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2막]‘행복한’ 아파트 경비원 장두식 씨
영업사원-오퍼상 등 여러직업 거쳐 60세이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스피치-마술 등 여러 자격증 도전… 경비원 일하면서 하모니카 가르쳐
“일할 곳 있고 인정도 받으니 행복… 치매예방학교 등 아직 꿈 많아…”
14일 경기 고양시 백마역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탁구장 한 편에 간판 없는 작은 방이 하나 있다. 벽에는 플래카드와 자격증들이 빼곡하고 선반에는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이 쌓여 있다. 장두식 씨(69)가 운영하는 음악연습실이다.
“창고로 쓰던 공간을 얻어 연습실로 사용합니다. 시끄러우니 상가 안에는 못 들어가죠.”
오후 5시 30분이 되자 60, 70대 여성 4명이 모여들었다. ‘하모니카 중급’ 수업 시간이다. 장 씨가 강사, 부인 한상희 씨(67)는 학생 겸 총무 역할을 한다. 시시때때로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게 여고 교실 같기도, 동네 사랑방 같기도 하다.
“지난주 어디까지 했죠? 다들 연습들은 해왔나요?”
연습실은 코로나19 탓에 2년간 문을 닫았다가 연초에 다시 열었다. 71세 동갑내기 동네친구 3명이 하모니카를 배우던 팀에 석 달 전 근처에 사는 이모 씨(64)가 찾아와 합류했다. 강사에 대한 수강생들의 자랑과 지지가 대단하다.
“너무 재밌어요. 선생님이 모르는 게 없으세요. 저 자격증들 보세요. 저희도 처음에 깜짝 놀랐다니까요.”(수강생 양모 씨)
이렇게 주 1회씩 정기적으로 오는 수강생이 13명. 이들이 내는 회비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
수업은 매주 요일이 바뀐다. 장 씨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근무가 12시간→24시간→휴무의 3일 단위로 돌아가니 비는 시간에 맞춰 수업을 잡는다.
장 씨는 경비 3년 차다. 은퇴 후 경로당이나 복지관, 요양원 등을 돌며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는데 코로나19 탓에 일이 뚝 끊겼다. 고육책으로 찾은 일자리가 경비였는데, 의외로 좋은 직업이라고 느꼈다. 지난 3년간 여러 아파트를 옮겨 다니다 7번째인 지금의 아파트에 정착했다. 7월에는 그간의 에피소드를 엮어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생각나눔)를 펴냈다.
“일할 곳이 있고, 열심히 일하면 인정도 받고, 적지 않은 보수도 받으니 너무 좋습니다. 완근(完勤)하면 200만 원 전후로 월급을 받아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그런 돈을 벌겠어요. 3일에 하루는 낮에 쉬니 하고 싶은 일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공동주택 관리 종사자는 30만 명이 넘는다. 관리사무소 인력이 10만800여 명(33%), 경비 인력이 10만5800여 명(36%), 청소 미화 인력이 9만4000여 명(31%)이다.
가까이에 있지만 존재감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경비원이 최근 부쩍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의 갑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이야기가 사회에 충격을 던졌고, 고령 경비원의 현실을 다룬 책들이 잇달아 나와 조명을 받았다. 2020년 나온 ‘임계장 이야기’(조정진·후마니타스)는 공기업 퇴직 후 경비가 된 작가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애환을 그려냈고, 2021년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최훈·정미소)도 일하고 싶지만 일할 곳이 마땅치 않은 노년의 설움을 다뤘다. 두 책이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살짝 가미한 자전적인 것이라면 장 씨는 경비원 눈높이에서 주변 이야기를 정리했다. 어찌 보면 경비원 지침서 비슷하다.
―제목에 굳이 ‘행복한’이란 수식어를 넣은 이유는….
“경비원 일이 제게 일하는 기쁨을 주니까요. 일을 하니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부지런해집니다. 생활에 절제가 생기고 약간의 긴장감을 통해 활력을 얻습니다. 비질이나 쓰레기통 세척은 운동이 되고요. 손주들 용돈을 척척 주니 며느리들도 좋아하죠.”
