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반복되는 작업은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범인이다. 많은 근로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하는 일은 엑셀 작업처럼 큰 의미가 없는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 반복 작업에 들어가는 공수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국은 많이 일하지만 노동 효율성은 떨어지는 국가다. 2020년 기준, 한국 근로자는 연평균 1908시간 일했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인 1687시간보다 200시간 이상 높으며, 이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는 수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OECD 조사대상 36개국 중 30위였다.
RPA는 웹사이트 로그인, 데이터 추출과 입력, 이메일 내용에 기초한 기본 업무 등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로봇을 말한다. 노동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RPA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도 낮은 노동 생산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전망에 많은 기업이 RPA 도입에 나섰다. 다만, RPA를 도입한 국내 기업 사이에선 최근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한다.
“RPA를 통해서 연간 1만 시간을 절약했다. 그런데, 그다음은 뭐지?”
업계 관계자의 대답이다.
“’노동시간을 이 정도로 줄일 수 있다’ 이건 과거의 접근 방식이다. ROI(투자대비효과)가 분석돼야 추진 동력이 생기니까, 초창기엔 ‘사람이 하는 10시간의 일 중 2시간을 자동화했고, 이를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1만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접근 방식으로 시장을 형성했다. 하지만, 시간을 줄인다고만 접근하면 인력 절감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 있고, 다음 과제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생기는 시점이 온다”
RPA를 도입한 기업들의 상황이 정말 ‘이제 더는 자동화할 업무가 없다’로 정리될 수 있는 걸까? RPA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한국은 RPA가 전사적으로 도입이 잘 안되는 편”이라고 말한다. 기업에서 찾지 못한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들은 분명히 내부에 산재해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RPA 선도기업인 유아이패스는 ‘시민개발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RPA를 단순히 인사관리나 회계 등의 백오피스 업무 자동화에만 국한하는 게 아니라, 시민개발자를 장려해야 개인 업무들까지 자동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RPA 시장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유아이패스코리아의 이봉선 전무를 만났다.
“RPA는 단순 업무 자동화 전용 솔루션 아니다”.. RPA 기술은 점점 고도화되는 상황
유아이패스는 글로벌 RPA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다. IDC에 따르면, 유아이패스는 2020년 RPA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위(37.4%)를 차지했다. 유아이패스코리아의 이봉선 전무는 “RPA는 단순 반복 작업 자동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AI가 접목되면서 더 많은 범위의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AI를 활용한 지능형 RPA는 문서를 스캔한 뒤 OCR(광학문자인식)로 내용을 인식해 데이터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추출하는 것은 기존엔 사람의 업무였지만, AI를 결합한 RPA가 이를 자동화한 것이다.
다른 사례는 이메일을 분류한 뒤 회사 내 특정인에게 발송하는 클래시피케이션 (Classification)을 자동화한 것이다. 고객들은 질문과 불만 내용을 보통 회사 계정의 메일로 보내는데, 보험회사 같은 경우엔 보상 관련 부서에서 이런 메일을 분류하고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프로세스가 마련돼 있다. 사람이 메일을 읽고 사건의 종류를 분류한 뒤,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능형 RPA는 인간의 일상어를 이해하는 자연어처리 기술을 통해 메일을 읽고 성격에 따라 분류한 뒤 담당자에게 자동으로 메일을 발송한다. 또한, 외부 데이터를 추출한 뒤 미리 개발한 AI 모델로 분석하고, 이후 생성된 보고서를 담당자에게 전달하는 일도 RPA를 통해 자동화할 수 있다.
IT시스템에 발생한 문제를 감지해 IT운영팀에 보고하는 작업도 RPA가 대신할 수 있다. 많은 기업엔 IT운영팀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각종 네트워크 장비 등의 로그를 모니터링하고 상태를 점검하는 작업을 한다. 문제는 확인해야 할 장비와 데이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AI를 통해서 특정 로그를 해석하는 모델을 만든 뒤 이를 RPA와 연동하면, 문제 발견 작업이 자동화된다. 특정 로그의 코드가 심각한 오류라는 걸 AI가 인식할 수만 있다면, RPA가 장비를 모니터링하면서 해당 로그를 발견했을 때 운영팀에게 보고할 수 있게 된다.
유아이패스는 서비스나우를 비롯해 MS, 구글, SAP 등의 솔루션 벤더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솔루션 커넥터를 개발했다. 커넥터를 통하면 각각의 솔루션 간 데이터 연동이 가능하다. 다양한 IT솔루션에서 나온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서비스나우 ITSM의 데이터를 연동하면, 특정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RPA가 보다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HR 시스템인 워크데이를 통해선 휴가신청 등의 과정도 자동화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HR 시스템에서 휴가신청을 하면, RPA가 이를 대신 처리하는 것이다. 이 전무는 “기존의 HTML 소스코드로 화면 인터페이스를 찾는 방식은 화면의 해상도와 크기가 바뀌면 RPA 스크립트도 다시 작성해야 했다. 커넥터 데이터 연동 방식은 화면이 변해도 데이터를 커넥터로 끌어오기 때문에, 인터페이스 변화가 생겨도 평소처럼 작동한다”고 말했다.
