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받은메일함: Steve Jobs(스티브 잡스)
2010년 5월 어느 날, 미국 자동차 스타트업 ‘브이-비히클’의 디자이너인 브라이언 톰슨은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제목은 ‘Steve Jobs’였다. 당시 브이-비히클은 작고 가벼운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는데, 비공식 고문을 맡고 있던 잡스가 만나자고 연락해온 것.
톰슨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외곽에 있는 잡스의 집을 찾았다. 영국 가디언은 그곳을 학교 선생님 스타일의 수수한 집이라고 묘사했다. 마른 체형에 청바지를 입은 잡스와 톰슨이 악수하는 동안 잡스의 아들은 “아이폰 시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있었다. 둘은 브이-비히클 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존 강철보다 가벼운 차체, 크림색과 흰색 해치백, 합성수지와 목재 펄프의 합성물로 만들어진 대시보드 등.
잡스가 “영혼이 있다”고 극찬한 브이-비히클 사업은 결국 실패했다. 회사는 이름이 바꿨다가, 다른 기업에 넘어갔다. 1년 뒤 애플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났다. 2016년 6월 가디언은 ‘스티브 잡스의 시선을 사로잡은 비밀 자동차’라는 글에서 이 같은 내용을 전했다. 당시 소문이 무성했던 ‘애플 자동차에 대한 단서’라는 보충 설명도 달았다.
이후 6년 간 ‘애플카’는 유령처럼 세상을 떠다녔다.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 소식은 꾸준히 전해졌다. 공식 코멘트는 없었지만, ‘익명의 소식통’이 전하는 뉴스는 계속됐다. 더 이상 애플이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식에 놀랄 사람은 없어 보인다. 정보를 유출한 직원을 곧바로 집에 보낼 정도로 보안에 철저한 애플이었지만, 사람들이 애플을 가만두지 않았다. ‘아이폰’으로 모바일 혁신을 이끈 애플이라서 그렇다.
최근 애플이 인재를 영입했다. 미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이 완성차 업체 포드 출신의 베테랑 엔지니어인 데시 우즈카셰비치를 영입했다고 3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포드에서 31년 간 근무한 그는 차량 안전 시스템과 엔지니어링 디자인, 차체 인테리어 엔지니어링 등 자동차 전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가다. 포드 이스케이프와 익스플로러 등의 차량 개발에 참여했고, 전기차도 개발해봤다. 확실히 아이폰을 만들 것 같지는 않다.
애플은 자동차 개발에 과연 진심일까. 자동차는 왜 만들려는 것일까. 과거 휴대전화에서 자판을 없앤 것처럼, 차 바퀴마저 없애버릴까. 여러 단서들을 찾아봤다.
● 프로젝트명: ‘타이탄’
애플의 자동차 개발 소식은 정말 뜬금없는 곳에서 처음 나왔다. 삼성과 애플이 특허소송을 벌이던 2012년에 법정 증인으로 나선 필 쉴러 애플 부사장이 “애플은 아이폰을 선보이기 이전부터 자동차 개발을 논의했다”는 폭탄 발언을 한 것. 그는 “애플 내부에서 카메라, 자동차 등 여러 물건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고 증언했다.
이후 나온 토니 파델 전 애플 부사장의 인터뷰는 더 구체적이다. 그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잡스와 여러 번 자동차 만드는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배터리와 시스템, 모터 등의 기계적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아이폰은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5년 2월 ‘애플, 전기차에서 테슬라에 도전할 준비’라는 글에서 비밀 프로젝트 ‘타이탄’을 공개했다. 애플이 미니밴 스타일의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2014년 승인한 이 프로젝트는 포드 엔지니어 출신의 스티브 자데스키 당시 부사장이 이끌었다. WSJ은 수백 명이라고 했지만, 팀원이 1000명이 넘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팀은 애플에서 누구나 차출할 수 있는 권한도 지녔다.
WSJ은 쿡 CEO가 이전 인터뷰에서 “아무도 모르는 제품이 있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았다”고 언급한 내용도 담았다. 이를 밝혀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나보다.
그냥 전기차가 아니라, 자율주행 전기차였다. 2015년 8월 가디언은 애플이 자율주행차를 만들고 있다는 문서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수백 명의 개발자들이 캘리포니아주의 한 건물에서 비밀리에 이를 개발 중인데,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보안이 철저한 옛 해군 기지로 장소를 옮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가디언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와 혼다도 이곳의 철조망 뒤에서 자율주행차 실험을 진행했다.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웠는지, 애플카에 대한 언급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개발에 정당성까지 부여했다. 제프 윌리엄스 애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15년 한 정보기술(IT) 매체가 주최한 행사에서 애플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자동차는 궁극의 모바일 기기라고 본다.”
