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창구] 피어코퍼레이션 “누구나 나만의 스토리 게임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듭니다”

  • 동아닷컴
  • 입력 2022년 11월 9일 12시 50분


내수 성장의 한계로 국내 기업들은 구글 플레이스토어 등의 앱 마켓을 통한 해외 진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 구글은 국내 모바일 앱·게임 개발사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해서 지난 2019년부터 ‘창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기술벤처재단이 프로그램 운영을 맡고 있다.

출처=한국기술벤처재단
출처=한국기술벤처재단

올해 창구 프로그램은 4회째를 맞이했다. 이전 3기까지 참여 기업들의 연평균 매출은 85%, 해외 진출 비율은 70%가 늘었으며, 2000억 원 이상의 추가 투자를 유치도 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2022년 창구 프로그램에서는 80개 사의 기업을 선정해 사업화 자금을 최대 3억 원, 평균 1억 3500만 원 지원했다. 성장 및 해외 진출을 세미나와 컨설팅, 네트워킹 혜택도 제공했다. IT동아는 2022년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된 80개 기업 중 10개 기업을 만나, 창구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성장한 이야기를 듣고 전하고자 한다.

스토리 게임도 웹툰·웹소설처럼 코딩 없이 만들 수 있도록

영화나 소설, 만화를 보다보면 원래 전개와는 다른 전개를 상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정 등장인물이 죽지 않았다면 바라기도 하고, 로맨스물이라면 다른 인물과 맺어지길 바라기도 한다. 작가들도 미처 펼치지 못한 다른 가능성에 아쉬움을 느끼곤 한다. 선형적 서사를 지닌 매체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기존 매체 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서사를 지닌 작품은 종종 시도됐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인터랙티브 영화’가 대표적이다. 일회성 행사나 실험적 시도에만 그쳤다. 컴퓨터 발전 이후에는 비디오게임과 같은 매체들이 비선형적 서사를 담을 수 있는 매체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 영화처럼 실감 나는 그래픽을 지닌 게임도 있지만, 간단한 글과 그림, 음악을 곁들인 형태도 흔하다. 일본의 소위 ‘비주얼 노벨’이라 불리는 게임들이 대표적이다. 게임을 일종의 스토리텔링 매체로 보고 접근하는 시도다.

이처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서사를 담는 스토리텔링 게임을 누구나 쉽게 제작해서 선보일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어떨까? 스토리 게임 플랫폼 ‘이프 유(IF YOU)’를 운영하고 있는 피어코퍼레이션이 던지는 물음이다.

피어코퍼레이션의 모바일 스토리 게임 플랫폼 \'이프 유(IF YOU)\'. 출처=피어코퍼레이션
피어코퍼레이션의 모바일 스토리 게임 플랫폼 \'이프 유(IF YOU)\'. 출처=피어코퍼레이션

정승원 대표가 피어코퍼레이션을 창업한 건 지난 2017년이다. 2006년 무렵 마케터로서 게임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그가 처음 창업을 선택한 건 2010년이다. 성공적 엑시트도, 씁쓸한 실패도 경험했던 그는 지난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개발자 출신 이형진 공동 대표와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정 대표는 이전 회사나, 지금의 피어코퍼레이션 초창기 때만 해도 주로 일본 만화 지식재산(IP)에 기반한 게임이나, 간단한 캐주얼 게임에 집중했다. 캐주얼 게임은 조작이 간단한 만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어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피어코퍼레이션이 전략을 수정한 건 캐주얼 게임으로는 글로벌 개발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게 쉽지 않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완성도면 몰라도, 수익 모델이나 개발 속도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글로벌 게임사들은 보통 게임 하나에 개발하는 데 한 달에서 3개월도 안 걸리고, 빠르면 일주일에 하나씩 나오는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한계를 절감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고민하던 차에 떠올린 게 스토리 게임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야기를 보고, 즐기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정 대표는 “저는 보는 걸 좋아했고, 이 대표는 읽는 걸 좋아했다”고 말했다.

