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왕진 의사’다. 서울 노원구를 거점으로 14년째 지역 구석구석 어르신들을 살피고 있다. 왕진 가방을 들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진찰하다 보면 안타까운 상황과 마주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아픈 곳이 있어도 의사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부지기수다. 산소 치료나 배뇨 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환자 상태가 중한 경우일수록 더 그렇다.
정부는 이러한 어르신들을 보살피기 위해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본격 시행했다.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판정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주기적으로 방문해 돌봄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들도 전문 의료진이 아닌지라 어르신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들의 집을 의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체크하는 제도가 시행돼야 하는 이유다.
전체 수급자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장기요양보험 1·2등급 판정을 받은 어르신만이라도 왕진 의사가 방문해야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의 왕진으로도 어르신들의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깝게는 수가를 개편해 왕진을 활성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을 연계해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7년 이미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30년엔 그 비중이 24.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 4명 중 1명이 노인이 된다는 뜻이다.
이는 곧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건강보험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는 2008년 10조4900억 원에서 2020년 37조4737억 원으로 급증했다. 2030년에는 총 진료비 중 노인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5.4%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왕진 시스템이 체계화돼 수급자들의 적기 진료를 보장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치료 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약 86만 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은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급여비는 9조8248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 새 규모가 2배 가까이로 늘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보다 중요한 건 서비스의 ‘질’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정부가 노인장기요양제도의 개선점을 찾는 노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편안한 노년의 삶을 위해서는 의료와 복지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 노인 돌봄의 한 축인 의료 영역에서는 의사의 자리가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으로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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