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 영업직으로 일하던 박모 씨(33)는 올해 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5개월 과정의 국비 지원 개발자 양성과정을 들었다. 앞으로 안정적으로 오래 일하려면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결정한 도전이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박씨는 “지원서만 100개 가까이 내고 20차례 넘게 면접을 봤다”며 “어렵사리 취업은 했지만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는 꿈도 못 꾸는 수준이고, 연봉은 채 3000만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대규모 연봉인상과 개발자 모시기에 나서면서 취업준비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코딩에 뛰어들었지만, 글로벌 경기 한파로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코딩 낭인’이 생겨나고 있다. 개발자 채용 시장이 호황일 때는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일단 뽑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엔 경력이 있거나 실력이 검증된 사람만 채용하는 기조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코딩을 시작한 사람들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교육을 받아도 원하는 처우의 직장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원모 씨(28)는 온라인 광고를 보고 코딩을 배우면 취업 전망이 밝을 것 같다는 생각에 6개월 과정의 인공지능(AI) 강의를 국비로 신청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 보니 비전공자가 6개월에 소화하기에는 버거운 내용인데다, 강사들도 질문하는 내용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원씨는 “어려운 커리큘럼 탓에 130명 수강생 중에 끝까지 남은 건 30명뿐이었다”고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액 국비로 AI, 빅데이터 등의 훈련과정을 제공하는 ‘K디지털트레이닝(KDT)’ 프로그램 참가자는 지난해 1만1727명에서 올해는 10월까지 1만7518명으로 늘었다. 개인 비용을 들여 수업을 듣는 학생까지 감안하면 취업을 위해 코딩을 배우는 인원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딩 붐이 일면서 검증되지 않은 훈련기관도 덩달아 늘어났다.
하지만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의 취업문은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해외 빅테크들까지 개발자를 비롯해 대규모 감축 카드를 꺼내들 정도다. 미국 테크 기업 감원 현황 제공 사이트인 ‘레이오프’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196개 기업에서 5만1048명이 해고됐다. 지난해 대규모 채용에 나섰던 국내 대형 IT기업들도 수익성 개선과 경기 침체 대응을 위해 당분간 보수적 채용 기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올해 3분기(7~9월) 인건비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7.8%, 41% 증가했는데, 앞으론 수익성 개선을 위해 채용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인력 부족 때문에 코딩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알면 뽑아놓고 재교육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바뀌었다”며 “실적 악화로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신입 채용도 줄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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