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스키를 즐겼다. 몬태나는 스키의 명소이다.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푹 빠지면서 14살부터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미국 태권도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는 만 63세에도 격렬한 주짓수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평생 운동을 생활해온 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부상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각 5번씩 받아 연골이 다 닳았죠. 하지만 주 2, 3회 주짓수로 땀을 흠뻑 흘려야 사는 맛을 느껴요. 1990년대 말 주짓수를 배운 뒤 무릎 탓에 태권도에서 더 이상 발차기를 할 수 없게 됐죠. 그 때부터 태권도 대신 주짓수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1999년 한국에서 주짓수를 만났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잠시 온 존 프랭클이란 친구로부터 주짓수를 전수 받았어요. 전 태권도와 유도를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10여명이 함께 배웠죠. 그게 한국 주짓수의 시작이 됐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캐프너 교수는 이대 체육관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 태권도국가대표 등 엘리트 선수 출신도 있었다. 축구와 야구, 등산 동아리는 많았지만 격투기 동아리는 없었던 때였다. 미국에선 모든 종목 엘리트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생활 스포츠로 녹아드는데 한국에선 특정 종목 외에는 잘 안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시도한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태권도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파가 돼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압박, 점유 등의 다양한 기술로 제압하는 무술이죠. 앉아서 하는 기술도 있어요. 그렇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1시간30분 씩 주 3회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건강도 잘 챙길 수 있죠. 함께 운동한 회원들과 돼지갈비에 소주 한잔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캐프너 교수는 서울 신촌 주짓수에서 매주 2, 3회 운동하고 회원들하고도 어울린다. 그는 “선수들보다는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다. 학생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사업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 건강을 위해 땀 흘린다”고 했다. 그는 직접 회원들에게 주짓수를 지도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최애 운동은 태권도였다. 리샤오룽 영화를 보고 화려한 발차기에 매료돼 다양한 격투기를 접했다. 그는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를 비교해 봤다. 화려한 발 기술에 묘미가 있는 리샤오룽 영화에 가장 가까운 무술이야말로 태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태권도와 유도를 함께 했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태권도 하나에 집중하라고 하셨죠. 결과적으로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몬태나주립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계속 태권도를 익힌 그는 미국 국가대표가 돼 198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3위, 1987년 미국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1위를 차지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 용사인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러 1987년 한국에 전지훈련을 오면서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8살에 무릎을 크게 다쳤어요. 수술 받고 다시 태권도를 시작했죠. 그런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다른 친구에게 밀려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다른 기회를 찾았죠.”
태권도를 했기에 한국 태권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종주국 한국에 안착하게 됐다. 1989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일하며 공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WT에서 국제심판 교육과 영문 잡지 발행을 도운 그는 199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태권도에 담긴 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학에 빠진 그는 한국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근현대소설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작가들은 이효석 김동리 이청준 안수길 등. 캐프너 교수는 최근 연세대 국제학부에서 한국학도 강의도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영어로 강의한다.
캐프너 교수는 사실상 ‘한국인’이란 소릴 듣는다. 한국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서양 사람으로 태권도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태권도로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65)이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한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도 태권도 즐기기를 놓지 않았던 캐프너 교수는 2002년부터는 주짓수에 매달리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근력과 유연성, 심폐지구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짓수 4단, 태권도 8단과 유도 1단까지 총 13단의 고수다.
“솔직히 무릎 연골이 없어 다리가 약간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뛰어 놀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난 어릴 때부터 안 해 본 운동이 없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한다. 내 고향 몬태나가 스키 명소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즐겼다. 그런 좋은 경험이 아직도 날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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