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폭락, 달의 여신이 몰락했다…루나 사태와 블록체인[김성모 기자의 신비월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2일 08시 00분


글로벌 신(新) 비즈니스 가이드(14)


‘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전 세계 뒤흔든 ‘K코인’

최근 한국 출신 엔지니어가 2018년 개발한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코인) ‘테라’가 전 세계를 뒤집어 놨다. 12일 루나가 하루 사이에 97%, 일주일새 99.99%가 폭락한 것이다. 지난달 119달러까지 치솟아(시가총액 약 50조 원) 글로벌 가상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에 들었던 루나는 18일 현재 0.0001~0.0002달러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사실상 휴짓조각이 된 셈이다.

블록체인 세상과 루나의 활약을 꿈꿨던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 영국 가디언은 현재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빨리 부자가 되는 계획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수천 명의 투자자들이 이제 거의 모든 돈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루나 사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블록체인의 작동 방식을 간단히 언급한다. 비트코인은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2008년에 선보인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디지털자산이다. 비트코인은 국가 화폐를 발행, 관리하는 중앙은행을 대신해 이용자들이 전 세계 비트코인 전체 거래를 약 10분에 한 번씩 기록한다. 이 때문에 ‘탈중앙화’(퍼블릭 블록체인)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론 기록은 손으로 쓰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한다.

거래 기록이 제대로 됐는지 입증하고, 가장 먼저 컴퓨터로 복잡한 수학 연산을 푼 사람에게는 보상으로 비트코인을 지급한다. 이를 채굴이라 부른다.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 대신 일을 하는 만큼 무언가를 지불해줘야 시스템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전기세도 만만찮다. 이 10분마다 생기는 거래 ‘기록’(블록)을 ‘체인’처럼 연결하는 방식이 블록체인이다.

이는 중앙 서버(프라이빗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고 기록을 공개해, 투명성이 보장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만큼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보상을 누구에게 해줄 것인가(누구 기록이 정확한가)를 판가름하는데 오래 걸린다.

합의 과정과 보상 방법, 블록을 연결하는 방식 등에서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이더리움과 리플, 이오스 같은 가상화폐들이다. 이들은 아이폰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처럼 독립적인 생태계(메인넷)를 만들고 싶어 한다. 실제로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여러 블록체인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사업 모델들이 생겨났다.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테라와 루나, 그리고 알고리즘
‘테라’ 역시 그랬다.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31)가 만든 테라는 ‘금융 서비스’에 특화된 블록체인으로 알려졌다. 그는 미 스탠퍼드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실리콘밸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엔지니어로 일한 바 있다.

그동안 가상화폐는 하루에 수십 %씩 오르내리는 변동성이 취약점으로 꼽혀왔다. 테라는 달러 등 실물자산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코인 방식을 활용해 가격 변동성을 줄인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가격이 안정적인만큼 금융 분야에서 가능성을 평가 받았다. 시세가 급변하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계좌 이체를 했는데, 보낼 때와 받을 때 금액이 다르다고 생각해보자.

루나는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의 안정성을 위해 나온 가상화폐다. 여기서부터 개념이 좀 어렵다. 테라폼랩스는 테더(USDT) 등 다른 스테이블 코인처럼 1UST의 가격을 1달러로 고정시켰다. 코인의 발행량이나 시장 상황에 따라 가치가 급변하는 것을 실물 화폐의 가치와 연동시켜서 막은 것이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의 가격을 고정하는 것을 ‘페깅’(pegging)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못을 박듯’(peg) 법정화폐와 가격을 연동하는 것이다.

보통의 스테이블코인은 시중 은행처럼 ‘지급 준비금’을 마련해 안전성을 높인다. 스테이블코인을 1개 새로 발행할 때마다 1달러씩 은행에 맡기는 것이다. 예금주 격인 스테이블코인 보유자가 언제든지 코인을 달러로 바꿀 수 있도록 현금을 마련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권 대표는 ‘알고리즘 방식’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테라의 가치를 또 다른 코인인 루나에 연동시킨 것이다.

