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 연장 최다 5승 사냥… 긴박한 순간에 오히려 평정심
10km 달리기, 푸시업 30개… 시험 면접 마음 비워야 승리
살다보면 누구나 최고의 압박감을 느끼는 순간을 맞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입사 최종면접, 중요한 계약이 걸린 PPT 발표 등에서 심장은 요동치고 입이 바짝 마르기도 한다. 평소 모의고사 문제는 척척 풀고, 가상인터뷰에서는 청산유수이다가도 정작 본 게임에서는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평정심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긴장하면 부신수질에서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교감신경을 자극하는데 근육 긴장도가 커지고 심박동수가 늘어난다. 불안장애가 무대공포증으로 커지기도 한다.
코칭 심리전문가인 정그린 그린코칭 솔루션 대표는 “긴장과 압박감이 극대화될 때 가장 편안하고 심플한 상태를 만들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결전’을 치를 때는 평소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시험, 면접 등에서 불안이 크게 높아진다면 비슷한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긴장을 이완할 필요가 있다. 시험장 근처에 미리 가 본다든지 실제로 시험을 보듯이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다. 천천히 복식호흡을 해도 좋다”고 조언했다.
● 강한 뒷심…2년 연속 상금 10억원 돌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필드 여왕’으로 불리는 박민지(24·NH투자증권)는 강한 뒷심을 지닌 승부사다. 특히 박민지는 연장전 같은 긴박한 상황에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9일 끝난 경기 여주 블루헤런골프장에서 끝난 K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2차 연장 끝에 정윤지를 제치고 우승했다. 이로써 연장전에서만 5승을 거뒀다. 통산 연장전 전적은 5승 1패로 승률이 83%에 이른다.
우승 상금 2억1600만 원 받아 시즌 상금 12억6458만 원으로 상금랭킹 1위를 굳게 지킨 박민지는 전설 박세리(4승 2패)와 함께 갖고 있던 KLPGA투어 연장전 최다 승리 기록도 깨뜨리는 새 역사를 썼다. 박민지는 장하나와 KLPGA투어 현역 최다 우승자(15회) 반열에도 올라섰는데 이 가운데 3분의1이 연장전에서 나왔다.
박민지는 “연장전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승률이 높아졌다. 박빙의 연장 승부에서 높은 승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하다”고 말했다.
잊지 못할 KLPGA투어 첫 우승도 연장전을 통해 따냈다. 박민지는 2017년 경기 용인 88CC에서 열린 삼천리투게더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안시현, 박결과 동타를 이룬 뒤 3차 연장전에서 버디를 잡아 승리를 결정지었다. KLPGA투어 데뷔 후 불과 10일 만에 나온 우승이었다.
박민지의 유일한 연장전 패배는 2020년 포천힐스골프장에서 열린 BC카드 한경레이디스컵에서 나왔다. 당시 박민지는 연장전에서 버디를 낚고도 이글을 잡은 김지영에게 패했다. 박민지는 “잘하고도 졌기 때문에 후회는 없던 기억”이라고 밝혔다.
박민지가 치른 연장전은 모두 서든 데스(sudden death) 방식. 한 홀 결과에 운명이 결정되기에 가슴은 쿵쾅거리고 간이 콩알 만해지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체력왕 유명
박민지는 주니어 시절부터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체계적이고도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갖췄다. 골프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 매일 하루 10km를 뛰었다. 골프장 주차장을 달리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에는 9홀짜리 파3 골프장을 하루에 7바퀴 돌기도 했다. 국가대표 시절에는 훈련 장소 가운데 하나인 경기 포천 베어스타운 골프장 입구 가파른 오르막길을 달려서 오르기를 반복했다.
모든 멘탈과 자신감은 연습의 양에서 나온다고 한다는 최경주의 말을 기억한다는 박민지는 “엄마도 늘 고강도 운동의 ‘마지막 하나 더’가 멘탈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스¤을 하더라도 20개째가 되면 죽을 것 같은데 엄마는 거기서 1~2개를 더 시켰다. 극한의 순간에 엄마가 채근했던 것들이 현재의 멘털이 된 것 같다. 선수 생활을 할수록 두 분 말씀이 정확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마지막 1도가 없으면 물은 끓지 않다고 했던가.
박민지가 비거리를 향상을 위해 정자세로 한 개도 못했던 턱걸이 7개, 푸시업 30개를 한다는 건 유명한 얘기가 됐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골프 연습장 2,3층에서는 공을 못 쳐 1층에서만 실제 그린을 떠올리며 샷을 하다보니 거리감이 유달리 좋다.
박민지는 “체력을 바탕으로 집중력을 유지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야 하기에 플레이는 한결 간결하게 가져갔다. 연장전이라고 의식하기 보다는 즐기려했다”고 자신의 노하우를 전했다.
박민지는 티샷 전에 물을 마시는 루틴을 갖고 있다. 연장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첫 샷을 하기에 앞서 일정한 간격의 여유를 습관화하는 것이다. 수분이 부족하면 뇌의 에너지 생성이 감소하며 불안, 우울증, 기분장애와 관련이 있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치솟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래서 물을 마시면 긴장이 완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결과보다 진행과정 중요
대사를 앞두고 오히려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결과보다는 진행과정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박세리는 “우승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마음을 내려놓고 플레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원 출신인 김병현 박사는 “불안이란 목표와 자신의 능력을 비교하며 ‘할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을 내는 데서 온다”며 “실패 또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도 진단했다. 김 박사는 또 “평소 실수를 무서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기술을 구사하는 훈련을 반복해야 하며.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그린 대표는 “내가 우승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임했을 때 이기는 경우가 많다. 편안한 상태로 할 일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과몰입이 돼 몸이 경직되고 사고를 넓게 할 수 없어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연장전에서는) 패하더라도 2등이라는 긍정 마인드로 지녔어요.” 박민지도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일이 잘 풀렸다고 한다. 물론 단단한 몸은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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