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국은 IT업계발 갈등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인앱결제 강제부터 망 이용료까지 세계적인 이목을 끄는 문제가 법제화와 판결에서 선례를 남기면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IT기업들이 한국의 상황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
통신업계는 망 이용료 이슈가 세계적인 공감대로 확대되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달 초엔 세계 약 750개 통신사업자를 회원사로 두고 있는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는 넷플릭스 등의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가 망 이용료를 분담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국내외 통신사들이 글로벌 CP사가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공정한 몫을 지불해야 한다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12월엔 유럽 각국의 주요 통신사 13곳은 글로벌 CP에게 네트워크 업데이트에 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리는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의 망 이용료 2심 공방이 시작됐다. 지난달 16일 2심 첫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작년 6월 지난 1심에서 재판부가 “넷플릭스는 SKB를 통해 인터넷망 연결이라는 유상의 역무를 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며 SKB의 손을 들어줬는데, 이에 넷플릭스가 항소를 제기해 2심이 열렸다. 사건의 시작은 SKB가 2019년 11월 넷플릭스와 망 이용대가를 협상하는 걸 중재해달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재정신청이다. 이에 넷플릭스는 방통위 중재를 거부하고 트래픽과 관련해 망 이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며 SKB에 대해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넷플릭스는 2심에서 ‘빌앤킵(Bill and Keep·상호무정산) ’원칙이 CP에게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빌앤킵이란 ISP(통신사업자)간 망 연결을 통해 발생하는 트래픽이 비슷하다면 서로 망 접속에 대한 비용을 정산하지 않는 방식을 말한다. ISP는 자사 서비스 이용자에게만 접속료를 받고 상대 ISP에겐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게 기본 원칙인 것처럼, CP와 ISP도 각자 자기 비용만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에 SKB는 “빌앤킵은 교환되는 트래픽 비율과 망 연동을 통해 얻는 이익이 유사할 때 ISP간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정산 방식”이며 “빌앤킵은 ISP가 비용을 정산하는 방식 중 하나일 뿐 기본 원칙이 아니다”며 반박했다.
망 중립성은 망을 무료로 쓰는 개념 아니다.."이미 법원이 인정한 사실"
SKB 관계자는 “일본과 홍콩에 있는 넷플릭스의 OCA(오픈커넥트어플라이언스)로 SKB 전용회선을 타고 국내로 들어오면, 이후 국내 ISP 망에서 전국 넷플릭스 이용자에게 콘텐츠가 전달된다”고 말했다. OCA란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로 구축한 캐시서버다. 캐시서버는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데이터를 임시 저장해 데이터 전송 요청이 있을 때 빠르게 보내주는 서버를 말한다. 국제망을 거칠 필요 없이 OCA에 저장한 콘텐츠를 바로 보내기 때문에 해외에서 국내까지 국제구간의 트래픽을 크게 줄일 수 있다.
SKB 관계자는 “동영상은 화질이 올라가면 트래픽도 많이 늘어난다. 이에 넷플릭스의 대규모 트래픽 영상은 일반회선이 아닌 전용회선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망에서 전송 가능한 트래픽의 양은 정해져 있는데, 일반 콘텐츠와 대규모 트래픽 콘텐츠를 같이 전송하면 병목현상이 일어난다. 고속도로에 차량이 많으면 이동이 지체되는 것처럼 전송망에 데이터가 넘치면 인터넷이 끊기거나 속도가 느려진다. 이를 막기 위해 넷플릭스 콘텐츠만 전송하는 전용회선이 필요한 상황이란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OTT( Over The Top, 인터넷 기반 콘텐츠 제공 서비스)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했고 넷플릭스 히트 콘텐츠가 늘면서 한국 가입자도 많이 늘었다. 이에 SKB가 부담하는 비용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SKB에 따르면, 넷플릭스로 SKB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은 2018년 5월 50Gbps에서 작년 9월 1200Gbps 수준으로 약 24배 폭증했다.