테라가 1달러보다 낮아지면, 테라를 루나 1달러어치로 바꿔준다. 테라 보유자는 차익을 얻기 위해 교환에 참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테라의 유통량이 줄어들어 가격이 올라가는 효과가 발생한다. 테라가 1달러보다 높을 땐, 루나 1달러어치를 테라와 바꿔준다. 테라의 유통량이 늘어나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이 같은 거래는 실제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코인의 소각과 발행을 통해 이뤄진다. 희소성(발행량)을 활용해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아무튼 복잡하다. 다 잊고, ‘1테라=1달러’를 유지하기 위해 코인들을 발행하거나 소각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만 기억하자.

테라 생태계, 어떻게 작동하나. 동아일보DB
테라 생태계, 어떻게 작동하나. 동아일보DB

● 풍차돌리기와 폰지사기
루나 사태 초기만 해도 시장 탓인 줄 알았다.

이달 9일(현지 시간) 1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테라가 69센트로 하락하자 WSJ은 “자산 상승 시장에서 상황을 질서 있게 유지시킨 ‘시소 메커니즘’은 거래자가 두 코인을 모두 판매하는 하락 시장에서는 약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했다. 최근 몇 주간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긴축 정책을 본격화하면서 주식·가상화폐 등 전 세계 자산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러한 상황이 알고리즘을 위태롭게 몰아가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테라의 가격을 1달러로 다시 올리기 위해,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팔고 테라를 사들였지만 매물이 쏟아졌다. 회사는 루나를 대규모로 발행해 자금을 다시 조달하려 했지만, 신뢰를 잃은 투자자들은 루나를 시장에 더 내던졌다. 그러면서 테라까지 다시 급락했다.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져든 것이다.

테라의 가격이 안정적이지 못했던 것은 단순히 시장 탓만이 아니었다. 테라 생태계서 작동되는 비즈니스 모델이 문제였다.

테라가 등장한 이후 플랫폼에 하나 둘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애플이나 테슬라 같은 미국 상장 주식의 합성자산을 코인으로 거래할 수 있는 디파이(탈중앙화된 금융시스템) 서비스(프로토콜) ‘미러’가 대표적이다.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것을 블록체인으로 사고팔 수 있게 한 것이다. 증권사에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똑같은 효과(수익)를 거두는 게 장점이다.

테라 생태계의 핵심 디앱인 ‘앵커프로토콜’이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꼽힌다. 디앱은 ‘블록체인판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앵커프로토콜에 테라를 맡기면 연 20%에 가까운 고정 이자를 준다. 테라가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은행에서 20%의 이자를 받는 것과 똑같은 셈이다. ‘빨리 부자가 되는 계획’을 발견한 수천 명이 몰렸다. 업계에 따르면 예치 금액만 수십조 원에 이르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회사는 예치 받은 테라를 대출해줬다. 투자자가 루나를 담보로 맡기면 시가의 60%까지 테라를 빌려줬다. 회사는 대출 이자를 받았는데, 예금 금리인 연 20%에 못 미쳐 역마진이 발생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더 큰 문제는 여러 투자자들이 대출받은 테라를 다시 앵커프로토콜에 맡겼다는 점이다. 20% 이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대출과 예치가 반복됐다. 투자자들은 이를 ‘풍차돌리기’라고 불렀다.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그는 5일 한 해외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기업이 향후 5년간 
얼마나 남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95%는 죽을(몰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야후 파이낸스 유튜브 화면 캡쳐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그는 5일 한 해외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 기업이 향후 5년간 얼마나 남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95%는 죽을(몰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야후 파이낸스 유튜브 화면 캡쳐

● 코인판 뱅크런·리먼 사태

‘모래성’은 루나 가격이 하락하면서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담보 가치가 줄면서 대출금은 줄어드는데 예치금은 계속 늘어났다. 이자로 줄 돈이 서서히 부족해지게 된 것이다. 7억 달러를 웃돌던 이자준비금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테라의 가치가 1달러를 깨지는 순간이었다. 신뢰를 잃은 예치금이 앵커프로토콜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발생한 것이다.

WSJ은 12일 “지난 주말까지 140억 달러(약 17조7400억 원) 이상의 테라가 예치됐다. 그런데 테라가 1달러 아래로 내려가면서 투자자들이 테라를 꺼내서 팔기 시작했다”며 “매도는 또 다른 매도를 일으키는 계단식 효과를 일으켰고, 정점에 치달았다”고 했다.

CNN은 이번 사건을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의 부실과 파생상품으로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견줬다. 부실 상품이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들었다는 점에서 그럴 만도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다른 스테이블 코인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면서 리먼 사태와 비교하는 것은 과장됐다는 반박도 있다.