● 공개된 비밀, 직원들의 ‘묘지’
2016년 초 애플은 ‘apple.car’, ‘apple.cars’, ‘apple.auto’ 등의 도메인을 등록하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런데, 사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나보다. 1년 뒤 애플이 타이탄 프로젝트 일부를 중단하고, 수십 명의 직원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업을 접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좀 들여다보니 오히려 프로젝트에 힘을 더 실어 주려했던 것 같다. 2016년 7월 애플은 프로젝트의 수장을 스티브 자데스키 부사장에서 스티브 잡스의 왼팔이라 불렸던 밥 맨스필드 수석 부사장으로 바꿨다. 그는 아이폰과 맥북에어, 아이패드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다. 그간 자데스키의 보고는 하드웨어 책임자를 거쳐 쿡 CEO에게 전달됐는데, 맨스필드는 쿡 CEO에게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직접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애플은 자동차 소프트웨어사인 QNX 창립자 겸 전 CEO 댄 다지도 스카웃했다.
중요한 전략적 수정도 있었다. 사업 초기 애플은 자율주행 전기차 전체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차 제조는 협업사를 찾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처음 자체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지만 자율주행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으로 재조정했다”고 했다.
목적지는 정했는데, 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이후 수백 명의 직원이 나가고 들어오고를 반복했다. 타이탄을 책임지던 맨스필드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애플은 2018년 당시 테슬라 개발담당 임원이었던 더그 필드를 영입해 그를 대신하게 했다. 3년 뒤, 더그 필드는 포드 자동차의 첨단 기술 및 임베디스 시스템 최고책임자로 이직해버렸다. 이후 애플워치를 맡던 케빈 린치 부사장이 현재까지 타이탄을 이끌고 있다.
과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 프로젝트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애플을 테슬라 직원들의 ‘묘지’라고 언급했다. 직원 유출을 우려했던 것 같다. 머스크는 한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테슬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애플에서 일하게 된다”고 했다.
다른 이야기지만, 머스크는 2016년(추정) 테슬라를 애플에 헐값으로 매각하려 했는데, 쿡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매각 금액은 600억 달러로 추정된다. 현재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최근 급락해서 8288억 달러 정도다. 당시 자금난을 겪던 머스크는 자동차 산업을 ‘제조업의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여러모로 애플에 대한 감정이 좋을 것 같지는 않다.
● 애플이 왜 자동차에 관심을?
애플카 개발은 제한적인 자율주행만 가능한 모델과 운전자의 조작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동시에 염두에 두고 진행돼 왔다. 그러다가 케빈 린치가 프로젝트를 맡은 이후 완전 자율주행차를 목표로 현재 애플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은 내부적으로 2025년 내 자율주행차 출시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더 늦춰질 수도 있다.
팀쿡 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자율주행은 모든 인공지능(AI) 프로젝트의 어머니와 같다”며 프로젝트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애플의 자율주행 테스트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지붕에 센서가 달린 흰색 렉서스 차량이다. 캘리포니아주 차량국에 따르면 지난해 애플의 시범운행 거리는 1만3000마일(2만1300㎞)이었다. 1위는 구글의 자율주행 계열사 웨이모(230만 마일, 370만㎞)였다. 시범운행 거리는 곧 자율주행 전기차 기술 개발을 위한 데이터 분석량을 상징한다. 구글에 비하면 애플의 테스트 경험은 아직 한참 못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전자 기기를 만들어 온 애플은 왜 ‘차’에 꽂혔을까. 엔진과 브레이크, 변속기 등의 운동으로 백 년을 달려 온 자동차는 최근 몇 년 새 진화했다. 전기 모터와 배터리, 전자 센서, 중앙 시스템 등이 이를 대체했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버전도 업그레이드한다.
자동차가 애플이 제일 잘 하는 ‘전자 기기’(전기차)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웅장한 엔진 소리를, 똑똑한 두뇌가 대신한다.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해졌다. 이제야 “자동차는 궁극의 모바일 기기”라고 했던 제프 윌리엄스 COO의 말이 이해가 간다.
토요타의 벤처캐피털펀드인 토요타AI벤처스의 짐 애들러 이사는 “소프트웨어가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다. 다음 메뉴는 자동차”라고 했다. 미국 컨설팅사 맥킨지의 요하네스 다이히만 자동차 파트너는 “오늘날 가장 복잡한 자동차에는 많게는 200개의 컴퓨터가 달려 있다. 컴퓨터들은 엔진,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것을 제어한다”며 “이는 공급사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데, 자동차 제조사의 능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했다.
