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디지털치료연구센터장
코로나로 고립감-우울감 심화… 시공간 초월한 연결성 필요해져
정보통신기기 통한 치료법 도입
이어령 교수가 제안한 ‘디지로그’… 사이버 문화에 공동체 정서 더해
정신질환 치료에 활용해 볼만
1895년 11월 8일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 박사가 발견한 X선은 폐와 심장의 질환, 골절 등을 정확히 진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제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양전자단층촬영(PET),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영상학 발전으로 보다 정밀한 진단과 치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뢴트겐 박사가 X선을 발견한 그해 오스트리아의 의사 지크문트 프로이트 박사는 ‘히스테리 연구’에서 ‘안나 오’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 인간의 행동과 정신질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정신의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후 100년 동안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의 다양성과 진단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뢴트겐 이후 영상학의 발전과 같은 혁신적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웠다. 대면상담 위주의 치료가 주력이고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기기도 발전이 많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정신의학은 이전에 없던 큰 변화를 맞이했다.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성인은 실직의 위험을 느끼고, 개인사업자는 사업이 어려웠다. 위기 상황은 정신질환을 악화시키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암담하게 느끼게 했다. 이로 인해 우울증, 공황장애, 불면증 등의 질환이 크게 증가했다. 모바일, 인터넷 등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이 없었으면 고립감과 우울감은 더 심했을 것이다. 모바일, 인터넷은 사람을 연결시키고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고, 시공간을 초월해 이야기를 나누어 고립감의 극복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서 정신의학 분야에서 ‘가상현실’, ‘메타버스’, ‘디지털 치료제’ 등의 혁신적인 치료 방법의 도입과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로이트가 생각한 무의식과 정신질환을 첨단 IT 기기를 통해 분석하고 이를 스스로 파악해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와 함께 상담하는 시스템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민 4명 중 1명은 평생 하나 이상의 정신질환을 경험하며 20명 중 1명은 우울증을 경험했다. 하지만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한 비율은 22.2%로 미국, 캐나다 등 서구의 절반밖에 되지 못한다. 이용하지 않은 이유를 분석하면 ‘나는 정신질환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전체의 81%,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비율이 75.6%였다. 결국 자신의 정신질환에 대한 파악이 잘 안되고 있고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은 신체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할 때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정신질환이 나타날 때 매우 예민해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정보통신기기를 통한 새로운 치료법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도움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고 이어령 교수는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디지로그는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첨단기술을 의미하는 용어다. 디지털의 사이버 문화와 아날로그의 공동체 정서를 이어주는 디지로그 파워가 새로운 희망의 키워드로 등장한다고 했다.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은 이 디지로그의 방향성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결성을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교수의 말처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정’의 문화와 IT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새로운 가상현실, 메타버스를 통해서 정신질환의 치료에 이용될 수 있도록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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