이봉선 전무는 “예전엔 RPA의 역할이 화면을 보고 내용을 그대로 입력하는 것 정도였다면, 이제 좀 더 고난도의 작업도 가능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 사이클이 짧으면 RPA가 단독으로 일을 처리해도 문제가 발생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사이클이 길어지면 일이 올바르게 처리됐는지 확인하는 중간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검증 업무는 대부분 사람이 맡는다. 지금까지는 ‘RPA가 처리-사람이 검증-그 뒤의 일을 RPA가 처리’라는 프로세스를 구현하는 게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다.
이 전무는 “RPA가 초반 작업을 끝내고 사람이 검증 혹은 승인을 한 뒤, RPA가 나머지 일을 처리하려면 그때까지의 데이터가 저장되고 다시 활용되는 기술이 필요하다. 쉬운 기술이 아니고 유아이패스의 강점인 부분”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같은 부서의 팀장에게 보고서 전달하는 과정을 RPA로 자동화했을 때, 팀장은 스마트폰으로 보고서 내용을 보고 이를 승인할 수 있다. 승인과정이 떨어지면 RPA가 다시 보고서를 전산 시스템에 저장하는 이러한 긴 사이클의 업무도 유아이패스를 통해선 가능하다.
유아이패스의 또 다른 강점은 시민개발자를 위한 ‘스튜디오X’라는 툴이다. 스튜디오X를 통해선 간단한 코드 조합으로도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개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현업 종사자들이 간단한 소스코드를 사용하는 ‘로코드’로 프로그래밍을 한다고 보면 된다. 현업에서 일을 하면 자동화가 필요하지만 회사의 코어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IT운영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개발자는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IT역량이 없는 직원도 IT역량을 갖춘 직원이 만들어 놓은 기능을 공유하는 프로그램 라이브러리를 이용할 수 있다.
이 전무는 “RPA는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일반 B2C(소비자시장) 기업부터 항공사, 컨설팅 기업, 금융, 제조, 건설, 에너지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RPA를 쓴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도 RPA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같은 업무라 해도 대기업에선 10명이 담당하고 중소기업은 2명 정도가 일을 맡는 게 일반적인 상황에서, 중소기업에게 RPA의 효용성이 더 클 수도 있다. 규모와 관계없이 디지털전환을 나선 기업이 많기 때문에, IT시스템을 운영하는 반복 업무를 RPA로 자동화하는 것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클라우드 퍼스트’ 전략 취한 유아이패스, “앞으로의 자동화는 더욱 편리해질 것”
유아이패스는 모든 솔루션의 기반을 클라우드로 하는 ‘클라우드 퍼스트’ 방향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능은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로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국내에선 SaaS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기업이나 금융권에선 SaaS 도입을 망설이는 경우도 많다. SaaS 수요가 크지 않은 국내 환경으로 인해 유아이패스도 국내에서 SaaS 버전의 RPA를 일부만 제공하고 있다. 유아이패스는 신기능을 클라우드 버전으로 먼저 공개하기 때문에, 국내에선 온프레스(솔루션을 회사 전산실 서버에 설치해 운영하는 방식) 버전으로 기능이 출시될 때까지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유아이패스는 클라우드의 기능을 온프레미스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능을 개발해, 국내 기업도 최신 기능을 빠르게 이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이봉선 전무는 “국내 RPA 시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앞으로 인력부족 문제로 인해 이 시장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회사를 퇴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일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렵게 취직해서 제품 명세가 맞나 틀리나 확인하고, 오탈자를 점검하는 일을 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다. RPA를 도입하면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창의적이고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고, 불필요한 야근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아이패스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시맨틱 오토메이션(Semantic Automation)이다. 인간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AI가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데이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이다. 의료비 영수증 수천 장을 AI에 학습시킨다고 생각해보자. 이로 인한 인건비는 RPA 관련 예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해당 데이터를 학습하면 다른 양식의 문서 데이터를 받아도 AI가 이를 인식하고 자료를 처리할 수 있다.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고, 데이터 학습에 필요한 시간과 인력도 줄어든다.
둘째, API 오토메이션 강화다. 솔루션 커넥터와 같은 API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커넥터를 쓰면 RPA가 시스템에 접속해 특정 메뉴에 들어가 데이터를 끌고 올 필요가 없어진다. API를 통해서 호출하면 데이터를 바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 자동화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이봉선 전무는 “현장에선 업무 자동화를 위한 과정이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에선 베이직한 RPA를 많이 쓰고 있지만, 최근 들어 DU(Document Understanding, AI로 문서를 인식하는 기술)를 쓰는 곳도 늘고 있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크다고 본다. RPA는 진정한 자동화를 위해서 더 편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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