● “주유소에서 멈추지 않는 놀라운 경험”
현재 자동차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가 이를 만들었고, 테슬라와 폭스바겐, 다임러는 자체 시스템을 준비 중이다. 애플의 카플레이와 구글의 안드로이드오토도 있다. 포드는 내년부터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판매되는 모든 자동차 모델에 안드로이드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직은 자동차 대시보드의 작은 모니터가 사실상 네비게이션에 그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전기차가 대중화되고 소프트웨어 개발이 진행되면 스마트폰, 테블릿PC처럼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 컴퓨터는 자동차 안에서의 사람들의 활동(데이터)을 수집할 것이다. 언제 될지 모르는 자율주행 시대가 열린다면 영화를 보거나,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개념이 ‘심리스’(Seamless, 끊김 없이 매끄러운)다. 디지털 경험을 끊김 없이 유지한다는 의미다.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과 자주 등장한다. 안방 TV에서 보던 넷플릭스 영화가 주방에 가니 냉장고에 달린 화면에서 곧이어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걸을 때는 스마트폰이나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기에서, 차에 타면 대시보드에 등장할 수 있다. 물 흐르듯 이어서 나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애플도 점점 확장되는 ‘연결성’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쿡은 5년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유소에서 멈추지 않는 것은 놀라운 경험일 것이다.”
● 달리는 플랫폼, ‘애플카’
애플은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제일 먼저 세상에 내놓고 싶을 것이다. 현재는 사람들이 디자인과 가격, 일부 성능을 고려해 자동차를 고르지만, 자율주행 기술이 나오면 초기에는 이를 개발한 회사로 고객이 우르르 몰려갈 가능성이 크다. 애플이 제대로 된 스마트폰을 처음 내놨을 때처럼 말이다.
그 다음에는 후발주자와 격차를 벌리기 위해 생태계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매력적인 아이폰에 빠진 사람들이 IOS에서 허우적대는 모습과 비슷하다. 다만, 스마트폰과 다르게 생명이 걸린 만큼 디자인보다 안전이 더 중요하게 고려될 수도 있겠다.
애플은 이 주도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애플도 한 때는 잔소리를 들었다. WSJ은 2020년 “아이폰이 나온 뒤 10년 간 애플이 한 가장 큰 혁신은 이어폰”이라고 비꼬면서, 성장이 정체됐다고 비판했다. WSJ의 지적처럼 2015년 2338억 달러였던 애플의 연 매출은 2019년(2745억 달러)까지만 해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플은 지난해 3658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올해 1월에는 시가총액이 장중 3조 달러(약 3823조5000억 원)를 찍었다. 삼성전자 가치의 8배 이상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다. 애플의 사업 전략이 빛났다. NYT는 “스마트폰은 냉장고, TV처럼 자주 구매하지 않는 필수품”이라며 “사람들은 예전만큼 자주 새 제품을 구입하지 않자 애플은 추가 용량, 애플리케이션 구독, 헤드폰 등 아이폰을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것들로 돈을 버는 새로운 방법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모바일 생태계를 움켜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향후 모빌리티 플랫폼에서도 애플은 이 같은 전략을 펼칠지 모른다. 사람들이 애플카를 더 이상 바꾸지 않는다면, 연관된 서비스에서 열심히 돈 벌 궁리를 할 것이다. 핸들이나, 차 열쇠를 따로 팔지도 모른다. 모두 다 차가 제품으로 있어야 할 수 있는 비즈니스다.
● 애플과 또 손잡은 폭스콘?
애플의 자율주행 기술이 어느 정도 진척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2025년에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애플의 행보가 심상찮다. 차를 조립, 생산해 줄 파트너를 찾았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이달 초 한 대만 언론은 유명 IT 전문가를 인용해 애플카 진행이 한창 진행 중이며, 애플이 차 조립과 생산을 혼하이그룹에 맡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산하면서 오래 신뢰를 쌓아 온 혼하이그룹 ‘폭스콘’에 차 생산까지 맡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체는 애플카가 고품질 금속 소재 티타늄 합금을 사용하며, 아이폰으로 열쇠 없이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을 가질 것이라는 점도 소개했다. 애플은 BMW, 제네시스, 기아 등 차량 모델에서 이 자동차키 기능을 구현하고 있다.