처음 시도한 건 게임보다는 전자책 리더기에 가까운 형태였다. 비 내리는 장면에는 화면에 빗방울과 빗소리가 들리고, 피가 튀는 장면에는 화면에 피가 튀는 식이었다. 간단한 형태지만 충분히 시장성이 있겠다고 판단한 정 대표는 본격적으로 스토리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지난해부터 본격적 개발을 시작해 올해 4월 서비스를 시작한 게 스토리 게임 플랫폼 ‘이프 유’다. ‘이프 유’에서는 피어코퍼레이션이 확보한 웹툰·웹소설 IP를 활용한 스토리 게임을 비롯하여, 플랫폼에 입점한 파트너들의 스토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고래별', '냐한 남자', '반드시 해피엔딩' 등의 인기 웹툰·웹소설이 피어코퍼레이션의 손끝에서 스토리 게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피어코퍼레이션 정승원 대표. 출처=IT동아
피어코퍼레이션 정승원 대표. 출처=IT동아

현재 서비스 중인 게임들은 피어코퍼레이션 자체 제작 인력들이 원작자들의 원안을 토대로 직접 각색해 만든다. 하지만 피어코퍼레이션은 앞으로는 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스토리 게임을 자유롭게 선보일 수 있도록 플랫폼을 개방할 계획이다. 웹툰·웹소설 자유 연재 플랫폼처럼, 누구나 글과 그림, 아이디어만 있다면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열린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작 도구다. 현재 피어코퍼레이션이 자체 개발 게임 하나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 달 반 남짓에 불과하다. 비개발자도 편집된 결과물을 그때그때 확인하며 작업할 수 있는 자체 제작 도구를 만든 덕분이다. 웹브라우저상에서 구동되는 제작 도구는 원하는 대사와 그림을 입력하고 원하는 화면 효과나 상호작용 요소를 설정해주기만 하면 될 정도로 간단하다.

이 제작 도구를 내부에서만 활용하는 대신, 플랫폼 이용자들에게 공개하는 게 피어코퍼레이션의 계획의 핵심이다. ‘에피소드’처럼 해외에도 비슷한 스토리 게임 플랫폼은 있지만, 제작 도구의 사용 난도에서 궤를 달리한다는 게 정 대표의 설명이다. 코딩이 필요한 에피소드와 달리, 피어코퍼레이션의 제작툴은 코딩이 전혀 필요 없는 일종의 노코드(No-Code) 개발 도구다. 정 대표는 “내년 2분기 공개를 목표로 현재 외부 공개용 제작 도구를 다듬는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프 유’는 출시 6개월 남짓 지난 현재 3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고, 월 7만 명의 활성 이용자를 기록 중이다. 아직 계획한 플랫폼 생태계를 완성하기 전이며,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족할만한 성과라고 정 대표는 자평한다. 전체 이용자의 9할 이상이 아랍, 러시아, 북미, 동남아 등 해외 이용자라는 점도 고무적이다. 기존 게임 이용자보다는 K-웹툰·K-웹소설 매력에 이끌린 해외 팬들이 모여드는 모습이다. 향후 크리에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글로벌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건 중요하다.

창구 프로그램 4기 기업으로 선정된 피어코퍼레이션. 출처=IT동아
창구 프로그램 4기 기업으로 선정된 피어코퍼레이션. 출처=IT동아

글로벌 서비스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창구 프로그램의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1억억 원 상당의 자금 지원도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구글이 직접 제공하는 스토어 관련 소식이나 정보가 든든한 지원이 됐다고 한다. 앱을 스토어에 등록할 때 어떤 글, 어떤 이미지를 올려야 더 효과적인지, 검색 결과에 더 잘 노출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ASO(App Store Optimization, 앱 스토어 최적화) 가이드를 통해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었다. 정 대표는 “저희 직원 대부분이 제작 인력이고, 전담 마케팅 인력이 없어서 ASO 가이드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승원 대표는 향후 모바일 게임 형태뿐만 아니라, OTT에서도 즐길 수 있는 형태의 스토리 게임까지도 꿈꾸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에는 ‘블랙미러: 벤더 스내치’처럼 시청자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바뀌는 작품이 존재한다. 정 대표가 예시로 든 또 다른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극주부도’다. 일반적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다소 정적인 장면 위주로 연출된 작품이다. 그는 “현재 저희 제작툴로 극주부도 정도의 연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지금은 모바일 게임 플랫폼 하나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OTT까지 확장하는 걸 최종 목표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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