‘작전 세력’의 공격이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큰 손’이 비트코인과 루나, 테라 등을 잔뜩 사놓고, 비트코인·루나의 가격이 떨어지는 선물가격 하락에 베팅해 놨다가, 전반적인 자산 시장이 안 좋은 틈을 타 일시에 퍼부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테라의 가격을 방어(1달러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다.

회사가 테라 가격을 높이기 위해 자금마련용으로 보유하던 비트코인이나 루나를 팔면, 비트코인의 실물 가격이 떨어져 하락에 베팅해 놨던 선물이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일리가 있지만 루나·테라의 취약한 알고리즘과 앵커프로토콜의 문제점까지 설명하진 못한다.

루나 가격 및 거래량 추이. 동아일보DB
루나 가격 및 거래량 추이. 동아일보DB

● 비트코인과 직접민주주의

테라폼랩스도 아예 손을 놨던 것은 아니다. 올해 초 폰지 사기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회사는 안전망을 확보하겠다며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라는 재단을 세우고 3월까지 3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8만394개)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테라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결국 막지는 못했다.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는 소셜미디어에서 “8일 비트코인 5만2189개를 팔았고, 12일에도 가격을 지키기 위해 3만3206개를 매각했지만 소용없었다”며 “남은 가상화폐는 피해자 보상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가상화폐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먼저 시스템 구성(알고리즘) 등이 취약할 경우, 참여자들이 한 순 간에 많은 돈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하나는 가상화폐에서 다수의 지분을 가진 발행자나 초기 참여자들이 채굴의 합의 과정이나 시스템 개선 과정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친다면 과연 ‘탈중앙화’라는 근본 가치에 맞아떨어지느냐는 질문이다. 테라처럼 위급한 상태에서라도 말이다.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빠른 대처를 위해서 ‘조정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다수의 투자자들은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생태계를 이끈다고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다수의 가상화폐를 보유한 개발자나, 초기 투자자의 영향력이 큰 것이 현실이다. ‘직접민주주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의제’였던 셈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보인다.

블록체인을 세상에 알린 ‘비트코인’의 속성은 직접민주주의나 무정부주의에 가깝다. 암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이비드 차움은 1982년 논문을 통해 ‘은닉 서명’이라는 개념을 알렸다. 온라인에서도 현금처럼 추적이 불가능한 화폐, ‘e-캐시’를 구현한 것이다. 논문 제목이 ‘추적당하지 않는 결제시스템’이다. 학계에서는 비트코인이 e-캐시 이후 등장한 다양한 기술들을 절묘하게 조합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는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적어도 경영학 전공자가 아니겠느냐”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시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8년 비트코인은 리먼 사태 이후 금융기관의 불신을 기반으로 등장했다. 나카모토는 금융기관과 일반 사용자 사이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은행에서 금융상품을 살 때 금리 등 제한적인 정보만 듣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정보 비대칭성이 리먼 사태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애초에 정부나 금융기관 같은 ‘빅 브라더’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탄생했다. 루나 사태로 가상화폐 시장에서 리먼 사태가 언급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디선가 나카모토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면 현재의 가상화폐 거래소들도 탐탁치 않게 생각할 것 같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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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봉이 김선달
주기적으로 루나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가상화폐 추종자 못지않게 ‘불신론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가상화폐는 대동강물을 공짜로 끌어다 팔던 ‘봉이 김선달’과 같다.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불던 2017년에는 그런 측면이 강했다. ‘사기’라는 말이 정말 많았다.

당시 한국 코인 시장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2017년 중반 100만 명 수준이던 가상화폐 투자자는 반년 만에 300만 명까지 늘었다. 주요 국가들이 가상자산공개(ICO) 등에 규제에 나서자 중국 등 해외 대규모 자금들이 한국에 몰렸다.

이 때문에 한국의 가상화폐 가격이 해외 시세보다 더 높은 ‘김치 프리미엄’이 생겨났다. 국내 가상화폐 가격이 국제 시세를 크게 웃돌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1500만 원대에 거래되는 1비트코인의 한국 가격은 2300만 원대에 형성됐다. 국내 상황에 따라 전 세계 비트코인 가격이 요동쳤다. ‘가즈아(Gazua) 열풍’이 해외로 수출된 시기였다.

