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마니아 윤종빈 크로스 커뮤니케이션스 이사(56)는 2020년 7월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와 정형외과를 찾았다. 아킬레스건염이었다. 약을 복용하고 조심했더니 괜찮아졌다. 하지만 얼마 뒤 다시 통증이 생겨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역시나 아킬레스건염 진단을 받았다. 과도한 운동이나 과체중이 원인이라고 했다. 의사는 보통 아킬레스건염은 건에 생기는데 건과 뼈의 접합부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봐 경사도가 있는 곳을 오르는 등산을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윤 이사는 주 2~3회 회사에서 집까지 12km를 걸어서 퇴근하고 매주 주말 북한산을 찾아 6~7km를 걷는다. 많이 걸을 땐 하루 3만보 이상은 걷고 있다. 윤 이사로선 아킬레스건염 탓에 산에도 못 가고 많이 걷지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킬레스건염으로 고생하던 윤 이사는 지난해 5월부터 등산화를 바꿨다. 밑창이 소프트한 것을 신다 딱딱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과거 등산을 한 뒤 소염제도 먹었었는데 등산화를 바꾼 뒤에는 복용하지 않는다.
윤 이사는 “딱딱한 등산화를 신어 발목이 아프지 않자 다시 소프트한 것을 신었는데 바로 통증이 재발됐다”고 했다. 윤 이사는 이젠 산에 갈 땐 밑창이 견고한 등산화만 신는다. 등산화를 바꾼 뒤 아직 아킬레스건염이 재발되지 않았다.
윤 이사는 산을 22년 넘게 오르면서도 등산화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2000년 지인의 권유로 산을 오르게 됐죠. 방송국에 있는 지인과 매일 새벽 서울 청계산을 오른 뒤 오전 9시 쯤 해장국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 때 산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방송작가협회와 인연이 됐어요. 함께 산을 탔고 2006년 방송작가협회와 히말라야를 18박19일 다녀온 뒤 매주 산을 오르게 됐습니다.”
주 1회, 1년에 52회 산을 올랐던 그도 한 때 중등산화를 신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가볍고 편한 경등산화를 신기 시작했는데 결국 탈이 났던 것이다. 윤 이사는 “딱딱하고 무거워서 바꿨다. 젊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발에 무리가 왔다”고 했다.
등산화 전문가들은 등산 시간 기준으로 4시간 이상은 중장거리 산행으로 트레킹이라 하고 4시간 이하 산행은 단거리 산행으로 하이킹으로 구분한다. 등산화만 100년간 만든 독일의 명품 로바(LOWA)를 수입하는 김병철 메드 (주)메드아웃도어 대표(53)는 “4시간 이상 중장거리 산행을 할 땐 발목을 꽉 잡아주는 견고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착화감이라고 합니다. 발하고 신발하고 얼마나 밀접하게 감싸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산은 평지가 아니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발이 앞과 뒤로 쏠리면 마찰이 생겨 물집도 생깁니다. 신발 안에서 롤링이 일어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근육들을 써야 하기 때문에 발의 피로도가 높아집니다. 발전체를 잘 잡아줘야 하는데 특히 발목과 뒤꿈치를 잘 잡아줘야 발의 움직임을 최소화합니다.”
윤 이사가 부드러운 밑창에서 딱딱한 밑창으로 바꿔서 아킬레스건염이 사라졌다는 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산을 오르다보면 자갈, 바위, 돌, 나무뿌리 등 다양한 돌출 부위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데 밑창이 소프트한 것을 신으면 얼마 안가 발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보통 발바닥이 탄다고 표현하는데 그럼 장시간 등산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따라서 산행 시간에 따라 등산화로 구별해서 신어야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4시간 이하면 부드러운 밑창이나 트레일러닝화로도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4시간 이상 산행 때는 밑창이 견고하고 발목을 꽉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거리 산행은 중등산화, 단거리 산행은 경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호 한국인체공학신발연구소 소장(63)도 “등산화는 돌과 나무부리 등 다양한 변수가 있는 오프로드를 걸을 때 신기 때문에 밑창이 딱딱하고 발을 잘 잡아주는 것을 신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800회 가까이 완주하며 발의 움직임을 연구해 기능성 안창을 만들고 있는 그는 “발이 신발 안에서 놀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발을 탄탄하게 잡아주고 무릎과 고관절 비복근을 활용해 걸어야 산행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밑창이 견고하다고 내부까지 견고한 것은 아니다. 소프트한 소재를 써서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윤 이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딱딱하고 무거우면 안 좋을 것이란 편견이 있는데 장거리 산행 땐 딱딱해야 오래 편하게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이사는 “밑창이 딱딱하고 발목을 잘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으면 걸음걸이도 달라진다. 발목을 쓰지 않기 때문에 고관절을 더 많이 쓰게 돼 결과적으로 코어 운동이 더 많이 된다”고 말했다. 밑창이 딱딱하고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으면 어떤 측면에선 발목을 깁스한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이게 발목을 탄탄하게 지지해준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양말과 스틱(지팡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땀이 잘 흡수되고 빨리 말려주는 울 양말을 신어야 한다. 요즘 기능성 양말도 나오지만 장거리 산행엔 울 양말이 가장 좋다. 면양말은 피해야 한다. 면양말은 땀이 차면 잘 마르지 않고 딱딱해져 마찰계수가 올라가 불집 등 발에 악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윤 이사와 김 대표는 “등산 장비를 갖출 때 가장 중요한 게 등산화다. 발이 편해야 등산이 즐겁다. 그리고 옷 보다는 배낭이 중요하다. 스틱도 꼭 갖추고 산에 올라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윤 이사는 등산 초보자에게도 중등산화를 추천한다. 그는 “산길이 익숙지 않아 이동중 밸런스가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정성과 접지력 성능이 가장 좋은 게 중등산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에서 설명했듯 중등산화는 무엇보다 발목을 잘 받쳐주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경등산화나 트레킹화보다 확실히 막아준다. 그는 또 “국립공원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산들을 오르내리겠다면 우선적으로 중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산은 거의 대부분 돌산 바위산이라 발을 잘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윤 이사와 함께 27일 서울 구기동쪽에서 출발해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을 찍고 다시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4시간 산행을 했다. 이날은 중등산화를 신었고 스틱도 썼다. 평소 달리기를 즐기는 기자는 산을 탈 때 트레일러닝화를 신었는데 2~3시간 지나면 발바닥과 뒤꿈치가 불편했지만 이날은 발이 편안했다. 스틱도 처음 사용했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 하체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내려올 때 안정성을 높여줘 몸이 덜 피곤했다.
윤 이사는 “대한민국 산 중에서 다양한 코스가 많은 북한산이 좋아 거의 매주 오르는데 일부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등산화을 살펴보고, 중등산화가 아니면 ‘아휴 저 친구 오늘 고생하겠네’라는 생각이 든다. 등산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게 등산화라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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