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업무의 30~50%는 단순 반복 작업이다. 시스템 로그인과 문서 쓰기, 화면 조회, 데이터 읽고 쓰고 계산하기, 이메일 보내기 등의 일이 업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글로벌 RPA 기업 오토메이션 애니웨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부수적인 관리 업무에 쓰는 일평균 소요 시간이 3.58 시간으로 조사국 중에서도 세 번째로 많았다. 이렇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단순 반복 업무는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이런 상황에서 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가 전 산업에 걸쳐 주목을 받고 있다. RPA란 사람이 수행하는 반복적이면서 표준화된 업무를 소프트웨어 로봇으로 자동화하는 기술이다. 웹사이트나 앱 로그인, 시스템 데이터 입력, 파일 또는 폴더 옮기기, 빈칸에 단어쓰기, 웹 숫자나 데이터 추출과 계산, 이메일 내용에 기초한 업무 흐름 수행 등 다양한 일을 RPA로 자동화할 수 있다.
국내 기업 379개사의 인사ㆍIT 의사결정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리멤버 서베이는 “RPA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평균적으로 매달 6000만 원의 인건비를 절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RPA를 사용하는 기업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67점이 나왔으며, 77%는 ‘업무 생산성 향상이 가능해서’, 22%는 ‘고부가가치 업무로 인력 재배치가 가능해서'라고 만족의 이유를 밝혔다. 물론, 업무당 RPA 동작 수행 시간과 사람의 수행 시간 간엔 큰 차이는 없다. 다만, RPA는 사람처럼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잘 필요가 없으며, 봇의 수를 확장하는 게 가능해 업무 효율성을 증대한다.
업계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점이 “RPA 도입 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자동화에 나섰다간 해당 업무가 RPA에 적절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거나, 과도한 비용 문제를 겪을 수 있다. RPA 도입 전 필요한 준비가 무엇인지를 확인해보자.
1.RPA에 어울리는 업무를 분석해라
RPA 도입에 실패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과도한 기대와 정밀하지 못한 업무 분석’ 때문이다. RPA는 모든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업무이며, 정형화된 데이터를 다루고, 프로세스가 정의된 표준화된 분야, 그리고 고정된 시스템이나 웹을 통해 정보가 연결되는 분야일 경우에 RPA 도입 시 생산성이 향상된다. 정형화된 데이터란 정해 놓은 형식과 구조에 따라 저장되는 이름, 주소, 숫자, 계좌번호 등의 데이터를 말한다. 음성 파일처럼 정해진 규칙이 없는 데이터는 비정형 데이터라고 한다. 또한, RPA 도입 전 해당 업무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는지, 수작업으로 인한 오류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도 따져야 할 부분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보고서 ‘주 52시간 시대의 해법, RPA를 주목하라’는 “단순할 것으로 생각했던 프로세스가 실제 구현 시 복잡도가 높거나 예외 케이스가 잦아서 구현 후에도 (RPA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업무 분석에 실패함에 따라 현업 담당자의 지속적인 개입이 요구되고, 예상치 못한 기술적 오류를 겪는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RPA 도입 전 RPA 벤더 업체로부터 컨설팅을 듣는 것을 권한다. 오토메이션 애니웨어는 RPA를 도입하려는 회사와 ‘프로세스 디스커버리 워크숍’를 진행해 해당 회사의 업무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어떤 업무에 RPA를 도입하면 좋을지를 미리 분석한다. 또한, 어떤 업무를 자동화하면 효과가 높을지를 분석하는 ‘디스커버리 봇’도 제공된다. 많은 기업이 컨설팅 업체와 거쳐서 RPA를 도입하곤 하는데, RPA 벤더 업체와의 조율을 통해서 컨설팅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RPA라는 단어를 처음 도입한 RPA 전문기업 블루프리즘 관계자는 “많은 국내 기업이 RPA를 경쟁적으로 도입했지만 아직 RPA는 확산 단계까진 가지 못했다. 개별 부서에서 업무 중심으로 태스크 자동화 단계까지는 많이 왔지만, 비용 및 표준화 등 전사적 확장 단계로 나아가는 데 여러 허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전사적 확대를 위해선 30~50대 정도의 디지털 워커를 써야 하지만, 아직 2~4개 정도만 도입한 기업이 대부분이다.