―속칭 ‘갑질’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경비는 3개월마다 근로계약서를 갱신합니다. 용역회사로부터는 주민과 트러블이 생기면 무조건 잘린다고 교육받죠. 그래서 출근할 때는 오장육부를 집에 두고 가야 해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많이 배웠는데, 가장 중요한 건 제 마음가짐입니다. 일터에서는 밝고 예의 바르게 처신하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주민들과도, 동료와도 속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제 쪽에서 바라는 게 없으니 서운한 것도 없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또한 달관하지는 못한 듯하다. 그가 쓴 책에는 주민과 있었던 약간의 트러블이라도 혹시 말이 날까 봐 걱정하는 경비원의 일상이 담겨 있다.
“젊은 시절 제 기억 속 경비는 구부정한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제가 그 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다만 과거엔 60대만 되어도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요즘 경비원들은 70대 후반이라도 젊어 보여요.”
○ 60세 이후 딴 자격증만 15개
그가 말하는 60세 이전 삶은 파란만장 좌충우돌 자체였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고 어렵게 성장하면서 내세울 만한 학력을 갖지 못했다. 맹호부대에서 군인극장 간판을 그리다 제대했고, 한때 방송국 미술부에서 일하기도 했다. 학습지 영업사원으로 뛰어다닌 적도 있고, 노점상을 한 시절도 있다. 한때는 일본을 오가며 미술 오퍼상을 하다가 망하기도 했다. 환갑 때까지는 캐피털 회사에 근무했다.
“그때그때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렇게 갈팡질팡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 직장에서 퇴직한 뒤 봉사하는 삶을 생각했고, 노인들에게 기쁨을 주는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 일을 택했습니다.”
고양시 파주시 김포시의 경로당들을 오가며 하루 3타임씩 주 5일을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일했다. 수입은 교통비를 충당하는 정도였지만 찾아가면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반응이 가장 큰 보상이었다. 강사 일을 제대로 하고 싶어 노래와 아코디언, 하모니카, 마술을 배웠고 레크리에이션 지도사, 실버 운동지도사, 웃음치료 지도사, 스피치 지도사, 요양보호사 등 자격증이 하나둘 쌓여 어느덧 15개가 넘었다.
“운전면허증 빼고는 전부 60세 이후에 딴 거예요. 대부분 민간 자격증이죠.”
이 중 많은 것을 서울 종로3가에서 배웠다고 한다. 낙원상가에서 ‘도레미’부터 시작해 하모니카와 아코디언을 배웠고 스피치학원, 마술동우회 등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들을 섭렵해갔다. “정식 학원 학교는 아니었지만 배우는 기쁨이 있었어요.”
2017년 첫 책 ‘노래하는 인생’을 낸 뒤 매년 한 권꼴로 모두 6권을 펴냈다. 제목만 소개하자면 ‘언제나 청춘으로 살기’ ‘요양보호사’ ‘나의 인생노트’ ‘스피치를 재미있게 잘하기 위한 이런저런 상식 이야기’ ‘나는 행복한 경비원입니다’ 등이다. 모두 같은 출판사를 통해 자비로 출판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았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면 ‘한국치매예방연구소 소장’, ‘자신감 사관학교 교장’ 등의 직함이 있던데….
“그건 제 꿈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학교를 설립해 교장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란 꿈이 있어야 살지요. 제 또래분들께도 뭘 새로 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고, 일단 자신감 갖고 시작해보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어차피 시간은 흘러갑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흘러가고, 해도 흘러가는 게 인생이에요.”
○100세 시대의 직업과 교육
‘100세 인생’의 저자 린다 그래턴 런던경영대학원 교수는 100세 시대에는 직업과 교육이 송두리째 달라진다고 일찌감치 예고했다. 30년 공부하고 30년 일하고 30년 노후를 즐기는 게 20세기식 인생 주기였다면, 100세 시대에는 한 사람이 평생 서너 가지 직업을 갖게 되고 그 사이사이에 이를 위한 재교육(평생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득 장 씨의 60세 이후 삶의 스타일이야말로 100세 시대에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찾아 스스로 공부하고 변화하는 모습. 불우한 환경에서 많은 실패를 맛봤지만, 그런 좌절의 경험이 노후에는 오히려 눈빛 반짝이는 생명력이 된 건 아닐까. 그는 변화의 과정마다 상처받을까 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좀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그 열매를 주변과 나누려 했다. 하모니카 수업을 통해 동네 중·노년층의 취미활동 공간을 만들고 본인이 잘하는 것을 이웃에게 가르쳐주며 재미나게 사는 것. 나름대로 좋은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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