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팁]탄수화물 제대로 먹는 법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교수
3대 에너지원에 속하는 탄수화물, 체내 부족하면 근육 대사 이뤄져
60대 이후엔 근육량 줄어 더 위험… 단백질 과잉 섭취하면 독소로 쌓여
쌀과 면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품을 유달리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탄수화물 중독’이란 말도 있을 정도다. 건강을 지키려면 탄수화물을 덜 먹고 단백질을 충분히 먹으라는 권유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모두에게 옳은 지침도 아니다.
김광준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탄수화물의 충분한 섭취를 주장한다. 특히 60대 이후 탄수화물을 과도하게 제한했다가 심각한 근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탄수화물을 혈당 상승과 체중 증가의 주범으로만 인식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제대로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건강을 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 탄수화물 무조건 줄여야 할까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은 3대 에너지원이다. 지방과 단백질은 인체 조직의 성분으로도 쓰인다. 반면 탄수화물은 거의 모두가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자동차 연료에 비유하자면 탄수화물은 효율이 가장 좋고 부산물은 적은 최상급 휘발유인 셈이다.
탄수화물을 넉넉히 섭취하면 에너지 결핍은 발생하지 않는다. 일부는 간과 근육에 ‘글리코겐’으로 저장됐다가 탄수화물을 제한할 때 보조 에너지로 쓰인다. 물론 이때 지방도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할 때 이런 지방을 꺼내 쓴다면 체중도 줄이고 비만 위험도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지방이 아니라 근육의 글리코겐을 꺼내 쓸 때 생긴다. 이 글리코겐마저 바닥이 나면 근육 안의 단백질을 꺼내게 된다. 그 결과 근 손실이 가속화한다. 이른바 배만 볼록하게 튀어나오는 ‘마른 비만’ 체형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탄수화물을 줄이면 지방에 대한 유혹이 커진다. 김 교수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민족은 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탄수화물 의존도가 높다”며 “탄수화물 섭취량이 줄어들면 지방으로 대리 만족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말했다. 예컨대 밥을 줄이면 기름진 음식이 당기지, 퍽퍽한 살코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 욕구에 굴복하면 지방 섭취량이 늘어난다. 결국 탄수화물을 줄이려다가 지방 섭취량만 늘리는 꼴이 될 수 있다.
탄수화물은 양질의 것을 먹는 게 좋다. 일반적으로 당지수(GI)가 낮고, 다당류이며 복합당인 식품이 좋다. 이런 식품들은 먹었을 때 서서히 흡수되기 때문에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지 않는다. 잡곡이나 통밀, 채소와 해조류가 여기에 포함된다.
○ “60대 이후 근육 부족한 체질 많아”
김 교수는 근육과 지방량에 따른 체질을 크게 △1단계(근육량 많고 지방량 적음) △2단계(근육량과 지방량 모두 많음) △3단계(근육량 적고 지방량 많음) △4단계(근육량과 지방량 모두 적음) 등 네 유형으로 나눴다.
젊고 운동을 많이 할수록 1단계와 2단계 유형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거나 운동량이 줄어들면 근육이 크게 줄면서 3, 4단계로 체질이 바뀔 수 있다. 특히 60대 이후에 3, 4단계가 급격히 늘어난다. 마른 비만 유형 또한 3, 4단계에 해당한다.
김 교수는 “3, 4단계일 때는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탄수화물을 제한할 경우 대부분 근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60대 초반의 여성 이옥임(가명) 씨는 파킨슨병 초기 환자다. 소화 불량으로 인해 음식 섭취량이 크게 줄었다. 특히 밥의 양이 줄었다. 극도의 탄수화물 제한 식이요법인 셈인데, 결과는 심각했다. 기력이 크게 떨어져 움직이기도 어려웠고, 근육 손실도 빨라졌다.