SKB는 OCA를 자사 망에 설치해도 전기 이용료와 인터넷데이터센터 비용 등을 지불해야 하며, OCA가 있더라도 국내 가입자에게 도달하는 구간의 트래픽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OCA를 설치해 국제망을 거칠 필요가 없더라도 국내 망에서 최종 이용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트래픽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어, SKB 관계자는 “현재 넷플릭스의 OCA든 CDN업체든 회선을 ISP 망에 연결할 땐 이용 대가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망 중립성은 넷플릭스 측 주장처럼 망을 무료로 쓸 수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특정 CP사가 비용을 더 많이 낸다고 좋은 망을 주는 차별을 금지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방효창 경실련 정보통신위원장(두원공대 교수)은 전화 통화에서 “ISP는 개인과 콘텐츠 사업자를 연결하는 중개자 역할을 한다. 카드사가 가맹점과 이용자 모두에게 수수료를 받는 것처럼 양면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빌앤킵은 ISP 간의 협약을 말한다. ISP간 인터넷 연결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트래픽량이 큰 차이가 없으니 정산하지 말자고 약속하는 것이다”라며 빌앤킵을 인터넷의 기본 원리가 아닌 편의를 위해 맺는 협약으로 정의했다. 방 정보통신위원장의 설명처럼, ISP는 가입자를 전 세계 인터넷과 연결하기 위해서 다른 ISP와 접속을 한다. 이때, 비용이 발생하는 문제는 ISP간 개별적인 협약에 따른다.
망 이용료를 받으면 중소 CP사의 성장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방효창 정보통신위원장은 “국내에선 중소 CP에게 이미 다 과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벌 CP만 비용을 내지 않고 있다. 중소CP는 글로벌 CP에 비해 콘텐츠 경쟁력이 떨어져 가입자 유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글로벌 CP사도 망 접속료를 내야 하며, 이러한 접속료는 이용량에 비례해서 내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용을 아낄 수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건 SKB”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 관련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콘텐츠 전송을 위한 협력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망 용량의 증대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창출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더 빠르고 좋은 광대역 인터넷의 구매를 장려한다”며 ISP와 CP간의 긴밀한 협력은 양측에게 중요한 성장 동력이라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2011년 이후로 142개국에 1만 4000 개가 넘는 OCA를 설치하는 데 1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투입했다. 2020년에만 넷플릭스의 파트너 ISP가 자체망에 OCA를 설치함으로써 절감한 비용이 약 12억 달러로 추산된다.
넷플릭스와 같은 동영상 스트리밍의 트래픽은 보통 저녁 시간에 최대치로 증가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에 미리 이용자와 가까운 OCA에 전송한다. 트래픽이 몰리는 피크시간에 OCA에서 이용자에게 바로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서다. 이에 해외에서 국내로 콘텐츠가 전송되는 국제구간의 트래픽이 크게 감소된다. 또한, OCA를 설치하면 ISP는 중계접속 제공자(주로 대형 ISP)에게 중계접속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ISP는 멀리 떨어진 네트워크와 트래픽을 교환할 때 중계접속 제공자를 거쳐야 하므로 접속료를 내지만,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설치되는 OCA를 이용하면 중계접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의 박경신 교수(오픈넷 이사)는 사단법인 오픈넷의 ‘넷플릭스가 SK에 망 이용료 내면 피해는 소비자가 본다’는 글에서 “각 기업과 개인이 망사업자에게 내는 비용은 인터넷 접속료다. 돈을 받았으니 망 사업자는 가입자가 미국, 한국, 남미 등 전 세계 컴퓨터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줄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접속료를 낸 CP나 이용자에게 ISP가 추가적인 망 이용료를 요구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CP가 국내 망사업자에게 많은 금액을 내는데 해외 CP는 돈을 내지 않는다는 역차별론은 2016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시행한 발신자종량제 때문이다. 기존엔 망 사업자끼리는 접속료를 내지 않았으나, 이후로 데이터 발신량이 많은 망사업자가 그렇지 않은 망사업자에게 돈을 내게 됐다. 결국 CP들이 망사업자들에게 내는 인터넷 접속료가 올랐다. 한국 CP는 국내 망사업자로부터 인터넷 접속을 제공받으니 인터넷 접속료를 내지만, 해외 CP는 본사가 있는 국가의 망사업자에게 인터넷 접속료를 낸다. 한국에서 인터넷 접속을 제공받지 않으니 돈을 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국내 CP사는 매년 망 접속료로 각각 700억 원 300억 원을 부담하고 있다. 스타트업 지원 민간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국내 CP가 지불하는 망 접속료는 뉴욕 대비 4.8배, 파리 대비 8.3배에 달한다. 박 교수는 “CP가 망 이용료를 지급하라는 법이 만들어진다면 국내 인터넷 트래픽 전체가 기존 발신자종량제에 따라 정산될 것이다. 당장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끄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재정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경신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SKB가 넷플릭스 요구대로 서울로 접속지를 옮기면, 일본과 홍콩 등의 접속지에서 국내망으로 옮기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OCA를 설치해도 국내에서 발생하는 트래픽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OCA를 통하면 국내에서 오가는 트래픽도 줄일 수 있다. OCA를 국내 여러 지역에 두면 콘텐츠를 이용자와 가까운 곳에 미리 복사해두기 때문에 트래픽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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