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흔히 ‘SF 영화 불모지’라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과거에는 할리우드에 비해 부족한 VFX(시각효과) 기술력이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SF 영화는 현실에 없는 상상 속 존재와 풍광을 담아내야 하는 특성상 VFX 의존도가 매우 높은 장르다. VFX 기술력 부족은 영화의 전체 완성도를 발목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도 이제는 옛말이 된 듯하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외계+인’을 보면 적어도 VFX 품질 면에서는 할리우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사이보그 외계인들이 격투를 벌이는 장면을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
‘외계+인’의 이런 실감 나는 VFX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있다. ‘국가대표’, ‘신과 함께’ 등을 연출한 김용화 감독이 지난 2011년 ‘미스터 고’를 창업한 VFX 전문 기업이 출발점이다. ‘신과 함께’, ‘백두산’, ‘승리호’, ‘모가디슈’ 등이 모두 덱스터 스튜디오 손을 거쳤다.
덱스터 스튜디오에서 VFX 사업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는 제갈승 이사는 IT동아와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VFX가 단편적인 장면에 한정적으로 사용됐으나 지금은 영화 제작 전반에서 디자인 및 설계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왕의 남자’, ‘달콤한 인생’을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 60~70여 편에 VFX 슈퍼바이저로 참여한 제갈승 이사는 이번 ‘외계+인’에서도 VFX 슈퍼바이저를 맡았다. 영화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전 과정에 걸쳐 VFX를 총괄하는 역할이다. ‘외계+인’의 콘셉트 전반과 시퀀스 설계, 촬영 솔루션, 최종 아웃풋 관리 감독까지 모두 제갈승 이사 손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번 ‘외계+인’에 등장하는 외계 물질 ‘큐브’나 외계생명체의 독특한 움직임 VFX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긴밀히 제작에 관여한 덕분에 구현될 수 있었다. 제갈승 이사는 이를 위해 외계생명체에 맞는 스켈레톤 구조와 근육 시뮬레이션을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알고리즘을 활용해 큐브 움직임을 절차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구조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제갈승 이사는 오는 23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홍릉 콘텐츠 인재캠퍼스에서 열리는 특강에 연사로 참여해 ‘외계+인’의 사례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 전반에 VFX가 어떻게 사용되고, 이를 통해 어떻게 표현을 확장할 수 있는지 강연할 예정이다. 이번 특강은 업계 현업인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인 ‘콘텐츠스텝업’ 일환으로 마련됐다. 25일까지 3일간 열리는 이번 특강에서는 VFX 외에도 인공지능(AI), 웹3.0 등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들이 연사로 나설 예정이다.
이제는 영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VFX는 떼려야 땔 수가 없게 됐다. ‘외계+인’처럼 한눈에 봐도 화려한 VFX가 눈에 띄는 작품은 물론, VFX가 사용됐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작품과 장면에서도 VFX는 널리 활용된다. 세트 촬영이나 현지 로케이션 촬영보다 오히려 비용을 아낄 수 있고, 표현도 더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제갈승 이사는 “제작 비용을 효과적으로 줄이거나, 촬영이 불가능한 장면도 표현할 수 있어 과거와 달리 VFX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VFX를 필요로 하는 제작 현장이 늘어났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VFX 전문 기업의 수요도 높아졌다. 특히 앞으로 메타버스, 실감영상 등을 포함한 더 많은 분야에서 VFX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 제갈승 이사는 전망했다. 제갈승 이사는 “이번 강연으로 VFX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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