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NFT 시장의 발전이 더디다. 해외에선 다양한 비즈니스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보이는데 국내는 PFP(Profile Picture)형태로 정체돼 있다”
국내외의 NFT 사업을 둘러보고 온 산업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국내도 한동안 NFT 열풍이 불긴 했지만,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기술과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발전도 미미했다는 것이다.
이장우 한양대 교수(업루트 대표)는 국내 NFT 시장의 발전이 느린 것에 대해 “해외와 비교할 때 국내 NFT 산업의 시작이 늦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더리움 같은 경우엔 수수료 비용이 비싸서 저렴한 클레이튼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진입 장벽이 낮아져 양질의 프로젝트가 나오기 힘든 구조였다”고 분석했다.
가상자산 시장을 멍들게 하는 불법거래…”시장 신뢰 훼손해”
가상자산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 국내를 비롯한 NFT 산업의 성장이 정체된 이유가 테라-루나 코인의 폭락과 불법행위 등으로 이 시장이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기업 체이널리시스가 공개한 '2022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체이널리시스는 글로벌 NFT 산업에서 자전거래와 자금세탁 등의 불법행위를 발견했다.
자전거래는 같은 인물이나 사전에 합의한 사람들이 판매하는 척 내놓은 자산을 자신들이 되사는 행위를 말한다. 실질적인 거래는 없지만 많은 거래가 발생한 것처럼 호도해 NFT 거래량과 거래금액을 부풀린다. 체이널리시스는 블록체인 분석을 통해 상습적 자전거래자로 의심되는 사용자 262명을 발견했는데, 이들이 자금을 자체 조달한 지갑 주소로 NFT를 판매한 것은 25회 이상이었다. 절반이 넘는 152명은 총 42만 달러(약 5억 원)의 손실을 봤고, 나머지 110명은 890만 달러(약 108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코인원 리서치센터가 2018년 발행한 보고서 ‘거래소 내의 자전매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간단하게 포착하는가?’는 “전통 금융시장에서 자전매매가 금지되는 이유는 특정 상품이 실제보다 높은 유동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일으켜 무고한 투자자를 유인해 가격을 왜곡하는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암호화폐 시장엔 자전거래 규제가 없다는 것이다. NFT와 같은 가상자산 시장은 법적 테두리 밖에 있어, 자전거래가 엄격하게 관리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가치평가가 어려운 특성상 거래금액의 부당성을 입증하기도 어려워 자금세탁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체이널리시스는 NFT를 활용해 도난 및 자금세탁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거래도 확인했다. 불법 주소에서 NFT 마켓플레이스로 전송된 금액은 2021년 3분기 100만 달러(약 12억 원) 이상, 2021년 4분기에는 140만 달러(약 17억 원)에 달했다.
물론, 이러한 불법거래는 가상자산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체이널리시스 관계자는 “가상자산 업계는 여러 리스크에 취약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지 배우는 과정에 있다. 과거 주식시장도 리스크 관리에 취약했지만 점점 개선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시장도 성숙을 하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NFT 프로젝트 발전이 더딘 이유는 “기술적인 장벽” 때문
업계에선 NFT 산업의 발전을 막는 또 다른 장벽은 ‘기술적인 어려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NFT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NFT 프로젝트를 만들 때 자체 개발팀이 없으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예를 들면, 화이트리스트(NFT를 싸게 사는 권리)를 만들고 이를 블록체인에 구현하려면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NFT를 민팅하고 각각의 디자인 요소(머리색, 옷 색)가 특정 확률로 나오도록 확률을 조정하는 것도 고난도의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하다.
많은 NFT 프로젝트는 개발팀이 없기 때문에 개발을 외주로 맡기는 상황이다. NFT 업계에선 고급 개발자가 최소 3명은 필요하고, 필요한 솔루션은 다 갖고 있는 상황이라도 3~4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한다. 국내 개발자를 통하더라도 억 단위의 비용이 들어가고 해외 개발자에게 외주를 맡기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이러한 이유로 NFT를 편하게 만들 수 있도록 기술적인 도움을 주는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NFT 콘텐츠플랫폼 ‘DRAFTHUB(드래프트헙)’은 NFT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다. 인기 일상툰 ‘놓지마 정신줄’의 신태훈 작가가 시작한 플랫폼이다. 오늘 11일 1차 티저가 공개됐다. 그는 “창작자들이 크라우드 펀딩 개념으로 투자를 받고, 이를 기반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창작 활동에 크라우드 펀딩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업계의 특성을 먼저 알아야 한다. 웹툰 플랫폼의 웹툰 작가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미리보기 결제 시스템은 ‘액션물’, ‘스토리물’과 같은 장르에 적합하다. 미리보기 수요가 크지 않는 생활툰 같은 장르는 웹툰 플랫폼에서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신 작가는 “웹툰 플랫폼이든 개인적인 SNS에 작품을 올리든, 작품 시놉시스를 짜고 이를 구체화며 작품을 어느 정도 그려 놓으려면 3~6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작품을 일정 부분 만들었어도 웹툰 플랫폼에 통과가 안 될 수도 있다”면서 “요즘 만화 작업은 어시스트나 여러 명의 팀원이 필요하다. 6개월 정도 만화를 준비한다는 건 꽤 큰 금액의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만약, 웹툰이 플랫폼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경제적인 타격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지점에서 크라우드 펀딩 개념의 NFT 프로젝트가 등장한다. 준비 단계에서 창작자들이 작품을 미리 공개하고, NFT 프로젝트를 시작해 이를 독자가 투자 개념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작품은 NFT를 구매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 대중 모두에게 공개된다. 신 작가는 “NFT 프로젝트를 웹툰에만 국한할 이유가 없다. 가수의 음악, 영화 감독의 영화, 화가의 그림 등 모든 영역에 두루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NFT 홀더들과 어떤 조건을 설정할지는 플랫폼이 아닌 창작자가 정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는다.
신태훈 작가는 “NFT와 가상자산의 매력은 국내 화폐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통용된 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간 과정에 환전이 필요 없어 국경과 무관하게 누구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장우 교수는 “NFT 산업이 성장하려면 양질의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한다. 좋은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는 팀이 NFT 프로젝트를 많이 시도하고, 이로 인해 지속 가능한 서비스가 이어져야 한다. 디지털 아트는 2차, 3차 판매돼도 추가적인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고 디지털 파일 특성상 거래 자체가 어려웠지만 이를 성립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다만, NFT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웹툰가이드의 강태진 대표는 “지금까지 콘텐츠 부문에서 NFT는 사실상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명품 보증서는 실물이 담보되는 미술품의 유니크함을 보장하는 용도지만,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서 이와 같은 아우라(Aura)가 생길지는 의문이다. 가트너의 하이프 사이클(Hype Cycle 2021)을 보면 NFT는 지금 과장 곡선에서 피크에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가트너 하이프 사이클은 피크를 찍었다가 다시 골짜기로 떨어지면서 대중화가 되는 수순을 밟는다. NFT도 기대의 피크에 갔다가 이제 떨어지는 시점으로, 이제 기술력의 문제보단 문화와 대중이 이를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명품을 부러워하듯 NFT 홀더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했다.
기술을 다루는 업계의 관계자들은 “중요한 건 결국 기술을 통해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도해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NFT 시장에 접근하는 걸 조심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이젠 신태훈 작가의 NFT 플랫폼 ‘DRAFTHUB’과 같은 도전들이 좋은 결과를 낼 지에 대해서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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