이미 폭스콘은 전기차를 만들고 있다. 전기차 브랜드 ‘폭스트론’을 발표하고 모델E(전기 세단), 모델C(전기 SUV), 모델T(전기버스) 등을 공개했다. 애플카 생산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외에도 애플은 일본 차량용 에어컨 부품 제조사인 산덴과 비밀리에 논의를 진행했는데, 당시 회사가 애플카 설계도까지 공유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애플은 지난해 차 조립을 위해 현대차그룹과 닛산,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연달아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버트 디스 폭스바겐 CEO는 당시 독일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린 애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자동차 산업은 한순간에 정복할 수 있는 일반적 기술 분야가 아니다”라고 했다. 현지에서는 이를 폭스바겐이 애플의 협력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애플은 차 설계부터 디자인과 마케팅, 판매까지 전부 애플이 주도하고 차량 조립만 완성차 업체에 맡기는 생산 방식을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선 ‘사실상 하도급업체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꾸준히 나왔다.
● “‘시리’야 동해 바다로 부탁해”
애플카에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특허들도 속속 공개되고 있다. 애플은 최근 자동차 선루프 특허를 미 특허청에 등록했다. 특허대로라면 자동차 선루프에 가변 불투명 유리를 탑재해 운전자가 선루프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선루프가 차량 윗면과 측면 창 전체가 연결돼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위와 옆 창문 등 개방 순서를 통제할 수 있다.
손동작만으로 주차와 차선 변경해주는 기능도 있다. 지난해 2월 ‘제스처 기반 자율주행차’라는 이름으로 출원된 특허다. 직진을 할지 옆 차선으로 옮길지 손짓만으로 차를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애플카 전면 유리창에는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특허청에 ‘구역 식별 및 표시 시스템’이라는 특허를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차량 전면에 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알려진 ‘시리’(Siri) 명령 기능은 더 영화 같다. 해외 자동차 매체 카스쿱스에 따르면 애플은 ‘목적을 가진 신호를 이용, 목적지 주변 자율주행차 안내’라는 특허를 냈다. 음성인식 시스템 시리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자율주행차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도착하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섬세한 위치까지 조정한다. 자율주행차 탑승자가 말(시리)이나 손(터치스크린)으로 원하는 특정한 주차장소, 심지어 목적지에 도착해 내리고 싶은 문까지 선택할 수 있다. 특허는 아직 신청 단계에 있다.
애플은 이 같은 기능들을 한 번에 제어할 수 있는 중앙집중형 운용체계(OS)도 개발 중이다. 스마트폰처럼 차의 모든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여러 전자제어장치(ECU)를 하나의 두뇌 역할을 하는 AP에서 통합적으로 관리(DCU)하게 된다.
현재 글로벌 자율주행차 중 통합 관리를 쓰는 것은 테슬라가 유일하다. 애플은 자율주행차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직접 설계하고, 한국 협력사에게 후공정 중 일부를 맡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중앙집중형 설계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로 복잡한 자율주행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 ‘아이폰’ 만든 애플이라는 기대감
그동안 애플은 프로세서와 배터리, 카메라, 센서, 디스플레이 개발에 투자해왔다. 모두 자율주행전기차의 핵심기술들이다. 아이폰 최신 기종에는 라이다(LiDAR) 센서가 탑재됐는데, 레이저를 쏴서 대상에 부딪혀 돌아온 데이터를 바탕으로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공간을 지도로 구성하고 개체를 식별하는 기술로 자율주행에 필수적이다.
기술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자본력이다. 인재를 끌어 오거나 외부 기술을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애플의 현금성 자산은 2026억 달러(약 261조 원)에 달한다. 애덤 조나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자본조달력과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고 유지할 능력, 하드웨어 디자인 능력 등 애플은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성공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췄다”고 평가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애플 특유의 ‘감성’이다. ‘사용하기 편하다’, ‘예쁘다’ 등으로 단순화 시켜서 말하곤 하지만, 여기에는 애플의 완벽성이 녹아있다.
2007년 한 일화를 소개한다. 아이폰 출시를 한 달 앞두고 시제품을 써본 스티브 잡스가 개발자들에게 불 같이 화를 냈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열쇠와 함께 꺼낸 아이폰의 플라스틱 화면에 흠집이 선명하게 난 것. 잡스는 “나는 흠집 나는 제품은 안 판다”며 6주 안에 완벽하게 유리 화면으로 설계를 바꿀 것을 지시했다. 터치스크린을 이용할 때의 미묘한 편의성과 아이폰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의 느낌, IOS의 생태계 등은 이 같은 노력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물론, 이는 사용자마다 다르게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역시 애플이 만들면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간간히 들리는 신선한 소식은 우리를 더 설레게 만든다.
타이탄 프로젝트 초기, 직원들은 삭막한 도로 대신에 탑승자끼리 서로 마주보는 라운지 형태의 내부 인테리어부터 떠올렸다고 한다. 외신에 따르면 프로젝트의 한 팀은 측면 이동을 더 잘할 수 있는 공 모양의 구형(球形) 형태로 자동차 바퀴를 재발명하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애플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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