김 교수는 가장 먼저 영양 섭취량을 늘릴 것을 권했다.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가족들의 질문에 김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탄수화물을 넉넉히 공급해 줘야 운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백질을 과잉 공급하면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독성 물질로 쌓일 수도 있다. 이런 점 때문에 김 교수는 60대 이후 환자들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섭취의 비율을 4 대 4 대 2로 할 것을 주문했다.
○ “당뇨병 환자도 탄수화물 너무 줄이면 안돼”
70대의 강석진(가명) 씨는 당뇨병 환자다. 의사는 운동량을 늘리라고 했지만 강 씨는 거의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혈당을 관리하겠다며 탄수화물 섭취량을 크게 줄였다.
김 교수가 강 씨의 체질을 검사해 보니 3단계였다. 김 교수는 “이런 체질일 때 운동도 안 하고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면 부작용이 커진다”고 말했다. 에너지원인 탄수화물 공급량이 줄어드니 우선 피곤해진다. 처음에는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꺼내 쓰다가 나중에는 근육의 단백질까지 써 버린다. 그 결과 근 손실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혈당도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조절하기 어려워진다.
김 교수는 이 경우에도 탄수화물 섭취량을 늘리는 처방을 내렸다. 우선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한 뒤 유산소 운동을 병행하도록 했다. 유산소 운동을 하면 인슐린의 기능이 좋아져 근육을 포함해 탄수화물이 필요한 적재적소에 잘 공급된다.
당뇨병 환자가 이처럼 탄수화물을 충분히 먹어도 괜찮을까. 김 교수는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 당뇨병이 생기거나 악화되는 게 아니다”라며 “그 탄수화물이 적재적소에 가지 못해 혈액에 남아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탄수화물이 무조건 혈당을 올린다는 생각도 틀렸다. 이런 오해 때문에 탄수화물 제한→에너지 부족→근육 감소→만성 질환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양질의 탄수화물을 골라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약을 꾸준히 복용해 인슐린 기능을 향상시키는 게 최선의 치료”라고 말했다.
나는 ‘지방대사’ ‘근육대사’? 무조건적 절식보다 체질 파악이 먼저
탄수화물 섭취 줄여 살 빼려면
다이어트를 할 때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김 교수는 “운동량이 많은 사람들에겐 이런 식이요법이 괜찮다. 하지만 운동량이 매우 적은 사람에게는 이런 식이요법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40, 50대의 중년 세대부터는 자신의 체질을 먼저 알고 식이요법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일 때 어떤 사람은 지방, 어떤 사람은 근육의 글리코겐을 1차 보조 에너지원으로 가져다 쓴다. ‘지방 대사’ 체질과 ‘근육 대사’ 체질이 있는 셈이다. 이 체질은 정밀 검사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평상시에 운동을 많이 했을 때 피로감을 얼마나 느끼는지 체크한다. 피로감이 심하다면 대체로 지방 대사보다는 근육 대사를 더 많이 하는 유형일 확률이 높다. 이 경우에는 탄수화물 섭취량을 극도로 줄여서는 안 된다. 반대로 피로감이 별로 없다면 충분히 지방을 활용하는 유형이기 때문에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여도 괜찮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장기간 탄수화물을 제한하면 결국에는 근육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하는 게 좋다.
둘째, 6개월마다 인바디 측정을 통해 체성분 변화를 체크한다. 만약 근육량이 그대로거나 다소 늘었다면 어느 정도 지방 대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해도 큰 문제가 없다. 반대로 근육량이 줄었다면 근육에서 에너지를 꺼내 쓰는 유형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 줄일수록 지방은 안 줄어들고 근 손실만 커질 수 있다.
셋째, 양손으로 허벅지 둘레를 측정한다. 양손으로 허벅지를 감쌀 수 있다면 근육량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수화물 섭취량을 극도로 줄이면 근 손실이 올 수 있다. 탄수화물을 섭취하면서 운동을 병행하는 게 좋다.
넷째, 체질과 관계없이 대체로 40, 50대라면 균형감 있는 식사가 중요하다. 김 교수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4 대 3 대 3 비율로 섭취할 것을 권했다. 물론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는 양질의 탄수화물이 좋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