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공황장애 환자 52.6% 늘어
스트레스·피로가 뇌 과민반응 유발
맥박 빨라지고 숨 막히는 공황발작
내과·신경과 등 검사해도 ‘정상’
“뇌가 만든 가짜 공포 극복해야”
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자칭 ‘공황 전도사’라 말하는 방송인 김구라는 수년 전 방송에서 공황장애를 진단받은 사실을 털어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로도 개그맨 이경규, 정형돈, 배우 차태현 등이 공황장애를 고백했다. 올해 초 아이돌 가수 샤이니 태민은 군 복무 중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보충역으로 편입됐다.
연예인들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공황장애는 한때 ‘연예인병’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결코 특정 직업인들만 겪는 마음의 병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 몸과 마음에 피로가 누적된다면 누구나 공황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
비정상적 공포와 불안에 압도되는 공황발작
직장인 송모 씨(31)는 2년 전 지하철에서 처음으로 공황발작을 겪었다. 퇴근 길 만원 지하철에 끼인 송 씨는 갑자기 숨이 막히고, 심장이 빨리 뛰어 졸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마스크가 답답해서 그런 줄 알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도망치듯 지하철에서 내렸다. 송 씨는 다음날 회사 근처 병원에 방문해 흉부 엑스레이를 찍고, 혈액 검사도 했지만 검사 결과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공황장애는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불안과 공포가 몰려와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되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다. △심장이 지나치게 빨리 뛰고 △어지러우며 △숨이 막힐 듯 호흡이 가빠지고 △갑자기 땀이 많이 나는 신체적 발작 증상을 동반한다. 공황발작은 대개 10분 이내에 최고조에 도달하고, 20~30분 내에 정상으로 돌아온다. 다음은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발행하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5)에 나와 있는 증상 분류로, 13개 가운데 4개 이상의 증상을 겪었다면 공황발작으로 본다.
그러나 공황발작을 한 번 겪었다고 해서 모두 공황장애 진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공황장애는 이러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발작이 언제 찾아올지 몰라 평상시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예기불안’이 함께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증상의 강도가 약하고 혼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정도로 쉽게 진정됐다면, 공황장애로 보기는 어렵다.
높아진 발병률…연간 환자 수 22만 명
국내 공황장애 환자는 전 연령에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5년간 공황장애 환자 수는 2017년 14만4943명에서 지난해 21만1131만 명으로 52.6%늘었다. 같은 시기 여성 환자 수는 58.3%, 남성은 46% 증가했다. 연령별로 보면 지난해 기준 40대가 전체의 27.4%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30대(21.1%), 50대(19.9%) 순이었다. 가장 흔한 정신 질환 중 하나인 우울증 환자 수(지난해 기준 91만785명)와 비교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미국 등 해외 연구 가운데에는 전 생애에서 한 번이라도 공황장애를 겪을 확률이 4.7%에 육박한다는 연구도 있다. 100명 중 5명은 반복적인 공황발작을 겪을 정도로 흔하게 발병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발병률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 받은 심신이 취하는 가짜 ‘전투모드’
공황장애의 직접적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와 피로가 누적되면 뇌가 외부 자극에 과민 반응하는 것이라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뇌의 일부분이 위협적인 상황이 아닐 때도 민감하게 반응해 몸이 전투태세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이때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땀이 나며, 호흡이 가빠지게 만드는 교감신경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 되면서 공황발작이 일어난다.
‘굿바이 공황장애’를 집필한 최주연 강남연정신과 원장은 “체내 이산화탄소 농도와 관련된 가설, 신경전달 물질 생성 이상 가설 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명확한 설명으로 보긴 어렵다”며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균형이 무너지면서 몸이 공황발작이라는 잘못된 알람 반응을 보내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황발작을 처음 경험하기 전에 과로로 체력이 떨어지거나, 심리적 스트레스를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9년 대한불안의학회지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공황장애의 신체적 증상 및 유발 요인의 특징’ 연구에 따르면, 공황장애 환자의 74.2%가 첫 공황발작 경험 직전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다. 업무상 과로(17.6%)가 가장 많았고, 신체질환 발생(9.7%), 가족과 연관된 걱정(9.6%), 경제적 문제(8.7%), 대인관계(8.6%), 배우자나 이성 파트너와의 갈등(8.0%), 학업(5.3%), 가족이나 지인과의 사별(3.1%) 순이었다.
