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학 원조 서경묵 교수 자전거 예찬
갱년기 탈출…제2의 인생 원동력
심혈관계 질환 예방, 다이어트 효과 만점
안전제일…교통수칙 등 조기교육 필수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계절이다. 청명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자전거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자전거 타기는 혈압, 혈당, 체지방량을 감소시켜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증을 조절하고 예방할 수 있다. 자전거를 1시간 탔을 때 소비되는 칼로리 양은 400¤700kcal 정도로 걷기의 4배에 이르러 체중 감소 효과도 크다.
● 페달링은 허벅지 힘…무릎 안 좋은 노년층도 적합
서경묵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명예교수(65)는 15년 넘게 혼자 또는 모교 서울 중앙고 모임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 저녁이면 1시간 반 동안 용산과 마포를 오가는 40km 한강 코스를 탄다. 주말에는 춘천 등 교외로 나가 70km를 달린다. 서 교수는 “서너 시간 라이딩을 하면 하체 지구력이 생긴다. 페달링은 허벅지 힘으로 하게 돼 무릎이 안 좋은 노년층에게도 좋고 심폐기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정년퇴임을 한 서 명예교수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골프의학을 도입한 ‘그린 닥터’로 이름을 날렸다. 골프의학회 창립 후 회장을 맡았던 그는 11월부터 서울 부민병원 스포츠재활센터장에 부임할 계획. 30년 직장생활을 마친 뒤 새로운 의욕을 보이는 원천도 바로 자전거다.
서 명예교수는 50대 들어 심각한 갱년기를 겪었지만 자전거가 보약이 됐다. “빨리 피곤해지고 근력도 떨어지더라고요. 짜증이 늘고요. 마침 붐이 일어난 자전거를 타면서 몸과 마음에 다시 에너지를 얻었죠. 성취감도 느끼고요.”
● 산티아고 800km 순례…‘항상 겸손하라’
지난달 정년퇴임을 앞두고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 서 명예교수는 “가족들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여행 경비를 선물로 주더라. 하루 평균 80km를 탔다.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시간이 됐다”며 말했다. 그는 또 “순례길을 달리면서 허벅지는 터질 것 같고 숨이 헐떡거려 입 주위에 흰 거품을 물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항상 겸손하라’는 말이 떠올라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어느새 자전거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게 된 서 명예교수는 무엇보다 안전을 강조했다. “타이어 두께가 얇은 로드바이크는 시속 40km까지 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많은 한강공원에서 20km 제한 속도를 넘기면 대단히 위험해요. 급브레이크 사고에 따른 경추골절로 사지가 마비된 환자도 여럿 봤어요.”
평소 스포츠재활에 관심이 많은 서 명예교수는 대한스포츠의학회 이사장,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부위원장, 대한골프협회 선수강화위원, 대한스키협회 의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앞으로 프로골퍼 치료와 재활에도 헌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옷 맞추듯 자전거도 피팅해야
전 사이클 국가대표인 휠라(FILA) 앰배서더인 공효석은 “자전거는 어느 스포츠보다 레슨(교육)이 필요하다. 오르막 내리막 커브 등 다양한 지형에서 타는 만큼 위험도 많이 있다. 기어 사용도 적절히 해야 하며 에너지 소모가 많은 운동이므로 라이딩할 때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펜싱 스타 남현희의 남편인 한 공효석은 또 “어려서부터 헬멧 필수 착용, 교통신호 준수, 배려운전, 수신호 등을 잘 배워야 한다. 필수교육도 바람직하다”며 “자신의 몸에 맞는 옷을 입듯 자전거도 자신의 사이즈에 잘 맞게 피팅을 받아야 올바른 자세로 편하게 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포츠안전재단에 따르면 2019년 보고된 자전거 행사 사고 495건 가운데 미끄러져 넘어져 발생한 사례가 160건(31.5%)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 자전거, 자동차와 충돌이 109건(22.0%)이다. 사고 연령대는 40~49세가 164건(33.1%)으로 최다.
기본적으로 자전거에 오르기에 앞서 브레이크,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시속 16km 정도로 30분간 라이딩한 후 10분은 쉬면서 허리, 손목 스트레칭을 해주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 얘기다.
● 언젠가 양궁 여왕 며느리 장혜진과 가족 동반 라이딩
서 명예교수는 스포츠 가족이기도 하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 양궁에서 금메달 2개를 딴 ‘신궁’ 장혜진이 그의 며느리다. 대한체육회 의무위원회 활동을 하다가 아들의 신붓감으로 장혜진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10월 출산 예정인 장혜진도 시아버지보다 며칠 앞서 지난달 25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서 명예교수는 “나중에 아들, 며느리 뿐 아니라 손주까지 3대가 함께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며 웃었다.
작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에서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는 32세 때 처음 배운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보부아르가 계약결혼을 한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생의 새로운 기쁨을 찾았어요. 이제부터 내 소망은 자동차가 아니라 내 자전거를 한 대 갖는 것뿐이에요.” 보부아르는 소설 ‘타인의 피’에서 “저 아름다운 노란색 안장에 앉아 두 손으로 핸들을 잡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거야”라고 자전거를 묘사하기도 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힘차게 페달을 밟아보시라. ‘따릉이’(서울) ‘타슈’(대전) ‘누비자’(창원), ‘타랑께’(광주) 같은 공공자전거면 어떠랴. 축복, 기쁨, 천국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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