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무엇일까? 암과 치매를 꼽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암은 우리의 몸을, 치매는 우리의 정신을 좀먹어 죽음에 이르게 한다. 환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 의료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암과 치매와 싸울 기술, 기기의 연구 개발에 열중한다.
의료인들이 쌓은 지식과 경험에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더한, 이전에는 없었던 의료 기술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 기술들 덕분에 인류는 암과 치매에 맞서 조금 더 수월하게 싸운다. 의료 바이오 스타트업 레디큐어(RADICURE)를 세운 정원규 대표도 치매와 싸울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의료인이다.
정원규 대표는 강동경희대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임상과장이다. 이 부문에서 30여 년 일했다. 미국 듀크 의학대학교 연구 강사로도 활동하며 수많은 방사선 치료 장비의 개발 국책과제를 한 경험도 있다. 이런 그이기에 일찌감치 치매의 위험, 그리고 이를 치료할 ‘저선량 방사선’의 가능성을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매년 급격히 늘어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노인 열 분 중 한 분 꼴로 치매를 앓아요. 매년 노인 인구는 4% 느는데, 치매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15%씩 늡니다. 자연스레 치매 환자의 치료비도 증가 추세에요. 우리나라가 2019년에 치매 환자들을 관리하는데 쓴 비용은 약 16조 5,000억 원에 달합니다. 치매 환자를 줄이고 비용을 줄일 대책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의료계는 먼저 치매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인지 기능 호전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안전성 문제도 나왔어요. 최근에는 비약물 치료 방법으로, 치매 쥐를 대상으로 암 치료용 방사선 치료 장비의 '저선량'을 주면 인지 기능 호전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하지만, 암 치료용 방사선 치료 장비를 치매 환자에게 바로 적용하기에는 장비 가격도, 비용도 비쌉니다. 게다가 저는 방사선 에너지와 방사선량율이 치매와 같은 만성 염증을 치료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의 고선량이 아닌 저선량 방사선 발생기를 주목했습니다. 방사선으로 치매를 치료한다니,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러려면 먼저 치매의 발병 원리와 기존 치료법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
치매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알츠하이머’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가운데 75%가 알츠하이머를 앓는다. 뇌 속에 베타 아밀로이드, 타우 등 이상 단백질이 많이 생기면 알츠하이머가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츠하이머는 쉽게 말해, 뇌 속에 노폐물이 많이 쌓여 일어나는 병이에요. 그러나, 이 노폐물을 치운다고 해서 이미 손상된 뇌 신경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거의 대부분의 치매 약들이 근본 치료를 못 한 이유가, 이 노폐물만 치우면 환자의 인지 기능이 회복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근본 치료 방법은 이 노폐물을 청소하는 청소부 '미세아교 세포', 즉, 뇌 안의 '면역 세포'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 미세아교 세포는 청소 뿐만 아니라 시냅스 가소성을 증가시키는등 인지 기능 향상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면역 세포의 형질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M1과 M2에요. 뇌 안에 노폐물이 많아지면 미세아교 세포의 'M1 형질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발생합니다. '노폐물을 너무 활발하게 먹어치우는 면역 세포'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그래서 노폐물 청소를 과도하게 하고, 심지어 뇌의 신경 세포까지 청소하려 들어요.
반면, M2 형질 면역 세포는 자기 할 일, 노폐물 제거만 선택적으로 우리 몸에 유익하게 잘 합니다. M1형질과 M2형질 면역 세포의 균형이 잘 맞아야 뇌의 건강을 유지합니다. 이 균형이 깨져 M1형질 면역 세포가 더 많아지면 신경 세포가 파괴되고 뇌의 크기가 줄어듭니다. 이것이 알츠하이머 병으로 이어집니다. 관절염도 이런 원리로 일어나요. 대식 세포가 M1형질이 돼서 관절을 공격해 질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저선량 방사선이 M1형질 면역 세포를 M2형질 면역 세포로 바꿔준다는 것이 논문으로 증명됐어요. 그러면 면역 세포의 비율 균형을 맞출 수 있고, 그 결과 알츠하이머와 관절염 치료 효과가 납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셈이니까요.
사실, 저는 이 가설을 오래 전부터 세웠어요. 그런데, 마치 기적처럼 독일과 미국 등에서 저선량 방사선이 면역 세포의 형질을 바꿔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논문이 속속 등장했어요. 이 논문들을 보고 희열을 느꼈습니다.”
2016년 미국 의학계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쥐의 뇌를 두 영역으로 나눠, 한 쪽은 방치하고 다른 한 쪽에는 방사선을 쐬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방사선을 쐰 쪽의 뇌에 있던 알츠하이머 유발 물질, 베타 아밀로이드가 사라졌다. 정원규 대표는 이 논문을 보고 저선량 방사선의 가능성을 짐작하고 연구하려 결심했다.
전임상을 반복해 데이터를 쌓던 와중에 비슷한 내용을 다룬 독일의 논문과도 만났다. 관절에 저선량 방사선을 쑀더니 염증 완화 효과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암 치료용 고선량 방사선기와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낮은 방사선기의 치료 반응율을 비교한 논문을 본 그는 에너지가 낮은 방사선 치료의 반응율이 20% 정도 높은 것을 확인했다. 나아가 만성 염증 치료에 맞는 방사선 에너지와 방사선 선량율로 치료하는 '치매 전용 저선량 방사선 장비'의 개발 효용성이 매우 클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의학계는 방사선으로 암을 비롯한 세포를 죽이는 방법만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방사선을 써서 세포를 살리는 방법도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려면 방사선을 쐬는 양과 세기(에너지), 총량과 조사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시간에 엄청난 양이 내리는 소나기와 적절한 양이 내리는 가랑비의 차이를 연상하면 됩니다. 저선량 방사선은 아직 연구할 것이 많아요. 생물과 물리학, 임상학 지식을 총 동원해 연구 중입니다.”
