스플레이는 SDR 콘텐츠를 재생할 때와 같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400니트까지 지원하지만 HDR 콘텐츠 재생과 같은 특정 상황에서는 500니트가 넘는 밝기 표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레노버 설명에 따르면 요가 슬림 7 카본의 디스플레이는 최대 600니트까지 표현할 수 있다.
뛰어난 디스플레이 품질에 걸맞게 돌비의 돌비 비전도 지원한다. 돌비비전은 색상과 명암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기술인 HDR의 규격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다른 규격인 HDR10보다는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좀 더 뛰어난 화질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넷플리스처럼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콘텐츠를 감상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또한 키보드 양옆에 4개의 스피커가 배치돼 돌비의 입체음향 기술인 돌비 애트모스도 동시에 지원한다. 이 또한 돌비 비전과 마찬가지로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콘텐츠를 감상할 때 훨씬 더 풍부한 음향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요가 슬림 7 카본에는 AMD가 지난해 선보였던 젠3 아키텍처 기반 저전력 고효율 모바일 GPU인 AMD 라이젠 7 5000U 시리즈가 탑재돼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세부 모델에 따라 5600U와 5800U를 선택할 수 있다. GPU도 세부 모델에 따라 프로세서 내장 유닛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추가로 엔비디아 지포스 MX450가 탑재된다. 메모리는 모든 모델이 동일하게 16GB LPDDR4x 램을 채택하고 있으며, 저장장치는 M.2 2280 SSD가 512GB와 1TB 두 가지 용량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리뷰에 사용한 제품은 라이젠 7 5800U와 지포스 MX450, 1TB SSD가 탑재된 최고 사양 제품이다. 5800U는 라이젠 7 모바일 프로세서 제품군 중 저전력 고효율 라인업인 5000U 시리즈 중에서 최상위 제품이다. 8코어 16스레드 구성에 기본 클록 1.9GHz, 부스트 클록 4.4GHz로 작동한다. 열 설계 전력이 15W에 불과하지만 이전 세대 데스크톱에 맞먹는 성능을 낸다.
성능을 수치로 확인하기 위해 CPU 성능 측정에 많이 사용하는 시네벤치 R23을 실행해본 결과, 싱글코어에서 1374점, 멀티코어에서 9184점을 획득했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라이젠 5 3600 기반 데스크톱 시스템이 멀티코어에서 8810점을 획득했다는 걸 생각하면, 1.1kg에 불과한 노트북이 웬만한 데스크톱은 뛰어넘는 성능을 지녔다는 뜻이다. 이전 세대 제품과 비교해 동영상 편집이나 사진 편집에서 두 배 정도 빠른 속도를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픽 성능도 이전 세대보다 개선돼 내장 그래픽만으로도 간단한 작업이나 캐주얼한 게임 정도는 충분히 돌릴 수 있는 수준이다. 조금 더 높은 성능이 필요한 경우 리뷰에 쓴 모델처럼 MX450이 들어간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 해당 모델로 PC의 게임 성능 측정에 주로 사용되는 3D마크 점수를 측정한 결과, 다이렉트X 12 기반 테스트인 ‘타임스파이’에서는 2023점, 다이렉트X 11 기반 테스트인 ‘파이어 스트라이크’에서는 4426점을 획득했다. 높은 점수는 아니지만 저전력 모바일 프로세서라는 체급을 고려하면 준수한 점수이며, 내장 그래픽보다는 좀 더 개선된 성능을 제공한다. 아주 고사양 게임이 아니라면 최신 게임이라도 그래픽 품질을 어느 정도 타협하면 충분히 원활하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실사용 환경과 유사한 환경과 조건에서 PC 성능을 측정하는 PC마크10 점수도 측정해봤다. 결과는 종합점수 5440점으로 상당히 준수한 점수를 획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에센셜 점수는 9506점, 생산성 점수는 8538점이었으며, 디지털 콘텐츠 창작 점수는 5385점이었다. 에센셜은 기본적인 앱 구동, 화상회의, 웹 브라우징 등 일반적인 PC 사용 성능을 나타내며, 생산성은 스프레드시트나 워드 등 각종 문서 작업, 디지털 콘텐츠 창작은 사진이나 영상 편집 성능을 나타낸다. PC마크 개발사인 UL 벤치마크는 에센셜 4100점, 생산성 4500점, 디지털 콘텐츠 창작 3450점 이상일 때 해당 용도로 적합하다고 안내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레노버 요가 슬림 7 카본은 어떤 용도로 활용하더라도 괜찮은 성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실제 노트북을 사용해본 체감도 굼뜬 느낌 없이 앱이 빠르게 실행되고, 전반적으로 쾌적한 사용감을 제공했다. 또한 발열이나 소음 제어도 잘 되는 편이라 벤치마크를 여러 번 연달아 실행하는 과정에서도 소음이나 발열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노트북 사용 만족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는 건 키보드 사용감이다. 특히 경량급 노트북은 워낙 얇다보니 키가 눌리는 깊이, 즉 키 트래블 자체가 짧을 수밖에 없어 키감이 썩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요가 슬림 7 카본은 무게나 두께를 생각하면 상당히 괜찮은 키감을 제공한다. 공식 사양에서 키 트래블을 명시하지 않아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좋은 키감을 표현할 때 흔히 말하는 ‘쫀쫀함’이 어느정도 느껴질 정도다.