블루프리즘이 RPA 도입기업들과 인터뷰를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는 두 가지 이유와 관련된다. 첫 번째는 도입 단계에서 비용을 과소 추정하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기업이 RPA 도입 비용만 고려해, 이후로 비용이 예상치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전사적 확산을 주저한다. 기존에 만들어 놓은 자동화 프로세스를 수정하고 변경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ROI(투자대비효과)가 낮다는 불만이 생기는 것. 두 번째는 업무 자동화에 대한 기준과 표준이 없어 자동화가 중구난방으로 개발되고 관리된다는 것이다. 일부 부서에서 쓰는 RPA를 다른 부서에 적용하지 못하고, 확대 과정에서 RPA를 새롭게 구축하는 사례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RPA 확산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커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RPA를 도입하기 전 철저한 분석과 준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발 이후에 발생하는 추가 라이선스 비용과 인건비, 유지보수 등의 숨겨진 비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한, 파일럿 프로젝트 기간에 고난도의 자동화 프로세스를 만들고, 표준화와 거버넌스 체계 구축 등 실제 운영 단계에서 겪을 만한 각종 난관을 미리 검증할 수 있는 RPA 벤더를 고려해야 한다.
블루프리즘은 프로세스의 단계를 ‘오브젝트’로 만들어 재사용성을 높였다. 한번 사용한 로봇을 레고 블록처럼 쪼개서, 이를 쉽게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블루프리즘은 관련 부서의 개발을 지원하면서,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오브젝트를 카탈로그화해 정리하고 있다. 전사 확장에 있어서 RPA를 빠르게 재사용해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아끼게 된다. 일본항공(JAL)은 블루프리즘을 통해서 20대의 디지털 워커로 50개 이상의 자동화 프로세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브젝트를 재사용해 개발 생산성과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점이 도입에 앞서 큰 장점으로 거론됐다.
2.RPA 도입 필요성을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라
직원 입장에선 RPA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기술로 비쳐, 불안감을 주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오토메이션 애니웨어가 기업 고객과 9개 산업 분야의 글로벌 2000 및 포춘 500대 기업 기술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선 근로자가 RPA를 강력히 지지하는 경우는 16% 정도였다. 이는 C레벨급 경영진, 이사급, 관리자급이 강력히 지지한 비율의 절반 정도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RPA의 이점과 실제 적용이 가능한 업무가 무엇인지, 그리고 RPA에 접근하기 위해 택한 과정을 직원들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RPA를 전사 도입한 현대오토에버는 1년에 2회씩 주기적으로 사내에서 RPA를 위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사내 RPA 확산을 위한 과제 발굴 설명회를 통해서 RPA를 활용할 수 있는 업무가 무엇인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현업에 필요한 RPA 수요는 어떻게 되는지 조사하고 있다. 또한, 현대오토에버는 협력사에 디지털 전환에 필요한 조언을 주면서 RPA 도입이 적절한 업무와 관련된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한다.
주요 RPA 벤더들은 RPA 기술 및 도입에 필요한 준비사항을 설명하는 교육자료와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오토메이션 애니웨어는 RPA 도입에 필요한 전체적인 과정을 설명하는 영상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RPA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 신한은행과 삼양 홀딩스 등의 고객사와 함께 RPA 이점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쉬운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3.RPA를 위한 거버넌스 모델 확립이 필요하다
IBM의 보고서 ‘앞선 기업들의 선택 RPA, 잘 고르고 잘 쓰는 방법’은 “일부 기업은 이런 도구를 도입하면서 IT나 정보 보안 매니저를 참여시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문제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RPA 구축 후 사소한 업무 변경을 할 때 RPA 동작 스크립트 수정이 필요하다. 기업 내부에 숙달된 IT 전문가가 이를 맡아야 한다. 보안에 있어서도 RPA 프로세스가 조작되지 않도록 준비가 필요하다. IT 및 보안 부서를 배제한 상태에서 도입된 RPA는 IT 관련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블루프리즘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사람의 개입이 필요한 어텐디드 봇(Attended Bot)으로 자동화를 하는데, 이런 경우 자동화 업무가 중앙에서 통제되지 않고 개인 데스크톱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효율적인 통제 및 관리가 어렵다. 특히 보안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 야기한다”고 말했다. RPA를 구축한 후 자동화 업무와 관련된 역할과 책임을 정의하며, 부서 간 협업과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거버넌스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포플라의 최인묵 대표이사는 “국내기업들이 RPA 도입이 시작된 지 4년 정도가 흘렀다. 이후로 부서별 사업추진이나 비용 등의 이유로 두 개 이상의 RPA 제품을 사용하는 곳도 늘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제품별 스크립트 수정 및 확장에 제약이 있고, 도입된 RPA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인포플라는 다양한 RPA 솔루션을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IT운영관리 솔루션인 ITOMS(아이톰스)를 제공한다. 이에 따라 이종의 RPA 제품들도 ITOMS를 통해서 동시에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통합 환경에서 이용자는 편하게 업무 자동화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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