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위협하는 3대 가족리스크〈上〉
자녀-간병 리스크
늘어나는 캥거루족 고령화 추세
효자가 부모살해범 되는 비극
《노후를 향해 돈 건강 행복을 챙기며 열심히 달려온 5060세대 앞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복병이 있다.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자녀, 갑자기 닥쳐오는 부모의 간병, 황혼이혼 리스크가 그것들로, 모두 사랑하는 가족과 관련된다. 인생의 함정과도 같은 이 위기를 잘 극복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부모 노후 갉아먹는 자녀 리스크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성인 자녀, 이른바 ‘캥거루족’이 늘고, 고령화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만 19∼49세 성인 남녀 중 29.9%가 부모와 동거 중이다. 미혼 자녀의 64.1%, 미취업 자녀의 43.6%가 캥거루였고, 40대라 해도 미혼자는 48.8%가 부모와 함께 산다.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풍조가 퍼지고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이 겹치면서 자녀들이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캥거루족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고도경제성장에 편승해 사회적 입지를 굳히고 자산을 축적한 반면, 그 2세들은 산업이 성숙화하면서 성장이 둔화되는 시기에 사회에 진출했다. 고용과 자산 축적에서 애초에 불리하다. 그래서 MZ세대(1980∼2000년대생)는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라 불린다.
국가마다 호칭도 다양하다. 일본에서는 부모에게 기생하는 독신이라는 뜻의 ‘파라사이트 싱글’, 미국에서는 ‘키덜트’(Kid+Adult), 캐나다에서는 직장 없이 떠돌다 집으로 돌아왔다고 ‘부메랑 키즈’, 영국에서는 부모 퇴직금을 축낸다는 의미에서 ‘키퍼스’, 여기에 일단 결혼하고 독립했다가 주거비와 육아 등의 이유로 돌아온 ‘리터루’(return+kangaroo)족까지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캥거루의 극단적 형태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의 고령화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1990년대 ‘취직 빙하기’에 캥거루족이 된 ‘잃어버린 세대’(1975∼1984년생)가 그대로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 부담을 예고하고 있는 것. 그들의 부모인 7080세대가 언젠가 고령으로 사망하면 그들의 연금에 기대던 4050 자녀 캥거루들은 생계가 끊기게 된다. 두 세대에 걸친 이런 고민을 ‘4070’ 또는 ‘5080문제’라 부른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이 문제가 된다. 많은 교육비를 투여한 것도 모자라 자녀가 결혼하면 집 팔고 대출받아 지원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더 심각한 것은 결혼 후에도 사업자금이나 생활비, 교육비 등의 명목으로 손을 벌리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노후 계획을 탄탄하게 세웠다 해도 무용지물이 된다. 자녀들 등쌀에 부모의 노후 계획이 흔들리는 슬픈 이야기들은 도처에 넘쳐난다. ‘유전유효 무전무효’라거나 “(미리 재산을) 안 주면 시달려서 죽고, 찔끔찔끔 주면 졸려서 죽고, 다 주면 굶어죽는다”는 우스개마저 나돈다. 평소 ‘자녀 리스크’에 대비할 것을 누누이 강조해온 강창희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대표는 “노후 자산을 너무 쉽게 내어주다가는 자칫 부모와 자녀 세대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자녀에게 경제적 자립, 금융교육부터
자녀 리스크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퇴 전문가들의 조언을 종합해 보자.
첫째, 자녀에게 경제적 자립심을 갖게 해주고 금융(재테크) 교육을 하는 것이 명문대 졸업장보다 훨씬 중요하다. 자녀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부모 스스로도 자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 대표는 특히 저성장 시대에는 여건에 맞게 소비를 조절하고 ‘절약’하는 능력이 절실해진다고 강조한다.
둘째, ‘연금박사’로 알려진 이영주 CFP(재무설계사)는 목돈은 가능하면 현금 흐름으로 바꾸라고 조언한다. 그는 “노인의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은 도처에 있다”며 “목돈 그 자체가 폭탄 같은 위험물”이라고 말한다. 목돈을 연금이나 배당수익이 나오는 형태로 묶어놓으면 자녀건 사기꾼이건 손댈 수 없고 노인은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셋째, 부모의 자산 상태와 노후 계획에 대해 자녀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주고 부모의 노후도 소중하다는 점을 공유해야 한다. 부모 재산 소유권은 부모에게 있다는 점도 명확히 해둔다.
