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H조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병원 일정상 경기보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지만 아직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한국이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1-4로 져 탈락했지만 서 원장에게 태극전사들은 영웅이었다.
“이게 축구의 매력입니다. 11명이 단 하나의 목표, 골을 넣기 위해 힘을 합치고 팬들도 하나가 된다는 것이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느꼈겠지만 한국 선수들이 포르투갈과 브라질 등 세계적인 강호들과 싸울 때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하나가 돼 응원합니다.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죠.”
한국 나이 예순인 서 원장은 매주말 축구하는 재미로 산다. 선수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공을 차면서 희망을 키웠고 지금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다지기 위해 공을 찬다.
“고려고 2학년 때 축구하다 골키퍼와 부딪혀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대학 땐 공부한다고 축구를 못했지만 고려대구로병원에서 재활의학 전문의 과정을 할 때 다시 축구를 시작했죠. 그 때부터 축구는 제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전방십자인대 부상 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무릎이 썩 좋지 않았다. 서 원장이 스포츠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고려대구로병원에서 근무할 때 직원 축구팀에 가입해 활동했다. 영상의학과, 임상병리학과, 원무과 직원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의사로 유일하게 공을 찼다. 그는 “당시 26경기 연속 골을 넣었는데 아직 전설로 통한다”고 했다. 1997년 미국 하버드의대로 2년간 연수를 갔을 때도 한인축구회에 가입해 축구를 계속했다. 서 원장은 미국에서 공부하다 전공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현지 연구소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스포츠 의학에 집중하려면 정형외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술 분야의 정형외과와 비수술 분야의 재활의학과적 치료를 병행할 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크게 다치면 수술한 뒤 재활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1998년 귀국해 다시 정형외과 전공의 시험을 치르고 전문의 과정을 다시 밟았습니다.”
서 원장은 국내 1호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 2004년 경기도 성남시에 바른세상병원을 개원한 뒤 성남시의사회축구단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년 뒤 ‘바세(바른세상병원) FC’를 창단했다. 그는 “처음엔 직원이 11명이 안 돼 축구팀을 만들 수 없었지만 30명 가까이 되면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성남시의사회장기 축구대회에 출전하는 등 지역 병원팀들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바세 FC는 올해 성남시 보건의료인 축구대회에서 9회 연속 우승할 정도로 최강을 자랑한다. 서 원장은 고대 1982학번축구팀에서도 활약하고 있고 고대축구연합회 회장까지 맡아 ‘고대 OB 축구리그’를 이끌고 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라면 고대교우축구연합회는 KAFA(Korea University Alumni Football Association)다. 끈끈하게 잘 돌아간다”고 했다.
서 원장은 스포츠 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자 축구광이다 보니 지난해 3월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에 선임됐다. 2005년 네덜란드 20세 이하 월드컵 주치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 주치의 경험을 살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엔 사상 최초로 주치의를 2명 파견했다. 그는 “선수들 부상이 이어지면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정형외과 전문의와 재활의학 전문의를 함께 보냈다”고 했다. 한국은 안와골절 손흥민(30·토트넘)에 이어 수비의 핵 김민재(26·나폴리) 등 부상 선수들이 나왔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서 원장은 ‘안와골절’ 손흥민에 대한 비화도 하나 소개했다
“손흥민이 다친 뒤 대한축구협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손흥민이 없는 한국축구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분과위원회 회의 중 한 의무 위원이 럭비선수들이 안와골절을 당한 뒤 다시 경기에 복귀하는 시간이 평균 18일이라는 논문을 찾아냈다. 월드컵 첫 경기가 손흥민이 수술 후 20일 뒤였다. 그래서 손흥민도 재활 잘 하면 경기에 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뛰었다.”
서 원장은 전방십자인대 재건 수술 분야에서 ‘명의’로 통한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선수 르엉쑤언쯔엉도 서 원장에게 수술 받았다. 박항서 감독의 지도를 받은 쯔엉은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끈 선수다.
서 원장은 병원운영에도 축구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서 원장은 2018년 한국경영학회를 포함해 40여 개 경영학 관련 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강소기업가상’을 수상했다. 병원 경영자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었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병원 전체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 원장은 병원 내 의사들에게 과잉 진료를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과잉 진료는 힘들게 쌓아올린 병원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 원장은 과잉 진료의 부작용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편이다. 일단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며, 그 결과 의료 시스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서 원장은 과잉 진료를 방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의료진이 모여 회의를 하도록 한다.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동시에 최신 학술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축구 선수 몸 보셨어요? 군살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선수 배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죠. 다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질 수밖에 없죠. 그만큼 관리하지 않으면 90분 풀타임을 뛸 수 없습니다.”
서 원장도 주말에 공을 차기 위해 매일 몸을 관리한다. 병원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집에서도 하체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구를 마련해 놓고 틈만 나면 땀을 흘린다. 병원 옥상에 마련된 인조잔디구장에선 볼 다루는 훈련을 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면서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있는 이유가 이런 노력의 결과다. 서 원장의 포지션은 붙박이 중앙공격수. “젊었을 땐 좌우 날개 공격수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젠 몸조심하며 골만 낚아낼 때”라며 웃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저돌적으로 뛰어다닐 수는 없지만 문전에서 골 잡아내는 능력은 아직 서 원장을 따라올 의사가 없다고.
“골 넣어 보셨어요? 골 넣은 순간엔 저도 한국 최고의 선수 손흥민이 됩니다. 이건 골을 넣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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