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 인사이트] 하반신 마비환자의 걸음, 기적 아닌 기술로 이루다

  • 동아닷컴
  • 입력 2022년 3월 17일 09시 40분


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내 경쟁상대는 자신 뿐,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전 정신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에 이어 지난 13일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Paralympics)까지 모두 끝났습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출전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였는데요. 서로의 경쟁을 통해 메달이라는 순위를 결정하지만, 올림픽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순위가 아닌 자신의 한계에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 그것만으로도 금메달에 버금가는 가치가 아닐까요.

특히, 패럴림픽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하나된 열정으로 함께 어울린다는 공존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패럴림픽은 Paraplegia(척수장애, 휠체어 등 하반신 마비)의 ‘Para’와 올림픽(Olympics)의 ‘Lympics’의 합성어인데요. 패럴림픽은 시작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8년이라고 합니다. 전쟁 중 부상을 당한 군인들이 전쟁 후유증 등으로 고통받자 영국 스토크맨더빌 병원의 구트만(Ludwig Gutmann) 박사가 주도해 재활 목적으로 열었던 체육대회가 시작이었죠. 이후 1952년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내 국제 규모 대회로 성장했고, 대회 규모는 계속 확장해 척수장애를 의미하는 Paraplegia가 아닌 평행을 의미하는 ‘Parallel’로 새롭게 대회를 정의했죠.

최초의 동계 패럴림픽은 1976 스웨덴 외른셸스비크에서 열렸습니다. 1988년 개최한 인스부르크 동계 패럴림픽부터 올림픽과 함께 동반 개최했죠. 이 자리를 빌려 신체 장애 및 비장애 선수 모두에게 지난 4년간 묵묵히 꾸준하게 노력한 모습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출처: 베이징 동계 올림픽 홈페이지

패럴림픽은 중계 방송이 적어 조금 아쉬웠는데요. 그럼에도 장애를 극복하고 한계를 넘어 대회에 열중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패럴림픽은 올림픽보다 중계 방송이 적어 많은 경기를 시청하기 어려웠는데요. 그래도 방송과 뉴스, 유튜브 등을 통해 대회 소식을 접하며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들의 모습은 올림픽 이상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역동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데요. 중계 방송은 없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파라아이스하키 경기를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출처: 대한장애인체육회

선수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경기가 끝나면 얼마나 힘들까’ 싶어 걱정스럽더라고요.

네, 실제로 경기 중 혼신의 힘을 다한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휠체어 등 보조기구에 의지해 숙소로 복귀하곤 합니다. 경기장 밖을 나오면 또 다시 인프라 부재 등 주변 환경문제로 이동하기도 쉽지 않죠. 이러한 문제는 패럴림픽 선수뿐만 아니라 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전 세계에는 이동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상버스, 계단 없는 건물 등 차츰 문제점을 개선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죠. 예상치 못한 변수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바로 입는 로봇, ‘웨어러블 로봇’입니다.

출처: Wandercraft 홈페이지
출처: Wandercraft 홈페이지

입는 로봇? 로봇을 입고 걷는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이동약자, 교통약자에게 새로운 혁신입니다. 그리고 웨어러블 로봇은 비단 교통약자만이 아니라 여러 산업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 성장을 기대할 수 있죠.

웨어러블 로봇은 재활, 교통약자의 이동수단, 제조업, 국방, 건설 등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착용자가 신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신체적으로 부담스러운 작업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죠. 즉, 생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로봇 제조사뿐만 아니라 군수품 제조사, 모빌리티 기업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이 시장 진출을 위해 투자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웨어러블 로봇의 시장 규모는 2022년 9억 5,250만 달러(한화 약 1조 1,853억 원)에서 연평균 43.6% 성장해 2029년 119억 9,500만 달러(한화 약 14조 9,277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죠.

출처: 필자 제공
출처: 필자 제공

웨어러블 로봇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이 궁금합니다.

2012년 설립해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 제조사 ‘Wandercraft’가 있습니다. Wandercraft는 보행 보조 로봇 ‘아탈란테(Atalante)’를 개발하고 있는데요. 공동창업자인 장 루이스 콘스탄자(Jean-Louise Constanza)의 아들은 유년 시절 유전적 신경장애를 앓아 휠체어에 의존하며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아빠는 로봇 엔지니어니까 걷기 어려운 사람을 걷도록 돕는 로봇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말을 듣고 바로 회사를 설립한 일화로 유명한데요. 결국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걸을 수 있게 도운 셈이죠.

Wandercraft는 수 년 간 외골격 로봇을 개발해 2017년 보행 보조 로봇의 초기모델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최신형 아탈란테는 약 12도로 굴절할 수 있는 보행 알고리즘을 탑재해 인간의 걸음걸이를 복제하고, 걷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움직임도 구현합니다. 최근 유럽에서 의료기기규정(MDR) 승인도 받았죠. 아직 개인이 아탈란테를 단독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의료 목적으로 아탈란테를 사용해 환자의 보행 보조, 신체 움직임을 위한 근육 자극 등의 치료를 병행할 수 있죠.