○효도하는 자녀가 부모를 죽인다?
2020년생 기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3.5세(남성 80.5세, 여성 86.5세)지만, 건강수명(유병기간 제외 기대여명)은 66.3세에 불과하다. 인생 막바지 17.2년을 시름시름 아픈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5060은 자녀교육에 다걸기(올인)하는 동시에 부모 봉양 부담도 짊어진 세대다. 부모세대가 80세를 넘어서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보살핌이 필요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자신의 노후 준비도 안 돼 있건만 간병(돌봄 포함) 부담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독박 간병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 특히 노인의 정신적 퇴행을 가져오는 인지증(치매)은 자녀의 심신을 갉아먹는 재앙에 가깝다.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 2013년 한류스타의 아버지가 이런 유서를 남기고 부모님과 함께 세상을 뜬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평소 극진한 효자였던 아버지는 연예인인 자녀들을 배려해 혼자 간병 부담을 짊어졌고, 우울증에 걸렸을지언정 힘들다는 내색조차 없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간병에 몸바쳐온 효자가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가 돼 버린 것이다.
고령자 간병 문제를 먼저 맞닥뜨린 일본에서는 노후의 가장 큰 리스크로 ‘간병 파산’을 들고 있다. 돈 문제뿐 아니라 간병 탓에 직장을 포기하거나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간병퇴직’이 신조어가 됐을 정도다. 노인이 노인을 간병하는 노노(老老) 간병, 병자가 병자를 간병하다가 한계에 이른 듯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이 자주 벌어졌다. 유하라 에쓰코 일본복지대 교수의 2016년 집계에 따르면 과거 18년간 일본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된 간병살인과 동반자살은 716건에 이른다.
부모 간병을 둘러싼 잔혹사는 각종 드라마와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이제는 부모를 버려야 한다’(시마다 히로미·지식의 날개)는 다소 섬뜩한 제목의 책도 나왔다. 종교학자이자 교육자인 작가는 “고령화시대에도 과거처럼 자녀와 부모에 대한 유교적 관념에 집착하다가는 다 함께 쓰러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책 앞머리에 소개된 2016년 도네가와강 동반자살 미수사건이 그런 예다. 직장도 그만두고 10여 년간 노부모를 간병하던 40대 딸이 차에 부모를 태운 채 도네가와강에 뛰어들었다가 딸만 구조됐다. 피로와 비관에 찌든 아버지가 ‘다 함께 죽자’고 제의했고 딸이 동의했다.
작가는 이런 사건이 워낙 흔하다 보니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며 “딸이 부모를 일찌감치 버렸다면 이 같은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만약 딸이라는 희생을 자처한 ‘보호자’가 없었다면 노부부는 더 일찍 지역사회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고 ‘부모살해’라는 가족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 내 간병, 자식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노인 간병은 길게는 10년 넘게 이어질 수 있다. 간병 때문에 직장이나 결혼 등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독박간병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 쉽다. 데이케어센터,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동원 가능한 사회적 지원을 모두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가족의 관심과 도움도 최대한 이끌어내야 한다.
세월이 흘러 현재의 5060세대가 간병이 필요해진다면 어떨까. 5060세대는 형제가 대체로 여럿이어서 부담을 나눌 수 있었지만 자녀세대는 1, 2명에 불과하다. 자녀가 결혼을 해도 각자 자기 부모의 간병조차 감당하기 힘들 터. 결국 5060세대는 자녀에게 간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간병을 필요로 하기 전, 사회에 여력이 있을 때 간병의 사회적 지원 방식과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노후를 살아갈 다양한 공간과 방식에 대한 연구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5060세대는 마구잡이로 교육비를 쓰는 대신 훗날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간병을 준비한다는 마음자세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노후 리스크인 황혼이혼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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