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전주북중을 재수해서 갔어요. 그 땐 중학교 입시에 체력장이 있었는데 공 던지기하다 팔이 빠졌죠. 필기시험 1개 틀리면 체력장은 무조건 만점 받아야 하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체력장에서 만점을 못 받았죠. 결국 전주북중은 물론 후기인 전주서중도 떨어졌어요. 그 이듬해 전주북중에 입학했어요.”
20대 말부터 등산으로 평생 건강을 관리해온 이재희 국제영어대학원대(IGSE) 총장(67)에게 ‘학창시절 운동을 그렇게 못 했냐’고 질문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총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만났을 때 준비해온 간단 ‘서면 답변’ 제일 첫 머리에 ‘운동에 소질은 없는 것 같다’는 문구를 보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총장은 교사와 교수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주기적인 등산으로 건강은 잘 챙기고 있었다. 일찌감치 운동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
“ROTC로 군대를 마친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맘에 맞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나면서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았어요. 제가 사범대 영어과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저도 술을 잘 마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거예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살기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대한민국 명산을 돌아다니는 전문 등산가는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부터 등산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이 총장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경인교대에 부임해 초임 교수로 열심히 할 때 무리해서인지 척추협착증이 찾아왔다.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해서 자가용을 버리다시피 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가급적 많이 걸었다. 산도 많이 찾았다. 2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호전됐다. 하지만 척추협착증은 평생 걸어야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공기 좋은 곳에 살려고 경기 안양시 인덕원 청계산 근처로 집을 옮겼는데 15분 정도 걸어야 전철에 닿는다.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며 웃었다.
이 총장은 1년 6개월여 전 정년퇴직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즐기던 등산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 산악반 출신 친구들과는 4시간, 고교 친구들과는 3시간, 아내와는 2시간 산행을 했다. 주 2~3회 산에 오르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
“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허벅지가 20인치 이상만 되면 성인병이 없다죠. 전 아직 허벅지가 20인치가 넘어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등산을 하면 잠을 잘 자고 쾌변을 보게 돼 좋습니다. 전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듭니다.”
이 총장은 지난해 초 총장까지 지냈던 경인교대를 떠난 뒤 친구들과, 아내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그는 “산악반 친구들은 난이도가 높은 곳을 가자고 하는데 전 수도권 가까운 산을 고집 한다”고 했다. 집 근처 청계산과 관악산, 우면산 등 속칭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을 탄다. 설악산, 한라산 등 명산들은 많이 가 봤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 하는 등산은 가까운 곳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젠 높고 멋진 산보다는 안전한 산이 더 좋아요. 코스도 험하지 않은 곳을 고집하죠.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는 얘기하면서 오르기에는 수도권 산이 좋아요. 하산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가기에도 좋죠. 다들 은퇴한 친구들이라 서로의 고민도 얘기하면서 의지도 하고…. 간단하게 막걸리 마시고 한 끼 해결하고 가면 집사람에게도 수고를 덜어줘요. 굳이 다시 밥을 안 챙겨도 되잖아요. 하하….”
이 총장은 지금은 출가한 두 딸에게도 운동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몸이 건강해야 뭐든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딸들을 꼭 산에 데리고 갔어요. 큰 딸에겐 이런 말도 했죠. ‘네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려면 체력도 똑같아야 한다’고. 그래서 중학생이 됐을 때 수영을 가르쳤고, 방학 때는 테니스 레슨도 받게 했죠. 계양산과 관악산, 북한산을 오를 때도 데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입시 때문에 다 중단하게 됐죠.”
이 총장은 대한민국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학창시절 다양한 경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체육을 비롯해 음악, 미술 등 예체능은 어릴 때 재능을 살려줘야 하는데 한국 교육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고 아쉬워했다.
서울대 사범대 시절 합창단으로 활약했던 이 총장은 사회생활 하면서도 합창단 출신들과 주기적으로 노래하는 모임을 가졌고, 최근엔 고교 친구들과 중창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노래 부르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려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는 시간도 즐겁다”고 했다.
“노래 부르기 위해 발성하는 게 건강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건강해야 목소리도 잘 나옵니다. 사람들 만나 노래 부르는 것 자체로도 즐겁잖아요. 제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니니 둘째 딸이 결혼할 때 저에게 축가를 불러달라고 했어요. 기뻤죠. 흔쾌히 불렀습니다.”
이 총장은 아내 피순화 씨(64)와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렸다. 등산도 함께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격 시작한 골프도 함께 치고 있다. 그는 “이제 제가 누굴 의지하며 살겠나. 친구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급적 부부 동반으로 산행과 골프를 하고 있다. 여생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달 초부터 IGSE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산행 횟수는 줄었다. 그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게는 주 3,4회 산에 올랐는데 이젠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이 있어 시간 날 때 머리도 식힐 겸 자주 걷는다.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다”고 했다.
이 총장은 등산과 함께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다져왔다. “군대에서 매주 수요일은 전투체육의 날이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라남도 연식정구 여자선수들에게 정구를 배웠고 이후 제대한 뒤 테니스로 바꿔 정기적으로 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테니스를 사실상 포기했다. “최근 테니스 치고 나서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이젠 힘이 달려 코트를 뛰어다니기도 힘들다. 조금 무리하면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온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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