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인 30대 A 씨가 지난달 24일 새벽 출근 직후 극심한 두통으로 쓰러졌다. 원내 의료진이 A 씨에게 내린 진단은 ‘뇌출혈’이었다. 의료진은 즉각 응급실에서 혈관 내 색전을 이용해 혈류를 막는 색전술 처치를 했지만 출혈은 계속됐다.
결국 A 씨는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긴급 이송됐다. 병원 측은 당시 응급실에 뇌출혈 수술을 할 수 있는 신경외과 의사가 부재해 전원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병원에서 해당 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진 2명은 모두 휴가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A 씨는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숨졌다.
의료계에서는 국내 굴지의 병원이 응급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간호사를 사망케 한 것은 병원 측의 과실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익명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A 씨의 동료라고 자신을 밝힌 B 씨의 글이 올라왔다. B 씨는 “세계 50위 안에 든다고 자랑하는 병원이 응급수술 하나 못 해서 환자를 사망하게 했다”며 “인증평가 항목 중 하나인 직원사고 발생 시 대처방법에 대해 달달 외우고 있으면 뭐하나”고 성토했다.
뇌졸중 치료는 시간이 생명이다. 그만큼 병원 전 단계에서 뇌졸중을 인지하고 적절한 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이송이 중요하다. ‘119 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에는 △급성 뇌졸중이 의심될 경우 가까운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상의 의료기관으로 이송 △뇌졸중 선별검사가 양성인 경우 즉각적인 혈전용해치료가 가능한 지역응급의료기관 이상의 의료기관으로 이송 등이 규정돼 있다.
문제는 모든 지역응급의료센터가 뇌졸중센터를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올해 5월 기준 215곳의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있지만 대한뇌졸중학회가 인증한 뇌졸중센터는 70곳에 그친다. 사전에 뇌졸중 치료 여부를 확인하지 않으면 또 다른 병원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구급대원과 뇌졸중센터의 연계체계가 미흡하고 뇌졸중 사전고지 내용도 의료진에게 적절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허혈성 뇌졸중 환자의 17%는 처음으로 방문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전원해서 치료받는 상황이다.
대한뇌졸중학회는 “안타까운 사고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면 24시간 365일 작동하는 뇌졸중 치료체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골든타임인 3시간 이내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뇌졸중 치료체계가 부재한 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학회는 “그동안에도 이번 사망 사건과 비슷한 사례가 비일비재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현재 전국에서 뇌졸중 집중치료실을 갖춘 병원은 42.5%에 불과하고 전국 응급의료센터 중 30% 이상이 24시간 뇌졸중 진료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뇌졸중학회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24시간 365일 작동하는 뇌졸중 치료체계의 구축 △119, 응급실, 지역센터, 권역센터에 이르는 치료 구성요소의 연계 △만성적인 저수가 및 인력 부족 문제 해결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뇌졸중 응급진료를 감당해야 하는 전공의 숫자를 늘려 전문의 당직근무로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뇌혈관외과) 교수는 “우리나라 빅5 병원에 뇌혈관 외과 의사가 기껏해야 2∼3명이 1년 365일을 퐁당퐁당 당직을 서며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중증의료제도 지원 방안을 개선해야 뇌혈관 외과 등 특정 분야의 의료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뇌혈관 외과의 경우 수술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의료수가가 낮게 책정돼 있다”며 “젊은 의대생들의 지원이 낮고 신경외과 전공의들조차도 4년을 마치고 나면 현실의 벽에 절망해 대부분 척추 전문의가 된다”고 말했다.
의료수가는 의료인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치료원가와 보건의료인의 인건비, 의료기관 운영에 따른 부대비용을 합친 금액으로 결정되며 매년 물가상승을 반영하도록 돼있다.
장성인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료계는 ‘기승전, 수가’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든 결론은 수가의 문제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도 결국 의료계의 수가 문제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건강보험이 1977년에 도입될 당시 넉넉하지 않은 경제 상황으로 인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좀 더 필요한 의료행위부터 건강보험을 적용했고 그 결과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필수적이고 생명에 직결되는 의료행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책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수가를 올리기 위해서는 국민이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내야 한다. 장 교수는 “이는 국민의 큰 저항이 예상되는 일이고 상당히 정치적인 일”이라며 “따라서 이런 문제가 생긴 이후에도 궁극적인 변화는 이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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