정원규 대표가 이렇게 만들 결과물이 저선량 방사선 발생 시스템, 레디큐어 AMG-300이다. 탄소 나노 튜브 선원에 인공지능 조작계를 더해 방사선의 선량과 에너지 양,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조사한다. 기존 필라멘트 기반 방사선 발생기는 비싸고, 정상 조직을 보호하는 효과가 큰 '펄스형의 방사선'을 방출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정원규 대표는 기존 치료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에너지와 선량율을 적고, 선량과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해 조사하도록 기기를 설계해 다양한 적응증에 적용 가능하도록 했다. 관련 특허도 출원했다.
레디큐어 AMG-300의 장점은 치료 효과 뿐만이 아니다. 설치 공간 제약도 덜하다. 기존 방사선 발생기는 동작 시 방사선이 나오기에 기기 설치 장소 주변을 차폐 처리해야 한다. 기기의 부피 자체도 커서 규모가 큰 병원, 그 중에서도 주로 차폐된 지하실에만 설치 가능했다.
레디큐어 AMG-300은 차폐 구조로 설계됐다. 설치 장소 주변을 차폐 처리하지 않아도 되므로 어느 곳에든 설치 가능하다. 부피도 기존 방사선 발생기보다 더 작다. 정원규 대표는 이 제품을 병원 로비처럼 공개된 곳에 설치해, 환자를 치료하는 장면을 방문객에게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어 정원규 대표는 클라우드, 구독 서비스 체계도 구상한다. 레디큐어 AMG-300을 클라우드 조작하면 의료진은 시공간 제약 없이 언제든 환자와 만나 맞춤형 치료를 한다. 구독 서비스로 꾸미면 병원은 기기 구입과 유지보수뿐 아니라 의료 자원 부담도 덜 수 있다.
“레디큐어 AMG-300에 인공지능을 적용해 환자에게 가장 알맞은 방사선량과 에너지량, 조사 각도 등을 스스로 파악해 제공하는 맞춤형 치료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환자의 자료를 병원이나 치료 센터끼리 클라우드로 공유해서 진료 효율을 높이는 기술도 그렇고요. 그러면 환자가 집 근처 치료기가 있는 곳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나아가 서울에 있는 경험 많은 의료진이 미국이나 유럽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 것도 됩니다.
구독 서비스도 염두에 뒀어요. 레디큐어 AMG-300과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면 방사선 종양학 전문의, 의학 물리사와 방사선 치료사 없이도 진료와 방사선 치료할 수 있어요. 방사선 치료를 레디큐어 자체 인력이 클라우드로 담당하니까요. 그러면 병원은 기기 구입 비용뿐 아니라 인력 자원도 절약합니다.”
정원규 대표는 레디큐어 AMG-300의 활용 영역을 치매 치료뿐 아니라 피부 켈로이드, 퇴행성 관절염의 치료, 반려동물 방사선 치료 영역 등으로 넓히려 한다.
“저선량 방사선은 아토피 염증성 만성 피부 질환, 켈로이드 수술 후 재발 방지의 치료 효과도 냅니다. 염증을 억제하는 원리입니다. 피부 치료 시장 규모만 해도 2025년에는 12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해요. 사회 고령화와 함께 늘어날 퇴행성 관절염 환자들도 저선량 방사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레디큐어 AMG-300의 치료 능력은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적용 가능해요.”
레디큐어는 단계적으로 2022년 AMG-300의 시제품을 만들고, 2023년 허가 임상 시험을 거칠 예정이다. 2024년 의료 기기 사용 승인 및 식약처 품목 허가를 마치고 2025년부터 본격 양산을 목표로 운용한다. 이미 부품과 기술 개발, 사업화와 연구는 물론 양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단계에서 힘을 합칠 파트너 기업까지 확보했다. 우리나라 대형 대학 병원과는 공동 연구 및 임상 시험 일정을, 수의학 대학교와 병원과는 저선량 방사선 치료 시스템 시장의 형성 전략까지 마련했다.
정원규 대표는 수십년 간 의술을 펼친 의료인이다. 바쁜 와중에 기술과 기기를 연구 개발하고 스타트업 창업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홍릉강소연구특구가 적극 도운 덕분이라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연구 개발과 사업을 병행하기 힘든 점, 제도의 한계가 있음에도 경험을 앞세워 이들과의 싸움에도 적극 대처한다는 각오를 밝혔다.
“홍릉강소연구특구로부터 스타트업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스타트업 창업 시 가장 힘든 작업이라고들 하는 아이디어 현실화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기술만 있어도 적극 지원해준 덕분에 큰 힘이 됐습니다.
그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아요. 원격 의료 기술 자체는 무난히 만들 수 있지만, 의료 규제를 통과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저선량 방사선 치료 시스템은 의료 기기의 일종이니 인허가 문제도 풀어야 합니다. 투자 유치도 쉽지 않고, 상표 인지도와 영향력을 높일 방안도 찾아야 합니다.
30년 동안 의료계에서 일 하면서 동료 의사와 환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의사 창업의 장점이에요. 의료 현장의 요구를 만족할, 환자에게 꼭 필요한 특화 치료 시스템을 의료 소비자인 환자와 의료 기관에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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