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만난 사랑은 당연히 부모님, 특히 엄마의 사랑이었다. 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가 있다. 어린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숙제는 까먹기 일쑤였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등 위험한 행동으로 다친 일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나를 많이 꾸짖지는 않으셨다. 그 천방지축인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다.
만 40세에 결혼한 남편과의 사랑이 나의 두 번째 큰 사랑이었다. 남편은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워커홀릭이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밤이 돼야 들어왔다. 집에서 보는 남편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파 껌딱지’였다. 피곤에 절어 소파에서 멍하니 TV를 보다가 코골며 잠드는. 신혼인데 같이 저녁도 먹고 주말이면 등산도 좀 가자고 졸랐지만, 껌딱지는 소파에서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남편은 또, 끊임없이 지적했다. 가스를 쓰고 불을 끄지 않은 것, 차고 문을 안 닫은 것,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것 등. 평생 들어보지 못한 잔소리를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들으니 견디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결혼 6개월 즈음, 나는 이름 모를 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갈등이 잦은 싸움으로 이어지면서, 이미 병으로 힘들었던 나는 이혼하는 것이 오히려 내가 살 길이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6개월간의 치료를 마치고 돌아와 남편과 재회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가 우리의 결혼을 살렸다. 내가 남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내 남편보다 집에 일찍 들어오고 휴일에는 여가도 즐길 줄 아는 그런 남편을 사랑한 것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잘 정리하고 잊어버리는 것도 없는 그런 아내를 사랑한 것이었다. 우리가 서로 “당신은 다 좋은데 이 부분은 무조건 고쳐야 해”라고 종용하던 것은, 결국 “나는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아, 더 나은 모습의 당신이라면 정말 사랑하지” 하는 것과 같다는 것. 그러니, 서로 진심으로 사랑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다.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가진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특히 그렇다.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쓰고 있으니, 너는 딴생각 말고 내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면? 존중이 빠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성인을 존중하는 것은 그의 생각과 행동의 자율성을 존중해 주는 것으로, 미성년에 대한 존중은 경청과 공감으로 나타난다. 내가 주고 있는 사랑, 받고 있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그 안에 존중이 있는지 체크해 보라. 사랑의 다른 이름은 존중이므로.
※ 지나영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2020년 10월 유튜브 채널 ‘닥터지하고’를 개설해 정신건강 정보와 명상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10월 기준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14만6000명이다. 에세이 ‘마음이 흐르는 대로’와 육아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육아’의 저자이기도 하다.
지나영 교수의 ‘제대로 사랑하는 법, 이것이 빠지면 사랑이 아니다’(https://youtu.be/GwNVUkaX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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