신체 질병으로 오인하기 쉬운 공황발작
직장인 안모 씨(38)는 4년 전 첫 번째 공황발작을 겪고 대학병원 심장내과와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수십만 원에 달하는 심장초음파 등 비싼 검사를 받았지만 결과는 전부 ‘정상’이었다. 뒤늦게 자신이 경험한 것이 공황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안 씨는 첫 공황발작을 겪은 지 5개월 만에야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됐다.
공황발작을 처음 겪은 경우 심장이나 뇌, 폐 등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인식하고 응급실이나 내과를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심장 초음파, 24시간 심전도 검사, 뇌 MRI, 위 내시경 등 여러 가지 고가의 검사를 받기도 한다.
2019년 대한불안의학회지의 ‘증상의 발현부터 치료의 시작까지: 한국인의 공황장애 인식도 변화가 치료적 접근에 미친 영향’ 연구에 따르면, 공황발작을 경험한 환자의 3분의 2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기 전 내과, 신경과 등 다른 진료과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는 데까지는 평균 14주 정도가 걸렸다. 물론 1차적으로 신체 기능 문제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상이 없음에도 증세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면 공황장애는 아닌지 재빨리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혼자 앓던 병이었지만 이제는 ‘#공밍아웃’
공황장애의 원인이나 증상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러 병원을 전전하거나, 혼자 끙끙거리며 병을 키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미디어를 통해 공황장애가 알려지면서 자신의 공황장애 극복기를 온라인에 글과 그림으로 공유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공황장애를 커밍아웃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이겨 나가보자는 이른바 ‘공밍아웃’이다.
직장인 김세경 씨(37)는 글쓰기 플랫폼에 7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공황장애 를극복한 에세이를 게재했다. 워킹맘이자 한 기업의 인사팀 교육담당자로 바쁘게 살아오던 어느 날 퇴근길에 처음으로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김 씨는 “처음에는 정신과 문턱을 넘는 것조차 무섭고,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았다”며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해도 공황장애를 극복한 해피엔딩 사례를 찾기 힘들었다. 나처럼 막막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김 씨의 공황장애 극복기는 지난해 ‘지하철이 무섭다고 퇴사할 순 없잖아’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물리치료사 허경심 씨(41)는 공황장애에 걸릴 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던 과거의 자신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 한 권의 책이 됐다. 허 씨가 펴낸 ‘어느 날, 나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습니다’는 공황장애를 계기로 자신을 질책하고, 잔소리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주기로 결심한 자기고백이 담겨 있다. 허 씨는 “공황장애는 전혀 숨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를 통해 표현하고 나니 마음의 무게가 덜어졌다”며 “또 몸이 왜 이런 신호를 보내는지 귀 기울이고, 스스로가 나의 부모가 되어 돌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가짜 공포’를 가짜라고 확신할 수 있어야
공황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은 공황발작이 불러오는 죽을 것 같은 공포가 가짜라는 사실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곧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심리적, 행동적 치료를 유발하는 인지행동치료는 공황장애 등 각종 불안장애 치료에 가장 널리 사용된다.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 노출시켜 체계적으로 불안을 둔감화 시키는 등 공황발작이 일어나도 실제로 죽거나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적, 경험적으로 알게 한다.
1970년대부터 공황장애 환자들에게 인지행동치료를 적용해 이 분야의 권위자로 불리는 데이비드 번스 미국 스탠포드 의대 명예교수는 “공황발작은 무해한 신체 증상을 죽을 것 같은 느낌으로 잘못 해석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부정적인 생각이 현실성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공포감과 무력감이 사라진다”고 했다. 당황하지 않고 복식호흡을 하며 심장의 두근거림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 뇌가 만든 가짜 공포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 도움 없이 자가진단으로 섣부르게 공황장애를 판정내리고, 자가 치료를 시도하는 것은 금물이다. 최주연 원장은 “체계적인 내과 진단을 해보고 몸에 문제가 없을 시 공황장애를 정확히 진단 받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미 진단을 받은 경우라면 발작이 왔다고 무작정 응급실을 찾기 보단 복식호흡, 명상 등 자가 이완이 중요하다”며 “지금 상태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한 상태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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