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인류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와 현재
지난 1885년,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 업체 ‘벤츠’의 창립자인 칼 벤츠(Karl Benz)가 인류 최초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듬 해 1월 29일, 내연기관 자동차 최초로 특허를 획득했죠. 오늘날 도로를 주행하는 모든 내연기관 자동차의 공식적인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약 16km/h의 느린 속도로 주행했지만, 인류 최초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자동차는 지금까지도 인류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혁신적인 발명품으로 평가받습니다.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발명한 지 약 137년이 지난 지금,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는 100km/h보다 빠른 속도로 주행합니다. 서울에서 400km 이상 떨어진 부산까지 약 4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죠(아, 막히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또한, 다양한 차세대 기술을 도입하면서 자동차 스스로 장애물을 인지해 피하고, 주행합니다. 최초의 자동차와 비교했을 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성능을 자랑하죠. 그만큼 우리 삶의 질도 크게 향상했습니다.
자동차 관련 기술은 굉장한 발전을 이룩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최초의 자동차와 현대의 자동차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나게 차이나죠. 그런데, 자동차의 성능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자체도 중요하지만, 도로 인프라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지만, 만약 서울과 부산을 잇는 도로가 일반 국도나 비포장 도로라면 어떨까요? 아무리 빠르고 성능 좋은 자동차라도 8시간 이상 필요할 겁니다.
도로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가 경제 발전에도 기여합니다. 지난 1970년 7월 7일, 우리나라는 서울 서초구부터 부산 금정구까지 총 길이 428km를 잇는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죠. 당시 경부고속도로 개통은 의미가 컸습니다. 전국을 1일 생활권 시대로 연결했으며, 경제 발전으로 인해 증가한 물류를 원활하게 운송할 수 있도록 지원했죠.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동력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유입니다.
성능 위주로 자동차를 판단했는데,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환경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자동차라도 달릴 수 있는 도로가 없다면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지금도 전국에 계속해서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는 이유기도 하죠.
지난 2022년 2월, 국토교통부는 2021년 12월 기준 자동차 등록대수는 2,491만 대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수치이며, 인구 2.07명당 자동차 1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죠. 해외의 경우 자동차 1대당 미국은 1.1명, 일본은 1.6명, 독일은 1.6명, 중국은 5.1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요. 주요 해외 자동차 산업 선도국과 비교해봐도 국내 자동차 등록수는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국토 면적 10만 6,210㎢ 중 도시지역은 1만 7,763㎢로 전체 면적에서 약 16.7%에 불과합니다. 국민 91.8%가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좁은 면적에 자동차가 밀집되어 있죠. 따라서 원활한 자동차 이동을 위해서는 도로 인프라 구축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로 인프라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다양한 방면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지난 2021년 11월, 미국 하원은 미국의 인프라 재건을 위한 예산법안에 찬성 228표, 반대 206표로 통과시켰습니다. 이 예산안은 교통시스템, 교량, 수자원 공급, 인터넷 통신망 등 낙후된 국가 인프라를 개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약 1조 2,000억 달러 규모(한화 약 1,423조 원)의 예산 집행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특히, 백악관은 ‘도로 및 교량 개선에 1,100억 달러(한화 약 138조 1,600억 원) 규모의 재원을 투자해 미국 교통시스템을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로 인프라 시스템 개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죠.
전 세계적으로 도로 인프라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네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시에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자동차도 계속 늘어나고 있어 교통체증은 더욱 심해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특정 지역에 밀집해서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특징을 생각하면, 교통체증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차세대 모빌리티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대응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UAM, 에어택시,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등 다양한 미래 모빌리티의 등장은 앞으로 교통체증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체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미래 모빌리키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데요. 새로운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래 모빌리티가 아닌 현재 수준에서 교통체증을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다양한 교통수단을 상용화한다면 교통체증은 한결 완화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교통량을 감당할 수 있는 도로 인프라를 확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심지역을 살펴보면 더 이상 도로를 늘리기 위한 여분의 땅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있습니다. 지상이 아닌, 지하입니다.
테슬라 창업자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지난 2016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 ‘보링 컴퍼니(The Boring Company)’를 설립했습니다. 보링컴퍼니는 지난 2022년 1월 개최한 CES2022에서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기술을 현실화하기 위해 새로운 미래형 교통 시스템 ‘베가스 루프(loop)’를 공개했는데요.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내 주요 전시장을 지하 터널로 연결해 터널 내부를 전기자동차로 주행하는 방식을 선보였죠.
