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수식어, 디지털라이프
“유레카!”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겉보기에 순금으로 제작한 왕관을 두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라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고민하다가 우연히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뭔가를 알아차리며 외친 말입니다. 부력을 통해 물질의 질량과 부피 관계를 설명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발견하며 외친 한마디로 유명하죠.
이후에도 인류는 일상생활에서 직면한 여러가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실험과 연구를 지속했습니다.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2년 현재,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요?
인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통해 이전보다 더욱 빠르고, 편리하며, 질 높은 삶을 영위하고 있죠.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고, 수천 권 분량의 책과 서류 정보를 담아 들고 다닙니다. 냉장고에 음식을 넣어 신선하게 보관하죠. 이렇듯 보다 편리한 삶을 돕는 제품은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입니다.
스마트폰, 냉장고는 일상에서 그냥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라 그 안에 담긴 기술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만약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불편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접목해 우리 삶 속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TV, 노트북, 태블릿PC와 같은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비행기, 기차 등을 비롯한 다양한 교통수단까지 많은 곳에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고 있죠. 그런데 이러한 제품에는 공통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핵심 부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인데요.
반도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뉴스 등을 통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특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 시장에서 약 6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절반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한편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반도체 기술력은 부족하다고 말하니까요. 반도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면서, 자동차 반도체 기술은 부족하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반도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반도체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시스템 반도체는 연산 및 제어 등 정보처리 기능을 수행하죠. 쉽게 설명하면, 기억을 담당하는 기능과 빠른 계산을 담당하는 기능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반도체 기술은 기억을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입니다. 그만큼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 비중은 높은 편이죠. 지난 2021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매출 중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76.2%, 94%에 달합니다.
모두 같은 반도체가 아닌 거군요. 아, 우리나라의 자동차 반도체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시스템 반도체 기술이 부족하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물론, 자동차에는 D램, 낸드플래시 등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자동차 트렌드는 전동화, 지능화로 바뀌면서 더욱 복잡한 시스템 체계를 필요로 하는데요. 이에 따라 지능형 반도체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시스템 반도체가 필수 탑재 부품입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등 다양한 사회적 영향으로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PC와 같은 디지털 기기에 반도체 수요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자동차용 시스템 반도체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폭스바겐, 도요타, 테슬라, 포드, 현대자동차 등 여러 완성차 제조사들은 자동차 생산에 걸림돌로 작용할 정도죠.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1대에 필요한 반도체 수는 약 300개 정도인데, 인포테인먼트 등 부가서비스를 탑재한 자율주행 레벨 3 이상의 자동차는 약 2,000개 이상 필요합니다. 이에 자동차 제조사는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하고, 미래 자동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반도체 기술 내재화에 나서기 시작했죠.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20년 392억 달러(약 51조2,148억 원)였지만, 2030년까지 연평균 11.36%씩 성장해 시장 규모는 1,150억 달러(한화 약 150조 2,475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어떤 기능을 위해 필요한가요?
미래 자동차 산업은 주행 기능 이외에도 친환경, 인포테인먼트, 자율주행 등 전동화, 지능화에 집중합니다. 따라서 필요로 하는 기술은 기존 하드웨어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죠. 복잡한 컴퓨팅 작업 및 복합 기능 수행을 위해서 고도화한 통합형 반도체 활용도 필요해진 상황입니다. 미래 자동차의 주요 기능인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ADAS), 전면부 감지 운전자 모니터링, 전/측면 후면뷰 카메라, eMirror, 조향휠, 자동차 조명, 인포테인먼트, 전자열쇠 등 다양한 기술을 문제없이 활용하기 위해서 반도체는 꼭 필요한 상황이죠.
자동차용 반도체는 대표적으로 섀시 제어, 정보통신, 파워트레인 제어, 바디 제어를 위해 사용합니다. 자동차를 작동하기 위한 필수 요소에 모두 포함되죠. 섀시 제어에 접목하는 반도체는 파워스티어링, 4WD, 서스펜션, ABS 제어 등에 활용되며, 정보통신에는 내비게이션, 전화, 카오디오 및 차량 운용에 활용됩니다. 또한, 파워트레인 제어에는 엔진, 트랜스미션, 전자 스로틀을 제어에, 바디 제어에는 에어백, 에어컨, 도어락, 보안 등에 활용되죠. 이렇게 많은 기능을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반도체는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동차용 반도체가 필요하겠군요.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에 집중하는 대표적 기업은 어디인가요?