배터리 용량은 61WHr 수준인데, 제조사 설명에 따르면 최대 14.5시간 사용할 수 있다. 동봉된 65W 어댑터를 활용하면 15분 충전으로 3시간 사용 가능한 수준의 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충전 단자는 별도 전원 단자 대신 USB C타입을 활용한다. 외부 입력 단자는 USB C 타입으로만 세 개가 있는데 세부 사양이 단자 위치에 따라 다르다. 왼쪽에 있는 두 단자는 USB 3.2 GEN 2 사양으로 디스플레이포트 1.4와 PD 3.0을 지원해 데이터 전송과 더불어 디스플레이 연결, 충전을 겸하는 단자지만 우측에 있는 단자는 USB 3.2 GEN 1 사양이라 용도가 데이터 전송으로 제한된다.
노트북 잠금 해제를 위한 인증 방식으로는 카메라를 활용한 안면 인식 기능인 ‘윈도 헬로’를 지원한다. 손을 움직여도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지만 얼굴 정렬을 맞춰야 한다는 점은 다소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윈도 헬로 외에도 카메라를 활용한 유용하면서도 재밌는 기능이 많다. 기본 제공되는 ‘미라매트릭스 글랜스’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시선을 인식해 화면을 보지 않을 때 화면을 흐리게 가려주고, 어깨 너머로 누군가 화면을 훔쳐보면 이를 감지해 알려준다. 외부 디스플레이를 연결했을 때도 안 보고 있는 화면은 흐리게 가리도록 설정할 수 있다. 보안에 민감한 작업을 한다면 굉장히 유용할 기능이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레노버 요가 슬림 7 카본은 노트북이 갖춰야 할 미덕을 잘 갖추고 있고, 기본기에 충실한 제품이다. 세상에 완벽한 물건은 없듯 노트북도 결국 완벽할 수는 없다. 따라서 휴대성과 내구성, 성능, 사용 편의성, 배터리 시간 등 여러 가치 사이에서 만족할만한 균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레노버 요가 슬림7은 어느 하나 크게 아쉬운 부분 없이 만족감을 준다는 점에서 적절한 균형을 잘 찾은 제품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웹 브라우징이나 문서 작업은 물론 가벼운 사진 편집이나 영상 편집에도 충분하다. 부담 없이 들고 다닐 데일리 노트북을 찾는 직장인, 학생, 크리에이터 모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제품 외적으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요가 7 슬림에 ‘프리미엄 케어’가 지원된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케어는 레노버의 일부 제품군에 적용되는 프리미엄 고객 지원 서비스다. 숙련 전문 엔지니어들이 24시간 상시 대기하며 제품 문제 발생 시 빠른 해결을 지원한다. 또한 고객 과실로 발생한 파손도 무상으로 수리하는 ‘우발적 손상 보장’ 서비스도 1년간 지원한다. 혹여나 새 노트북을 실수로 망가뜨려 큰 수리비를 지출할까봐 노심초사 하지 않아도 된다. 레노버 요가 7 슬림 카본 가격은 5600U와 500GB SSD를 탑재한 기본 모델 기준으로 약 149만 원에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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