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관련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 한모 씨(25)는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발생한 15, 16일 이틀간 “해방감을 느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씨는 평소 평일은 물론 주말, 심야에도 거래처의 카카오톡 문의를 응대하느라 잠시도 휴대전화를 놓지 못했다고 한다. 한 씨는 “응대가 늦으면 거래가 끊길까 봐 주말에도 항상 긴장 상태였는데, 모처럼 제대로 쉬었다“며 ”정상화 이후 문의가 또 빗발칠 걸 생각하니 복구가 미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카카오 서비스 먹통 사태로 디지털 재난이 현실화한 가운데, 일부 시민들은 “‘카카오톡 지옥’에서 잠시나마 해방돼 오히려 좋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카오톡 알림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연구원 김세진 씨(34)가 참여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만 30여 개로, 1시간 정도면 금방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인다. 김 씨는 “카톡이 아예 중단되니 메시지를 계속 확인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며 ”지난 주말 미뤘던 방 정리를 하고, 오랜만에 차분히 책도 읽었다“고 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 씨(29)도 “카톡이 오지 않으니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오랜만에 홀로 집에서 영화를 감상했다”고 말했다.
업무용 카카오톡 지옥에서 벗어난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육군 중사 강모 씨(29)는 “직장 관련 카카오톡 방만 13개에 달하는데 한 번 초대되면 나갈 수도 없고, 거절하기 곤란한 개인적인 부탁이 오는 일이 많았다”며 “오랜만에 나만의 주말을 보낼 수 있어 기뻤다”고 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김현철 씨(27)는 “건설 현장 특성상 공휴일과 주말에도 업무 연락을 받는 일이 잦아 이직까지 고민할 정도였는데 모처럼 평온한 주말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태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여론도 재확산되고 있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 임금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7.8%가 ‘근무 시간 외 업무지시를 경험했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에 참여한 최훈 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원격으로 일하는 근로자가 늘면서 근무 시간 외 업무 연락을 받지 않을 권리와 관련 규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해방감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 특임교수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온라인의 확산으로 ‘접속’ 상태가 당연하고, 본성인 듯 여겨졌다”며 “카톡 중단으로 초연결사회의 분주함으로부터의 시민들이 일종의 탈피를 경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카톡 감옥’이라고도 할 만큼 소통으로 인한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이번 사태가 잠깐의 여유였다”며 “‘멍때리기’ 등 생각을 비우는 행위가 최근 유행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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