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요양병원 간병 모델 마련’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정책이다. 2008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가 있다. 해외여행을 간 자녀가 부모를 외국 공항에 버리고 귀국한 사건이다. ‘21세기 신(新)고려장’으로 알려져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도록 했다. 문제의 원인이 고령화임을 파악한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장기요양보험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고령자 돌봄 기능의 요양원 모델을, 또 요양보호사 제도를 만들어 간병 모델을 만들었다. 현재까지도 요양원의 간병 기능은 국가가 부담한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경우 월 60만∼70만 원의 비용으로 부모를 모실 수 있다.
같은 시기 정부는 요양병원의 기능을 재정립했다. 요양원에 해당되는 미국의 너싱홈(nursing home)을 벤치마킹해 요양병원에 환자 1명당 일정한 비용을 제공하는 일당 정액제(포괄수가제)를 마련했다. 의료행위 난이도가 아니라 자원 소모량을 바탕으로 7개 등급으로 수가를 정했다.
하지만 요양병원 일당 정액제는 치료 난이도에 대한 고려가 없고, 약값도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 폐렴·패혈증 같은 행위별 수가를 만들었지만 치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다. 더구나 요양원과 달리 요양병원은 간병 제도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은 병원이 고용하지 않고 환자, 보호자와 간병인 간의 사적 계약관계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간병인의 업무와 책임 등 어떠한 조건도 없는 돌봄 서비스다. 간병 관련 문제가 생기면서 요양병원의 질이 낮다는 인식이 생겼지만, 근본 원인은 국가가 책임지는 간병 제도의 부재다.
요양병원이 증가하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료 서비스보다 간병비 할인 경쟁이 생기고 있다. 간병비의 절반(30만 원)을 받으면 간병인 1명이 무려 12명의 환자를 간병한다. 더구나 간병비가 없는 요양병원은 간병 인력이 없어 환자가 방치된다. 폭언, 폭행, 학대, 방임 등이 생기는 구조다. 감염 문제도 그렇다. 간병인은 요양병원이 고용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 이들을 교육, 관리, 감독할 수 없다. 하루 24시간 같은 병실에서 간병하는 중국동포 간병인도 고역이다. 그들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제대로 된 간병이 이뤄지기 어렵다. 간병 제도가 누락된 초기 요양병원 설계 탓이다.
요양병원이 의료기관으로서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를 제대로 해야 한다. 간병 급여화를 통해 120만 유휴 요양보호사를 채용함으로써 건강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공공근로보다 실질적이고 필요한 일자리다. 국정과제로 시작한 이번 간병 모델이 잘 설계돼 요양병원이 고령 사회의 든든한 방파제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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