자동차용 반도체인 시스템 반도체 기술에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투자해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NXP Semiconductors(이하 NXP)’인데요. NXP는 지난 2006년 필립스 반도체 부문이 독립해 설립한 회사로 현재 시스템 반도체 2위 기업입니다. 자동차, 산업, 모바일, 아날로그, 고성능 혼합 신호칩 등 시스템 반도체 전 분야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전체 매출 중 50% 이상은 자동차용 반도체에 집중되어 있죠.
지난 2022년 6월, NXP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oftware Defined Vehicle, 이하 SDV)용 프로세서 신제품 ‘S32Z’와 ‘S32E’를 출시했습니다. SDV란, 자동차의 주요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작동하는 자동차를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스마트카’입니다. 다양한 기능을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소프트웨어 구조를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데요.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 더 높은 성능, 애플리케이션 분리, 메모리 확장 기능 등을 제공하는 새로운 프로세서를 필요로 합니다.
NXP는 새로운 프로세서 신제품을 설명하며, 도메인 및 구역 제어, 안전 처리, 자동차 전동화를 위한 실시간 애플리케이션의 신속한 통합을 바탕으로 스마트카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주요 통합 플랫폼 기능, LPDDR4 DRAM 및 플래시 확장 메모리 기능 등을 지원하고, 고성능으로 자동차 기능을 통합하고 분리할 수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미래 자동차에 필요한 기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NXP는 기존 MCU(Micro Controller Unit 특정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한 전용 프로세서)를 고도화해 실시간 통신을 지원하는 IoT 통신 환경을 제공하고, 4D 이미징 레이더 칩 등을 개발하는 등 미래 자동차 기술을 위한 반도체 제품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세계자동차공업연합회(OICA, Organisation Internationale des Constructeurs d'Automobiles)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중국, 미국, 일본, 인도, 독일에 이은 전 세계 6위 자동차 생산국입니다. 2021년 독일을 추월해 5위에 올라서는 등 자동차 산업 선도 국가로 도약했죠. 그런데 자동차용 반도체는 유럽, 미국, 일본 등 다른 국가의 기업들이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의 점유율을 2.3%에 불과하죠. 반도체 기술 내재화 부족으로 소요량의 98%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이에 지난 2022년 7월 2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투자 지원, 인력 양성, 시스템 반도체 선도 기술 확보, 견고한 소부장 생태계 구축 등을 주요 내용으로 포함한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에 5,000억 원을 투자해 친환경‧자율주행‧커넥티드를 위한 맞춤형 프로세서와 센서 등을 개발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10%을 확보한다는 목표도 제시했죠.
현대자동차 그룹의 자동차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는 향후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수급량 증가를 예상하고, 직접 생산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 2022년 7월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자동차용 반도체 자체 개발 및 생산 계획을 발표했는데요. 자동차용 반도체를 내재화해 반도체 공급난 등의 리스크를 차단하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10월, 자동차용 프로세서 ‘엑시노스 오토(Exynos Auto)’와 자동차용 이미지 센서 ‘아이소셀 오토(ISOCELL Auto)’를 공개했습니다. 또한, 2021년 약 20조 원을 투자해 미국에 파운드리 제2공장 건설을 확정했으며, 2024년부터 5G, 고성능컴퓨터,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시스템 반도체 생산 계획을 발표했죠.
반도체 중요성은 계속 높아질 것 같은데,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기술은 매일 성장하며 고도화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인데요. 단순히 오래, 빠르게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는 더 이상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주행 성능 이외에도 운전 보조 기능, 자율주행 기능, 커넥티드 서비스, 인공지능, 인포테인먼트, OTA 등 다양한 기능을 필요로 하죠. 따라서, 반도체는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더욱 강력한 민관 협력을 통해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 확보에 나서야 하는 이유죠.
아직 우리나라는 다른 선도 국가와 비교해 부족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전략적인 계획에 따라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용 반도체는 미래 자동차 산업을 포함해 정부 3대 신산업(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죠. 때문에 관련 산업 활성화, 산업 생태계 저변 확대 등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사업을 강화하고 가속화해야 합니다. 미래 자동차 핵심부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시장 경쟁할 수 있는 국내 기업의 등장을 기대해 봅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이경현 소장
한국인사이트연구소는 시장 환경과 기술, 정책, 소비자 측면에서 체계적인 방법론과 경험을 통해 다양한 민간기업과 공공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모빌리티’ 사업 가능성을 파악한 뒤, 모빌리티 DB 구축 및 고도화, 자동차 서비스 신사업 발굴, 자율주행 자동차 동향 연구 등 모빌리티 산업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연구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모빌리티 인사이트 데이’ 컨퍼런스 개최를 시작으로 모빌리티 전문 리서치를 강화하고 있으며, 모빌리티 분야 정보를 제공하는 웹서비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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