출처: Wandercraft 홈페이지
출처: Wandercraft 홈페이지

두 세트의 이동식 배터리를 장착한 아탈란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깨, 가슴, 무릎, 발을 고정한 뒤 음성 및 리모컨을 이용해 구동하는데요. 미세 움직임 조정과 운동 프로그램을 입력한 솔루션을 활용해 단순한 움직임뿐만 아니라 치료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탈란테의 지능형 소프트웨어는 환자의 체형에 맞는 적합한 운동학적 시스템을 자동으로 설계하죠. 또한,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이는 ‘RealGate’ 모드, 보폭/속도 등 세부 기능을 변경할 수 있는 ‘CustomGait’ 모드, 기기의 도움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ActiveGait’ 모드, 재활 시작 단계 ‘EarlyGait’ 모드 등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아탈란테의 가격은 17만 6,000 달러(한화 약 2억 1,800만 원)로 현재 프랑스, 룩셈부르크, 미국 등의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Wandercraft는 최근 4,500만 달러(한화 약 558억 5,850만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죠. 기존 아탈란테는 약 50kg에 달하는 무게로 병원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지만, Wandercraft는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아탈란테를 더 가볍게 만들고, 성능을 높여 가정용, 야외용 등 활용 범위를 확대한 웨어러블 로봇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Wandercraft의 공동창립자 장 루이스 콘스탄자는 “지금부터 10년 후 휠체어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라며 계속해 고성능 로봇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어쩌면 머지 않은 미래에 휠체어 대신 로봇을 입고 걷는 사람을 일상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는 관련 산업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지난 2022년 3월 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로봇산업정책심의회를 개최하고 산업 디지털 전환의 매개체로 로봇 활용을 지원하기 위한 ‘2022년 지능형 로봇 실행계획’을 심의·의결했습니다. 정부는 제조 및 서비스용 로봇의 연구개발과 보급확산을 위해 2,44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인데요. HRI(인간로봇 상호작용) 기반의 반려로봇, 일상생활 보행 보조 로봇 등 로봇 개발에 착수하고, 국민 생활 밀접 시설을 중심으로 1,600대 이상 대규모 로봇 보급 및 융합실증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CES2022’에서 로보틱스와 메타버스를 결합한 ‘메타모빌리티(Metamobility)’를 통해 인간의 이동경험 영역 확장 및 이동의 자유 실현을 골자로 하는 미래 로보틱스 비전을 공개했습니다. ‘사용자의 이동 경험을 혁신적으로 확장하는 메타모빌리티’, ‘사물에 이동성을 부여한 Mobility of Things(MoT)’, ‘인간을 위한 지능형 로봇’ 등을 소개했는데요.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지능형 로봇’은 지각능력을 지니며, 인간 및 외부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로보틱스 기술입니다. 지난 2020년 12월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보행 로봇 ‘스팟(Spot)’과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가 대표적이죠. 이와 함께 인간 한계 극복을 위한 여러 종류의 웨어러블 로봇을 함께 개발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출처: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도 로봇 시장 진출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1년 사이 로봇 관련 인력을 10배 이상 늘리며 해당 부서의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데요. 지난 1월에는 미국과 캐나다 특허청에 ‘삼성봇’의 브랜드 특허를 등록하는 등 로봇산업 진출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한, 웨어러블 로봇 ‘젬스(GEMS)’를 오는 4월 출시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는데요. 매장에서 주문, 결제, 서빙 등을 제공하는 ‘삼성봇 서빙’, 고객응대 업무를 수행하는 ‘삼성봇 가이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삼성봇 케어’, 가정용 로봇 ‘핸디’ 등 다양한 역할 수행 로봇을 양산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입을 수 있는 로봇이라니… 뭔가 아이언맨이 입는 슈트 같네요. 뭔가 많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자율주행 휠체어, 유모차, 휠체어 등 이동이 불편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위한 네비게이션 등 교통약자를 위한 다양한 모빌리티를 소개했습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업이 교통약자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접목한 모빌리티를 선보이고 있죠. 정부도 교통약자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소개한 웨어러블 로봇이 상용화되는 날이 온다면, 하반신 신경손상,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 등으로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교통약자에게 이동의 자유를 안겨줄 것입니다. 새로운 모빌리티 혁명이죠. 또한, 인간의 신체능력을 향상시켜 위험 부담이 크고 신체 피로도가 높은 업무도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겁니다. 때문에 근로자의 안전, 생산 효율성 향상 등 산업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웨어러블 로봇 기술은 앞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겁니다. 진정한 의미로 이동의 한계가 없는 세상을 기대합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라는 전문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동아닷컴 IT 전문 권명관 기자 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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