베가스 루프는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터널을 시내 지하에 촘촘하게 거미줄처럼 만들어, 목적지 근처까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교통 시스템입니다. 하늘을 나는 에어택시와 달리 추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독립된 지하 공간이기 때문에 주변에 소음공해를 유발하지 않죠.
일반적으로 CES 개최 기간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교통체증 현상도 심각해졌는데요. 하지만, 올해 CES는 베가스 루프를 통해 도보로 30분 가량 걸리는 거리를 불과 2분만에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했죠. 베가스 루프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업을 승인 받고 약 3년 만에 가동했습니다. 테슬라 모델Y와 모델X 총 62대를 운행했죠. 전기차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 터널에 환풍구를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행사 당시 차량 1대 당 3명이 탑승할 수 있었는데요. 컨벤션센터 측은 머지않아 12명이 탑승할 수 있는 자동차를 투입할 방침입니다.
베가스 루프의 승객 수용량은 터널 수, 역 수, 역 크기 및 운행 자동차 수에 따라 결정됩니다. 초기에 보링 컴퍼니 측은 대형 정류장 3개를 활용해 시간 당 약 4,400명을 수용하고, 약 240km/h 속도로 주행할 수 있가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시간 당 약 1,200명을 수용하고, 약 60km/h 속도로 서비스를 제공했죠. 아직까지 공식 상용화를 하지 않았고 당국 규제로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인 오토파일럿을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보링 컴퍼니는 2029년까지 라스베이거스 전역에 정류장 51개를 구축하고, 약 46km 거리의 루프 네트워크 구축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해 고속으로 주행하고 시간 당 약 5만 7,0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최근 보링컴퍼니는 6억 7,500만 달러(한화 약 8,40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기업 가치는 56억 7,500만 달러(한화 약 7조 5,000억 원) 수준으로 평가 받았죠. 이번에 유치한 투자 유치 자금을 통해 프로젝트를 확장하기 위한 엔지니어링, 운영, 생산 등 다양한 분야의 인력을 충원할 예정입니다.
보링컴퍼니가 제시한 터널 루프의 개념은 차세대 교통수단인 하이퍼루프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터널 루프 기술은 지난 2013년 일론 머스크가 언급한 하이퍼루프에서 파생된 기술이긴 합니다. 하지만, 하이퍼루프는 기술적 한계로 아직 상용화 시기는 불확실한 반면, 터널 루프는 터널 건축 기술이나 그 안에서 이동하는 자동차 성능의 완성도에 따라 하이퍼루프 대비 상용화는 빠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시범 운행을 하고 있군요? 우리나라에도 지하 터널 형태의 도로를 구축하고 있나요?
우리나라도 다양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 2009년부터 아진공 상태(0.001 기압 이하)의 튜브인 하이퍼튜브(HTX)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하이퍼루프와 비슷한 개념이죠. 지난 2020년 11월에는 하이퍼튜브 모형 실험을 실시하고, 시속 1,019km 속도를 돌파하는 등 연구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관련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서 수십km 길이의 튜브 내 압력을 표준 대기압의 1/1000 이하로 유지하는 기술, 차량 부양 기술, 가속 기술, 정지 기술, 내진 기술, 에너지효율화 기술, 승객 편의성 증진 등 아직까지 개발할 분야가 많이 남았습니다.
지난 2022년 2월, 국토교통부는 보다 효과적이고 현실적으로 교통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2025년까지 고속도로 건설 중장기 투자 계획을 담은 ‘제2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2021-2025)’을 도로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확정했습니다. 해당 계획에 따르면, 상습정체 자동차전용도로의 일부구간을 지하에 건설해 교통 수용량을 증대할 예정입니다.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도로의 교통 수용량은 2배로 증가하죠.
우리나라도 지하를 활용한 도로 인프라에 관심을 가지고 있군요?
지하 터널은 원활한 교통 체계를 제공해 이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사고 발생 시 수백, 수천 명의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안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아직까지 국내에는 지하에 건설한 장거리 자동차 전용도로가 없습니다. 때문에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부터 마련해야 하죠.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안전 관리 계획부터 우선 마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이경현 소장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 가능성을 파악한 뒤,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 컨퍼런스 개최를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웹서비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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