그만큼 부작용이 많았다. 이 차익을 노리기 위해 원정투기에 나선 이들이 꽤 있었다. 이들은 많게는 수억 원의 현금을 들고 가상화폐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태국과 홍콩으로 간 뒤, 현지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사들였다. 이를 자신의 코인 지갑으로 전송하고, 한국 거래소에서 팔아 차익을 얻었다. 결국 관세청이 조사에 나섰다.

더 우려스러웠던 것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새로 생겨나는 신규 가상화폐들이었다. 나름 괜찮아 보이는 사업 아이디어만 있으면 ‘백서’(일종의 가상화폐 기술·사업 설명서)를 만들고 코인을 찍어냈다. 백서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투자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보였다. “어디 거래소에 상장된다”, “어느 대기업 서비스에 곧 쓰인다” 등의 소문만 무성했다. 이를 믿고 돈을 넣은 투자자들에게는 결국 ‘가상의 휴짓조각’만 남겨졌다.

당시 기자가 가상화폐를 담당하면서 여러 취재를 했는데, 중국 등에서 관련 사업을 하겠다며 한국을 찾은 이들이 꽤 있었다. 이제는 잘 알려져 있지만, 가상화폐는 엄밀히 따져서 ‘투자’가 아니라 ‘기부’에 가깝다. 백서를 보면 대부분의 코인이 그렇게 쓰여 있다. 개발사나 발행사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백서 자체를 믿을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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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록체인판 일론 머스크

비트코인을 전기차, 우주여행 등 세상을 바꾸는 ‘일론 머스크’처럼 느끼는 이들도 분명 있다. (일론 머스크도 가상화폐 지지자 중 한 명이다.) 블록체인이 현실 세계의 거래비용 등 비효율을 줄이면서도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믿음이다.

가상화폐 사용의 이상적인 모습은 이런 것이다. 한 온라인 플랫폼에 ‘신비코인’이라는 것을 만들고, 서비스 이용에 쓸 수 있게 만들었다고 치자. 물건을 사고팔 때 현금처럼 쓸 수 있고, 고객이 댓글을 달거나 후기를 남기는 등 열심히 활동하면 소정의 코인을 주기로 약속한다. 수수료는 소액만 채굴자에게 지불한다. 플랫폼 이용자가 늘어나면, 코인 사용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신비코인의 가격도 높아지게 된다.

결국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단순히 활동하는 사람에게도 이득이 된다. 플랫폼을 유지 관리하는 이들에게는 채굴 보상이 떨어지는데, 채굴로 받은 신비코인의 시세가 올라가는 것은 덤이 된다. 모두가 ‘윈윈’하는 세상이다. 쉽게 말해, 애플이나 아마존과 같은 회사들이 가져가는 이윤(수수료 등)을 사용자들에게 분배하는 개념이다. 블록에서 거래 등 서비스 이용 기록들이 공유되면서 사업의 투명성까지 보장된다.

이 같은 모델은 글로벌 사업에서 특히 강점을 지닌다. 국가 별로 돈이나 재화가 넘나들면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화 시켜서 설명했지만, 이외에도 블록체인의 쓰임은 곳곳에서 늘고 있다. 보안시스템이나, 공급망 관리(SCM)에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처럼 가상에서의 활동이 많아질수록 활용도가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앞으로는 가상 공간에서 생성된 각종 저작물의 소유권을 주고받는 일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기록하고 증명하는데 대체불가토큰(NFT) 등이 쓰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의 ‘시세’보다는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더욱 복잡한 상품·서비스가 나올 것이고, 일반 사람들이 이를 분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상화폐 규제는 정부도 조심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경험이 있다. 2018년 1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했다. 2018년 한국발(發) 전 세계 가상화폐 폭락의 배경이 됐고, 사람들은 이를 ‘박상기의 난’이라고 명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는 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18일(현지 시간) 가상화폐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구분 과정부터 서둘러야한다고 조언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테이블코인은 무엇인지, 자산은 어디에 있고 누가 이를 통제하는지 공개해야 한다. 가상화폐 거래소에도 기준을 충족한 자산들을 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면서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운영되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에게 어떤 가상화폐가 자신들의 규제 기준을 충족시켰는지를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핵심은 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개인 투자자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코인) 사기에 쉽게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봉이 김선달과 일론 머스크를 구분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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